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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차라리 삼성 지주회사 밀어주자

  • 2016.12.08(목) 15:06

총수 청문회가 남긴 것
'재벌기업 지주사 전환 지원' 역발상 필요

9개그룹 총수에 대한 청문회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청문회는 대기업과 대통령 사이에 '대가성 거래'가 있었는지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는데, 총수들의 고해성사로 밝혀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특검의 서슬이 기다리고 있는데 섣불리 고해성사를 할 수 없는 일이다. 총수들의 얘기처럼 '살아있는 권력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그 수준의 거래만 있었을 수도 있다.

 

진실이 무엇이냐를 가려주는건 국회(국정조사특별위원회)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특검의 몫이다. 대부분 총수들이 딱히 할말이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입장이 달랐다. 다른 총수들에 비해 큰 약점을 안고 청문회에 출석했다. 다른 그룹들이 또 다른 그룹들과 함께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데 반해 삼성은 최순실 모녀를 직접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청와대가 '나라의 문화융성과 스포츠발전'이란 명분을 붙여준 재단에 돈을 낸게 아니라 '비선 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씨 개인을 지원한 게 드러났으니 큰 약점이다.

 

◇ `해체` 청문회로 끝난 총수 청문회  

 

총수 청문회는 결과만 놓고보면, '뇌물죄 청문회'가 아니라 '해체 청문회'다. 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정경유착의 통로로 부각된 전경련과 삼성 미래전략실 해체가 현실로 다가왔다.

 

두 조직의 '해체'가 이재용 부회장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선 실세 지원'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으로선 '정경유착'을 끊어낼 상징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만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과 미래전략실 모두 이 부회장의 할아버지이자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만들었고, 우리나라 대기업의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니 의미가 적지않다.

 

전경련과 삼성 미래전략실 해체 이슈는 대기업 특히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가 시작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미래전략실 해체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맞물려 있어 민감하다. 재벌 또는 삼성 저격수라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조차 청문회에서 "삼성은 국내 계열사만 약 60개, 해외까지 총 400여개 계열사가 있다"며 "그룹의 컨트롤타워 없이 경영을 잘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미래전략실 해체의 방향은 수술과 재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래전략실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비공식적인 조직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따라서 이같은 비판의 여지를 없애면서도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은 살리는 방안이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전략실의 역할중 계열사(특히 삼성전자)로 이관할 것은 하고, 통합관리가 필요한 기능은 다른 이름이나 조직형태가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수준의 변화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비공식적인 조직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고, 컨트롤타워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어정쩡한 조직이 될 위험이 크다.

 

◇ 삼성이 가야할 길 '지주회사 체제'

 

궁극적으로는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로선 재벌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지적하는 사람들조차 지주회사 체제 이상의 대안을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 지주회사 깃발을 들었던 LG그룹은 종종 삼성이나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와 대비되며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픽/ 김용민 기자 kym5380@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돈이다.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은 삼성전자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안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삼성전자 지주회사가 공정거래법상 사업회사 지분요건(상장사 지분 20% 이상)을 충족하기 위해 모자라는 지분을 확보하는데 17조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외에도 세금문제 등 검토할 것이 많다.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대주주의 지주회사 지분이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하는데, 이를 위한 지분승계 과정에서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하는 숙제도 있다. 

 

삼성이 더 힘들게 넘어야 할 산은 삼성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오너의 지배력 확대와 동일시하는 시각이다.

 

삼성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비판하는 쪽은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나 경영투명성 확대보다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런 시각에 기초해 차단막을 설치하려는 시도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게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을 할때 보유중인 자사주를 활용하는걸 차단하려는 법개정안이다.

 

현행 법에서는 인적분할을 하면 모든 주주가 지주사와 분할되는 회사(사업회사) 지분을 똑같이 받게된다. 삼성전자 지분 100주를 갖고 있는 주주는 인적분할때 지주사 100주와 사업회사 100주를 받게된다.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도 마찬가지다. 인적분할 뒤 지주사는 사업회사 보유 자사주를 매입해 자회사(사업회사) 지분율을 더 높일 수 있다.

