• 검색

[방계家]<15>고려디자인 ①닮은 듯 다른 현대家 손자

  • 2013.09.16(월) 10:27

정주영 창업주 4남 몽우씨 45세 젊은 나이에 작고
일가몫 고려개발, 부실로 10년前 두산그룹에 매각

현대가(家)에서 ‘손자의 시대’가 열린 때는 2006년 12월이다. ‘왕회장’ 고(故) 정주영(1915~2001) 창업주가 1947년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현대건설 전신)’라는 간판을 내건지 60년 만이다. 정 창업주의 3남 정몽근(71)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며 그 자리에 장남 정지선(41) 부회장을 앉혔다. ‘선(宣)’자 돌림 3세들 중 첫 대권 승계였다.

다음 주자는 종손(宗孫)인 현대차그룹의 정의선(43) 현대차 부회장이다. 2009년 8월 기아차 사장에서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함으로써 그의 경영권 승계는 초읽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정기선(31) 현대중공업 부장(경영기획팀)이나 현대그룹의 정지이(36) 현대유엔아이 전무 등도 가장 유력한 후계자들이다.

손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왕회장이 다져놓은 기틀 위에 ‘몽(夢)’자 항렬의 부친들이 일궈낸 내노라하는 그룹을 승계했거나 하게 될 대물림 후손들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사뭇 다른 손자들이 있다. 정 창업주의 4남 고 정몽우(1945~1990)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아들 3형제 일선(43)·문선(39)·대선(36)씨다. 상대적으로 조상의 은덕을 덜 입었다. 여기에는 일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내력(來歷)을 담고 있다. 

◇왕회장의 손자 사랑

몽우씨는 서울 오산고, 중앙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70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현대건설 상무를 거쳐 한국포장건설, 고려산업개발 사장으로 경영일선에 등장한 뒤 1987년 11월에는 현대알루미늄 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작고했다.


 

인포그래픽 바로가기
 


정 창업주가 아버지를 일찍 여읜 손자들에게 쏟은 애정은 각별했다. 몽우씨 몫으로 떼어둔 고려산업개발을 이진호(70)씨에게 맡긴 것은 손자들이 장성할 때 까지 후견인 역할을 해달하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진호씨는 몽우씨의 부인 이행자(68)씨의 친정오빠다. 정 창업주의 장남 몽필씨가 1982년 4월 교통사고로 작고했을 때 몽필씨의 부인 이양자씨의 동생 이영복씨에게 동서산업 사장을 맡긴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진호씨는 1965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1976년부터 미국연방수사국(FBI)에서 활동한 독특한 경력의 인물이다. 1987년 11월 몽우씨가 경영하던 고려산업개발 부사장 겸 현대알루미늄 사장으로 영입됐고, 몽우씨가 지병을 앓고 있을 때는 실질적으로 경영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992년 정주영 창업주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는 경호단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고려산업개발 고문으로 있다가 2000년 3월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취임해 그 해 말까지 회장을 지냈다.

◇부실 3사 합병 화근

고려산업개발은 1976년 4월 설립된 고려항만개발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97년까지만 해도 아파트공사와 레미콘사업 등을 통해 매년 300억~4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던 도급순위 36위의 우량 건설사였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구조조정으로 퇴출기업으로 전락한 현대알루미늄, 신대한, 현대리바트 3개사를 흡수합병하면서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부실계열사를 떠안으면서 차입금 이자 부담이 커진 탓이다.

1999년 적자사업이었던 가구목재사업을 분리(종업원지주사 리바트)하고, 자산매각, 유상증자(2000억원) 등을 통해 나름 재무구조 개선에 애썼지만 부질없었다. 1999년 289억원 수준이던 순손실은 2000년에는 계열사주식 처분손실과 부실채권대손상각 등으로 인해 3310억원으로 불어났다. 1999년말 159.1%에 머물렀던 부채비율은 534.6%로 3배 넘게 치솟았다.

유동성 위기가 밀려왔다. 급기야 2001년 3월 만기도래한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부도 처리됐다. 2000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1500억원의 금융권 대출금 회수와 엎친데 덮친격으로 회사채 신용등급마저 투기등급으로 하락(BBB-→BB+)해 신규자금 차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는 2000년 일어난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인해 현대그룹이 건설, 자동차, 중공업 계열 등으로 핵분열을 하던 때라 현대가로부터 변변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이행자씨 등 일가 ‘4人4色’

고려산업개발은 결국 2001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같은 해 8월에는 현대그룹에서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겪었다. 이어 2002년 7월 매각절차가 개시된 고려산업개발은 두산그룹으로 팔려나갔고, 2004년 4월에 가서는 두산건설과 합쳐졌다. 정몽우 회장 일가의 몫으로 남겨졌던 고려산업개발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려산업개발이 간판을 내린 지 10년이 흐른 지금 이행자씨와 아들 3형제가 걷고 있는 길은 ‘4인(人)4색(色)’이다. 몽우씨와 동갑내기로서 45세때 남편과 사별한 이행자씨는 전문가 못지 않은 감각을 바탕으로 고려디자인을 차려 가구업체 오너로 변신했다.
 
장남 일선씨와 차남 문선씨는 큰아버지 정몽구(75) 현대차그룹 회장의 배려 아래 현대차그룹 계열의 현대비앤지스틸에 몸담아 ‘선’자 돌림 3세 경영인으로서 한 축을 맡고 있다. 일선씨는 35세의 나이에 현대비앤지스틸 대표이사에 올라 경영을 총괄하고 있고 문선씨 또한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해 형을 보좌하고 있다.

반면 3남 대선씨는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 한 때 이사로서 형들과 함께 현대비앤지스틸에 몸담기도 했으나 2008년 11월 IT업체인 유씨테크를 인수하며 딴살림을 차렸다. 잇단 인수합병(M&A)를 통해 현재 3개사의 지배주주로서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관련기사]
 
[방계家]<15>고려디자인 ②오너로 변신한 며느리
 
[방계家]<15>고려디자인 ③정몽구 회장의 일감
 
[방계家]<15>고려디자인 ④거침없는 3남 정대선 사장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