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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폼 나던 외환맨의 새로운 도전

  • 2016.11.11(금) 10:05

숲 해설가와 시인부터 임대 사업자까지
옛 외환은행 사라졌지만 곳곳에서 활약

"제가 할아버지가 됐을 때 손주들에게 외환은행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2014년 옛 외환은행을 퇴직한 박선배 씨(62)가 말단 사원 시절 사보에 쓴 글이다. 2015년 옛 외환은행이 하나은행과 합쳐지면서 그는 고향을 잃었다. 어느 덧 손주를 봤지만 "할아버지가 왕년에 잘 나갔다는 걸 보여줄 수 없게 됐다"며 웃었다.

박 씨는 퇴직 후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엘리트의 상징이던 외환맨으로 승승장구한 시절에 비하면 어깨에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의 인생도 충분히 즐겁다"고 말했다.

외환은행은 사라졌지만 '외환맨'은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외환은행 퇴직자들은 과거의 명성을 뒤로 한 채 새로운 도전에 나서면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 영업 경험 살려 숲 해설

박 씨는 창경궁 일대와 유치원, 노인정에서 주로 일한다. 현대자동차와 롯데, 한국은행 등 대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한다. 그는 영업점에서 다양한 고객을 상대했던 경험을 살려 숲 해설을 하고 있다. 박 씨는 "나무의 단편적인 특성을 나열하기보다 연령대에 맞춰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40년 가까이 은행에 다닌 박 씨는 퇴직 후엔 반드시 다른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퇴직을 앞두고 공허할 때마다 찾은 산의 매력에 빠지면서 진로를 숲 해설가로 정했다. 마음을 굳힌 그는 퇴직 전부터 숲 해설가 자격증 과정을 6개월간 밟으며 틈틈이 준비했다.

때때로 과거 영광을 떠올리기도 한다. 박 씨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취업준비생들에게 외환은행은 한국은행 다음으로 선호하던 직장이었다. 박 씨는 "은행을 나오는 순간 별거 없더군요. 숲 해설은 50분 말하고, 10분 쉬는데 익숙한 선생님 출신이 오히려 잘 한다"고 말했다.

박 씨의 부인도 외환은행 퇴직자다. 그 또한 퇴직 후 자연요리 전문가로 전직해 된장과 고추장을 만드는 법을 강의하러 다닌다. 과거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 부부는 퇴직을 앞둔 은행 후배들을 향해 금융 이외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라고 조언했다.

▲ 외환은행에서 퇴직한 박선배 씨가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 시인이 된 본부장님

'신용카드', '금고', '현찰', 'CD기(현금지급기)', '스마트폰뱅킹'. 올해 '스토리문학'지를 통해 등단한 한성춘 씨(64)의 시 제목이다. 옛 외환은행 대구•경북 본부장, 자회사였던 외환에프앤아이 감사를 지낸 한 씨는 30~40년의 은행 근무 경험을 녹여 시를 쓰고 있다.

가령 'CD기'라는 시를 통해선 사람의 마음을 표현했다. 받는 것만 좋아하고 베푸는 데 인색한 사람의 마음을 입금 제한은 없으면서 출금 제한은 있는 CD기에 비유했다. 금융을 소재로 한 시는 좀처럼 없어서 새롭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한 씨는 요즘 고려대 평생교육원과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에서 시
 강의를 듣는다. 어려운 현대시보다는 서정시 위주로 배우고 있다. 그는 "퇴직 후 무료하게 지내는 동료들보다 활발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한 씨는 옛 명성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건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외환은행이 경영을 잘했다면 지금쯤 성공한 은행으로 남았겠지만, 이렇게 피인수된 이유는 그만큼 많이 부족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 시인으로 활동 중인 한상춘 전 외환은행 대구•경북 본부장(사진=본인 제공)

◇ 각종 사업 수완도 발휘

지난해 퇴직한 이기상(가명) 씨는 임대 사업자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지금은 경제적인 여유와 함께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실직자에 불과했다. 외환맨이라는 명함 1장에서 비롯된 인정과 부러움의 시선이 사라지자 정체성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씨는 훌훌 털고 일어나 재기에 성공했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 통합 과정에서 퇴직금을 두둑히 챙긴 그는 건물 신축에 과감히 투자했다. 아직 과거 연봉만큼 벌진 못하지만 다른 퇴직자들에 비하면 비교적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물론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았다. 은행 대출부터 건설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집 한 채를 지으면 10년을 늙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외환은행에서 대출을 취급한 경험이 있던 이 씨는 그나마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 씨와 비슷한 시기에 퇴직한 한성우(가명) 씨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수산물 중개업을 하고 있다. 외환은행 근무 시절 "그렇게 섭외를 잘 하는 사람이 없다"는 평가대로 은행에 다닐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면서 사업을 알차게 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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