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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체계, 미래를 보고 짜라"

  • 2016.11.28(월) 18:12

한전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공청회 개최
전문가들 "소비량 적은 가구 배려"에 무게
"가격보다는 소통""단기정책 지양" 주장도

“우선 올 여름, 폭염에 시달린 많은 국민들이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감과 요금폭탄으로 인한 심려를 끼친 점에 사과드린다.” (권기보 한국전력 영업처장)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전기요금 체계 개편방안 공청회’에서 주최자인 한국전력공사는 국민들에게 고개부터 숙였다.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누진제로 많은 국민들이 전기요금 부담에 제대로 냉방기(에어컨)를 가동하지 못했고, 가동했다 해도 10만원이 넘는 전기요금 폭탄을 맞는 가정이 급증(16년 5월 24만 가구→16년 8월 396만 가구)해 국민부담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시대변화를 반영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한국전력을 비롯한 정부는 최근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내놓았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요금 체계는 사용량이 증가할수록 요금이 늘어나는 누진제를 기본으로 한다. 지금까지 시행된 요금체계는 2004년 9월 마련된 것으로, 주택용에는 6단계 최대 11.7배 누진제가 적용돼왔다. 정부가 새로 내놓은 개선안은 누진단계를 3단계로 줄이고, 배율도 대폭 완화해 국민 부담을 줄이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이와 함께 2020년에는 주택용에도 계시별 요금제(시간대별로 요율을 차별화하는 것)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국민들이 누진제와 계시별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취약계층 필수사용량 보장을 통해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교육용 요금체계 역시 개선해 찜통교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권기보 한국전력 영업처장은 “합리성과 형평성, 안정성과 지속가능성 등 4가지 원칙하에 개편안을 마련했다”며 “국제기준과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 누진단계를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주택용에도 계시별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국민 선택권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 권기보 한국전력 영업처장은 28일 열린 전기요금 개편안 공청회에서 올 여름 전기요금 폭탄으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했다. 이와 함께 이번에 제시된 3개 개편안에 대해 설명했다.

 

◇ 1안+2안=3안

 

우선 정부는 누진제 개선을 위해 총 3개 안을 제시했다. 누진제 원리에 가장 근접한 1안과 현 체계를 최대한 유지하는 2안, 1안과 2안의 단점을 보완한 3안이다.

 

우선 1안은 1구간을 필수사용량 200kWh로, 2구간은 평균사용량인 400kWh로 나눴다. 선진국 사례를 반영해 중간요율은 평균 판매단가인 130원/kWh으로 설정, 요금인하율(현행 6단계 누진제 적용시 전기요금수입 대비, 개선안 적용시 전기요금수입 감소율)은 10.4%이다. 이 경우 최고단계 요율은 kWh 당 312원으로 상대적으로 높아 전력소비가 많은 가구는 요금인하 혜택이 비교적 크지 않다.

 

반면 그 동안 세분화됐던 저소비 구간이 200kWh로 통합되는 까닭에 236kWh 이하인 저소비 1122만 가구는 요금 부담이 최대 4330원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이유로 전력소비량이 적은 가구의 혜택이 없고, 오히려 저소득층의 전기요금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한전의 요금수입은 8391억원 감소할 전망이다.

 

2안은 1·2구간은 현행대로 유지하고 3구간 이상을 현행 요율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 경우, 현재 1·2단계 구간과 요율을 그대로 유지해 전기 소비패턴을 반영하지 못하고 다소비 구간을 3단계로 통합하는 까닭에 전력소비량이 많은 가구의 요금부담이 급감한다. 반대로 300kWh까지 사용하는 소비자는 요금 부담이 지금과 같아 ‘부자감세’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2안이 실행되면 한전의 요금수입은 9295억원 줄어든다.

 

3안은 각 구간별 사용량 기준은 1안과 같다. 다만 1안과 요율을 달리해 구간별 전력량요금이 더 낮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1안에서 문제로 지적된 저소비 가구의 요금부담(3안의 경우, 200kWh 이하 868만 가구 최대 3760원 증가)을 없애기 위해 1단계 가구에는 4000원의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3안이 적용되면 한전의 요금수입은 9393억원 줄어든다.

 

▲ 그래픽: 유상연 기자/prtsy201@

 

◇ 전문가 “3안이 합리적, 지속 개선해야”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번 개선안이 현행 누진제의 문제점을 완전히 고칠 수는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제시된 3개 안 중에선 1안과 2안의 단점을 보완한 3안이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이번 누진제 개선 TF팀에도 참여한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누진제 개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누진제 및 요금부담 완화로 인해 급증할 수 있는 전력수요, 미래에너지 정책비용 등 해외 사례를 토대로 많은 내용을 분석했다”며 “도출된 안 마다 장·단점이 있는데 이 중 3안이 선호하는 결과를 담고 있어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누진제가 개편되면 한전은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어떻게 줄이고, 추가적으로 발전소를 짓는다면 신재생에너지나 분산형 등 새로운 내용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전기요금 개편안 공청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제시된 3개 안 중 1안과 2안을 절충한 3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박주헌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은 “이번에 제시된 개편안은 기존 누진제와 달리 1단계는 필수사용량, 2단계는 평균사용량, 3단계는 초과사용량 등을 기준으로 삼으며 근거를 충실하게 확보했다고 본다”며 “에너지 소비량이 적은 가구 등을 고려한 3안이 개인적으로 우수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다만 장기적으로 ‘에너지는 싸야한다’는 인식을 바꾸고, 에너지 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를 대표하는 시민단체 등은 개편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투명한 가격 결정구조와 이를 감시하는 기구 등의 설치를 주장했다.

 

김연화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원장은 “이번에 제시된 안 중 어떤 것이 좋고 나쁜지를 따지기보다는 국민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며 “전기요금이 어떻게 설정됐고, 앞으로는 어떤 것을 더 부담해야 하는지 소비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를 위해선 국민 합의에 의해 가격을 결정하는 새로운 기구 설치를 제안한다”며 “이 기구를 통해 전력산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비용 부담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들이 이를 알아야 합리적 소비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 시민들 “무조건 내리자는 것 아니다”

 

이날 공청회에는 에너지관련 여러 단체와 시민들이 참석하며 전기요금 개편에 대한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이들은 전기요금을 단순화 해 쓴 만큼 내자는 목소리를 내는 한편 무조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한 에너지관련 시민단체 대표는 “우리나라 전기요금 체계 문제는 징벌적 누진제가 주택용에 한정 운영돼 국민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라며 “무조건 요금을 낮추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는 전기 생산을 위해 원자력과 석탄 등의 발전소 비율이 높은데, 이번 임시방편으로 전기요금 체계를 개선해 한전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미래 에너지 세대를 준비하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특히 한전의 수익을 재원으로 신재생에너지 등에 투자하는 만큼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정책은 지양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에너지 가격을 정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성수동에 거주하는 40대 주부는 “올 여름 에어컨을 두고 아이들과 가장 많이 싸웠던 것 같다”며 “전기요금 개편으로 여름과 겨울철 부담을 줄이는 것도 좋지만 평소에 열심히 전력 사용량을 줄이려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 28일 열린 전기요금 개편안 공청회에는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정부가 제시한 개편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전기요금에 대한 저마다의 주장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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