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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관세大戰]②전개 : 4천억 과세통지서 '거부'

  • 2013.09.17(화) 10:01

디아지오, 로펌 두 곳 동원해 과세 뒤집기 '총력'
前관세청 차장, 불복에 영향력 행사…전관예우 논란도

2010년 1월 디아지오코리아(디아지오)의 심판청구를 받은 조세심판원은 1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장고(長考)를 거듭했다. 심판원의 결정에 따라 과세당국에 대한 신뢰와 세수입까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거나, 한편으로는 다국적 기업을 쫓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판원이 뜸을 들이는 사이 관세청 서울세관은 발빠르게 2차 과세 처분을 시작했다. 이듬해 2월 디아지오에 2080억원의 세금을 더 얹어 과세 예비통지서를 보냈다. 2008년부터 2010년 10월까지 수입한 위스키도 저가 신고가 있었으니, 경쟁업체들의 수입 가격을 기준으로 관세와 부가가치세 등을 더 납부하라는 내용이었다.
 
석달 후 조세심판원의 결정도 내려졌다. 요지는 관세청이 디아지오에 대해 매긴 세금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직접 재조사하라는 것. 양측 어느 쪽도 손을 들어주지 않은 뜻밖의 결과였다. 이 결정으로 디아지오와 관세청의 과세 분쟁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심판원 결정에 따라 1차 세금 부과처분에 대해 재조사를 진행하던 서울세관은 2011년 10월 디아지오가 추가로 내야할 세금을 2167억원으로 확정했다. 2009년 말에 통보한 1940억원과 합쳐 과세 총액이 4000억원을 넘어섰다. 디아지오는 1차 과세 통지와 달리 세금을 내지 않고, 관세청의 과세 논리를 뒤집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 관세청-디아지오 '첨예한 대립'
 
윈저와 딤플, 조니워커 등을 수입 판매하는 디아지오는 영국 본사에서 들여온 위스키에 대해 관세를 납부하면서 제조원가를 기준으로 계산해 신고했지만, 관세청은 국내시장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관세를 다시 추징했다. 디아지오가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발렌타인 수입)나 수석무역 등 경쟁업체보다 위스키를 현저하게 낮은 가격에 신고했다는 이유였다.
 
디아지오의 반박 논리는 거침이 없었다. 관세청이 유사물품으로 삼은 위스키는 시장점유율에서 크게 차이를 보였고, 디자인과 병·뚜껑·라벨도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맞섰다.
 
관세청이 2004년에 디아지오를 심사할 때도 과세가격 결정 방법이나 비교대상 기업 선정, 통상 이윤과 경비 결정 등에 대한 의견을 공식적으로 표명했고, 디아지오는 관세청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관세청이 하라는 대로 수입 신고를 해왔다는 게 관세청 해명의 골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청이 갑자기 2004년부터 과세가격을 낮게 신고해왔다며 새로운 과세 기준을 들이댄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어긋난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에 대해 관세청은 제 살을 도려내듯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디아지오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항변했다. 서울세관은 디아지오가 소속 공무원에게 뇌물을 줘가면서 사실관계를 왜곡했고, 과세 처분에도 귀책 사유가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2004년 당시 뇌물에 얼룩진 심사 결과의 오류를 바로잡고, 새로운 방법으로 과세 가격을 결정한 것이지 '신의칙'을 위반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 전관예우 '반칙' 논란
 
관세청과 디아지오의 심판청구 결과가 나온 직후에는 '전관예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디아지오가 심판청구 대리 업무를 맡긴 곳이 국내 굴지의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과 김앤장 법률사무소였고, 이 곳에는 전직 관세청 고위직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 관세청 차장 퇴직 후 로펌에 재취업한 손병조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좌)과 이대복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우).
 
서울세관이 2009년 디아지오에 1차 과세할 당시 '관세청 2인자'였던 손병조 차장은 이듬해 6월 명예퇴직한 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으로 일했다.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세금부과 처분을 스스로 뒤집고, 관세청의 과세 논리를 반박해주는 조언자의 역할을 한 것이다.
 
2011년 6월 명예퇴직한 이대복 전(前) 관세청 차장 역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재취업해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직 관세청 차장들이 모두 과세당국에 맞서 디아지오의 불복 업무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 것이 전관예우 논란의 불씨를 댕겼다. 
 
사상 최대 규모의 관세 부과 처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로펌을 통한 불복이 장기화되고 있는 배경에는 이들의 힘이 적잖이 작용했다는 시각이 많았다. 실제로 조세심판원은 2011년 5월 재조사 결정을 내렸고, 2차 과세도 심판원과 법원 판결로 인해 제동이 걸려 있다.
 
전관예우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로까지 불똥이 번졌다. 2011년 관세청 국정감사 당시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관세청 차장들이 디아지오 불복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지적했고, 같은 당 이혜훈 의원은 "아주 끔찍한 전관예우"라고까지 표현했다.
 
전관예우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태평양은 디아지오 불복 대리업무에서 빠졌고, 현재 김앤장만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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