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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한국GM '물 들어올때 노 저었어야'

  • 2016.11.21(월) 17:45

직수입 판매에 따른 수급 불균형 심화
대형급 세단 실패 징크스‥월 판매 '급감'

기대가 컸다. 과거 GM대우 시절부터 내려온 '대형급 세단은 안된다'는 징크스를 깰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첫 출시 당시에는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미국에서 인정 받은 모델이다. 그만큼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초기 폭발적이었던 인기는 금세 사그러들었다.

과거에는 상품성이 떨어져서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국내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할만 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목을 잡혔다. 미국에서 들여오다보니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 생겼다. 처리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결국 과거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됐다. 한국GM의 준대형 세단 '임팔라'이야기다.

◇ 스타트는 좋았는데

작년 8월 한국GM은 야심작 하나를 선보였다. 쉐보레 '임팔라'다. 그동안 국내 시장에서 한국GM은 유독 대형급 세단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장악하고 있는 시장 자체가 공고한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경쟁력있는 차량을 선보이지 못한 것이 컸다.

모델 라인업이 다양하지 못한 한국GM에게 대형급 세단 시장을 잡을 방법은 경쟁력 있는 차량을 본사로부터 들여오는 수밖에 없었다. 눈높이가 높은 국내 소비자들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서는 미국에서도 인정 받은 모델이 필요했다. 마침 GM의 '임팔라' 10세대 모델이 눈에 띄었다. 미국 대형 세단 판매 1위를 자랑하는 모델이다.


이만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지난 2013년 풀체인지된 이후 미국 시장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었던 모델이다. 1957년 처음 출시돼 5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모델인 만큼 브랜드의 역사성도 갖췄다. 게다가 '임팔라'는 출시 이후 지금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1600만대 이상이 판매될 만큼 검증된 모델이기도 했다.

한국GM은 미국 GM 본사에 '임팔라' 투입을 요청했고 결국 성사시켰다. 작년 9월 본격 판매에 돌입, 1634대를 판매했다. 고무적이었다. 지금껏 국내 대형 세단 시장에서 쓴맛만 봤던 한국GM이었던 만큼 '임팔라'의 인기는 놀라웠다. 작년 9월 판매량은 기아차의 K7 판매량을 앞서는 수치였다.

한국GM은 이런 여세를 몰아 작년 12월에는 2699대를 판매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에 식상했던 소비자들이 '임팔라'로 갈아탔다. 그랜저, 제네시스, K7, SM7 등 뻔한 모델만 가득했던 국내 대형급 세단 시장에 '임팔라'의 등장은 신선했다. 가격, 편의 사양, 안전성 등 모든 부문에서 경쟁력이 있었다. 한국GM의 기대도 커졌다.

◇ "물 들어올 때 노 저었어야"

한국GM은 '임팔라'를 미국에서 전량 수입해서 국내에 판매했다. 이런 방식은 과거 GM대우 시절부터 사용하던 방법이다. 국내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것보다 리스크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다. 다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경우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임팔라'가 그랬다. 당초 한국GM은 '임팔라'의 판매 추이를 살펴 본 후 국내 생산·판매를 결정키로 했다. 노조도 원했다. 생각보다 '임팔라'의 인기는 뜨거웠다. 한국GM 입장에서는 당초 계획했던 대로 국내 생산을 심각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미국 본사와도 협의에 들어갔다.

한국GM이 내걸었던 '임팔라'의 국내 생산 조건은 '월 1000대, 연 1만대 이상 판매'였다. 이 정도 볼륨을 갖춰야 본사에도 국내 생산을 진행할 명분이 생긴다. 수지타산도 맞는다. 하지만 한국GM은 지난 4월 돌연 '임팔라'의 국내 생산 계획 포기를 선언했다.


본격 판매가 시작된 작년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임팔라'의 월 평균 판매량은 1640대. 한국GM이 세웠던 기준에 부합했다. 그럼에도 국내 생산은 없던 일이 됐다. 당시 노조도 강하게 반발했지만 한국GM은 '전량수입'원칙을 고집했고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한국GM은 왜 국내 생산 계획을 포기했을까.

한국GM은 "제품이 갖고 있는 수입 세단의 프리미엄 가치를 원하는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국내 생산을 단행할 경우 생산라인 재조정 등 비용 문제를 비롯 가격 등에서 현재의 메리트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한·미 FTA 수혜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비용이 문제였다.

국내 생산 계획이 철회되자 수급 불균형 문제는 더욱 커졌다. 더불어 지난 6월로 개별소비세 인하가 종료됐다. '임팔라'의 판매량은 개소세 인하 마지막 달인 지난 6월 1129대를 판매한 이후 7월부터는 월 500대 수준으로 급감했다. 비용 탓에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지 못했던 것이 뼈아팠다.

◇ 반복되는 '실패 트라우마'

한국GM에게 '임팔라'의 판매 급감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일단 국내 대형 세단급 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기회를 또 잃어버린 것이 크다. 유독 약했던 시장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그 기회를 차버린 꼴이 됐다. 그 사이 경쟁 업체들은 치고 나갔거나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현대차의 '신형 그랜저' 출시가 임박했고 기아차는 'K7'을 앞세워 입지를 다지고 있다. 반면 한때 잠깐 돌풍을 일트켰던 '임팔라'는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스파크와 말리부 이외에 또 하나의 볼륨 모델을 추가할 수 있었던 절호의 찬스를 날려버렸다. 이제 대형급 세단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쉐보레 브랜드가 어필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 현대차 '신형 그랜저(IG)'.

또 하나 아픈 구석은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는 점이다. 과거 GM대우 시절에도 한국GM은 국내 시장에 대형 세단을 선보였었다.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다. GM 계열인 호주의 홀덴 모델을 국내에 마크만 바꿔 들여왔다. 국내 대형 세단 시장을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국내 소비자들의 니즈는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라인업 확대로 판매는 미미했다. 소비자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은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는 '좀처럼 보기 힘든 신차'라는 오명을 안고 단종됐다. 이후 한국GM에게는 '대형급 세단은 안된다'는 징크스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만큼 상처가 컸다.

'임팔라'는 이런 한국GM의 상처를 치유하고 징크스를 깰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오히려 꼬리표처럼 따라 붙고 있는 징크스를 더욱 공고히한 결과만 초래했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업체에게 수급 불균형의 심화는 해당 모델의 실패를 예견하는 전조"라며 "한국GM으로서는 과거의 잦은 실패에 따른 트라우마가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데 방해가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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