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실수요자 당첨기회 늘린다더니‥"청약가점제는 왜"

  • 2016.11.08(화) 10:00

'11.3 부동산시장 안정대책' 리뷰
①"청약가점제 배정분 확대없어" 실수요자 불만
②계약금 분납 '허점' ③전매제한 소급적용 필요

대기업 과장 이 모(39)씨는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11.3 대책'에 아쉬움이 많다. 그는 지난달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2단지를 재건축해 분양한 '고덕 그라시움' 청약에 신청했지만 당첨되지 못했다. 청약가점이 59점이어서 당첨권에 들기를 기대했지만 그가 신청한 주택형의 커트라인(하한선)은 61점이었다.

 

이 씨는 "정부가 실수요자 분양 당첨 기회를 확대한다고 해 가점으로 뽑는 물량이 늘어날 것을 기대했는데 이번에도 그렇지 않았다"며 "나 같은 실수요자들에게 괜찮은 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되는 건 앞으로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푸념했다.

 

정부가 지난 3일 '실수요 중심의 시장형성을 통한 주택시장 안정적 관리방안'이라는 이름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에서는 "이름에 비해 내용이 미흡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정작 실수요자 당첨 기회를 늘리는 제도에는 인색한 반면, 투기적 수요를 걷어내는 데는 구멍이 적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이다.

 

▲ 한 분양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방문객들이 청약 상담을 하고 있다.(사진: 대우건설)

 

◇ '가점제' 빠진 실수요자 배려대책

 

무주택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청약가점제 배정 물량이 확대 되지 않은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 국토교통부가 전국 37개 '조정지역'에 적용키로 한 '맞춤형 청약제도'는 전매제한 기간 강화, 재당첨 제한 및 1순위 제한 등 투기과열지구의 지정 효과 중에서 분양시장과 관련한 내용들을 골라 담았다.

 

하지만 분양 관련 규제 내용 중 유일하게 투기과열지구 수준으로 상향되지 않은 것이 청약가점제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 청약가점제 적용 비율이 전용면적 85㎡ 이하 경우 40%에서 75%로, 85㎡ 초과는 0%에서 50%로 높아진다. 이는 2013년 가점제 당첨 배정 물량을 축소하기 전 비율이다.

 

청약가점제는 ▲무주택 기간(최고 32점) ▲부양가족수(최고 3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최고 17점) 등을 더해 가점이 높은 순으로 민영주택 배정 물량의 당첨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서 가점제 적용비율은 현재 수준이 그대로 유지됐다.

 

정부는 청약가점제와 관련해서는 내년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이 전용 85㎡ 이하 민영주택에 대해 시행여부·비율을 결정하도록 한 것만 조정지역에 한해 시행 유보키로 했다. 국토부는 청약가점제를 손보지 않아도 1순위 자격과 재당첨 제한을 통해 투자 수요를 걷어내면 실수요자의 당첨 기회가 충분히 확대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가점제 내에서의 경쟁이 줄지 않는다는 게 그동안 청약 과열 경쟁에 치인 실수요층의 불만이다. 무주택 청약가점 고점자들은 "당첨가점 내에 들지 못하면 1주택자와 똑같이 청약경쟁을 해야하는데 실수요자 당첨 기회를 확대한다면서 청약가점제를 놔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자료: 국토교통부

 

◇ '일단 1000만원' 계약금 분납제 구멍

 

국토부는 이번 대책에 과도한 투자수요 관리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도입했다. 이 중에는 조정지역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계약금을 종전 분양대금의 '5% 이상'에서 '10% 이상'으로 높이기로 한 것도 있다. 계약금을 10% 이상로 높여 소액만 들고 아파트 분양 시장에 뛰어드는 가수요를 차단하겠다는 게 이 방안의 노림수다.

 

하지만 실효성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대다수 아파트 아파트가 초기 공사비용 확보를 위해 계약금으로 분양대금의 10%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상당수 분양현장에서 판촉을 위해 활용하는 '계약금 분납제'를 규제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라는 반응도 있다.

 

계약금 분납제는 계약금이 분양대금의 10%로 정해져 있더라도 최초 계약서 작성 시에는 1000만원 등 일정 금액만 내도록 한 뒤, 나머지는 1개월 이내 등 시한을 두고 낼 수 있도록 한 방식이다. 최초 분양계약 단계의 진입 장벽을 낮춰 투자수요를 끌어들임으로써 초기 계약률을 높이는 분양 마케팅 기법이다.

 

이 같은 계약금 분납제를 활용해 웃돈이 붙을 만한 아파트를 잡아 둔 뒤 나머지 계약금을 채 내기 전에 전매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게 일선 분양업계나 중개업소의 전언이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계약금 분납제나 중도금 무이자 융자 같이 투자 수요를 유인하는 마케팅 방식이 그대로라면, 전매제한이 강화되더라도 1순위 청약이나 재당첨 등에서 자격제한에서 걸러지지 않은 투자수요자들이 차익을 노리고 분양시장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수도권 조정지역 지정 현황
▲ 세종 및 부산 등 지방 조정지역 지정 현황(자료: 국토교통부)

 

◇ 막차 청약 열풍.."규제 늦었다"

 

조정지역 분양권 전매제한이 시행 시점 이전 물량에 소급적용 되지 않는 점은 대책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부분으로 꼽힌다. 정부 대책 발표를 비웃듯 규제 시행 시점 이전에 분양한 아파트에 수요가 몰린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3일 이전에 입주자모집공고를 받아 분양권 전매가 제한을 받지 않는 아파트 단지에는 '막차' 수요가 대거 참여했다.

 

대책 발표일 1순위 청약접수가 진행된 세종시 '캐슬앤파밀리에 디아트 세종'의 경우 445가구 모집에 11만706명이 몰렸다. 같은 날 1순위 청약을 받은 화성 동탄2신도시 '우미 린스트라우스 더레이크' 아파트 834가구에는 6만5943명이, 부산 해운대 센텀 트루엘 1·2단지는 7만9475명이 몰렸다. 각각 평균 경쟁률은 249대 1, 79대 1, 206대 1이다.

 

분양 시장의 가수요를 차단하는 수준의 제재라면 왜 진작 손대지 않았냐 하는 비판도 있다. 부산 해운대, 위례신도시 등 과도하게 높은 청약경쟁률이 나타나고, 또 단기간에 높은 웃돈을 붙여 분양권을 되파는 전매가 성행한 것은 이미 1년도 넘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분양 과열의 불씨가 옮아붙은 강남 재건축 추진 단지 등 매매시장의 투자 수요를 제어해야 할 때인데, 이는 방치했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당장 후속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민생경제특별위원회 김상희 위원장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분양가 상한제, 초과이익 환수제 등이 빠진 대책을 보면 정부 투기 근절 의지에 의문이 든다"며 "안일한 시각을 버리고 투기과열지구 지정 등 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