 

이것이 오너의 지배력 확대에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에 따라, 현재 국회에는 ▲분할되는 회사(사업회사)에 주어지는 자사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개정안 ▲분할전 자사주를 소각한 뒤에야 인적분할이 가능하도록 하는 공정거래법개정안 ▲자사주를 사업회사에 분할하면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하는 법인세법개정안 등이 발의돼 있다.이들 규제를 넘어 지주회사 전환을 어렵게 하기 위해 자회사 지분요건을 현행 상장사 20%와 비상장사 40%에서 상장사 30%와 비상장사 50%로 높인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있다.

 

◇ 지주회사로 가는 길, 산 넘어 산

 

금융지주사 문제도 간단치가 않다. 현재는 삼성이 전자분할-물산합병 등 어떤 과정을 거쳐 지주회사를 만든다해도 금융사를 계열사로 둘 수 없다. 지주사 체제 전환을 위해선 금융 계열사를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만들어야 하는데, 간단치가 않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로 전환을 위해선 금융계열사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증권 지분 30.5%, 삼성자산운용 100%, 삼성카드 72%를 보유중이다. 문제는 삼성화재. 삼성화재 지분 15%를 보유해 15%를 더 확보해야 하는데 보험업법이 난제다. 보험업법상 보험사의 계열사 투자한도는 총자산의 3% 이내, 자기자본의 60% 이내로 정해져 있어 삼성생명이 계열사 지분을 살 수 있는 한도는 2500억원도 안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성화재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기 위한 자금마련이나 투자한도를 늘리기 위해 보유중인 삼성전자 등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 가뜩이나 취약한 그룹의 지분구조를 감안하면,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계열사에 넘기는게 필요하지만 이를 받아줄 수 있는 계열사가 없는 상황이다. 

 

◇ 규제완화는 '하세월'


관심은 중간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개정안이다. 중간금융지주사를 허용하고, 지주회사가 중간금융회사 지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금융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용이 골자다.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금융-산업분리 원칙을 다소 풀어주자는 것이다. 금-산분리 원칙은 재벌그룹들이 오너 지배력 확대나 부실계열사 지원에 금융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을 막기위해 만들어진 원칙이다. 하지만 지금은 금융사 자체에 대한 규제 등을 통해 실질적인 금-산분리가 이뤄지고 있어 엄격한 지분규제가 필요한가에 대한 지적이 있어왔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해온 중간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하는 법개정안 또한 논란 속에 20대 국회에서 통과가 될지 의문이다. 이 개정안이 재벌그룹, 특히 삼성을 위한 법이 아니냐는 반대때문이다. 오히려 여소야대 20대 국회들어 대기업 규제를 더 강화하기 위한 법들이 줄줄이 발의된 상태다.

 

재계에서는 이같은 반기업정서에 기반을 둔 흐름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이미 다양한 금융 규제를 통해 실질적인 금-산분리를 하고 있는데, 지분규제는 명분에 집착한 옥상옥이라는 비판이다. 지주회사 전환도 정부가 재벌기업의 투명경영과 계열사 동반부실 차단 등 긍정적인 면이 많다며 앞장서 도입했는데, 지금은 지주회사 전환을 더 어렵게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볼멘소리다.

 

재계에서는 더 나아가 지주회사 자체가 역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55개그룹중 28곳이 금융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일반지주회사체제인 그룹중에는 세곳만 금융사를 보유하고 있다. 또 지주회사 부채비율 200% 이내 유지, 비계열사 주식 5% 이상 보유금지 등은 지주회사의 핵심 기능인 미래성장동력 확보 노력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지배구조에 대한 시각 바뀌어야

 

현재 지주회사 규제완화와 관련된 논란은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시켜 준다는 반대논리와 과거 재벌기업 지배구조로 인한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지주회사 취지를 살려 지주회사 전환을 촉진해야 한다는 논리가 부딪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6일 청문회에서 "저보다 능력있는 분이 있다면, 경영권도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되기 위해 대기업 경영자(오너 포함)들이 가져야할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이 부회장은 또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한게 아니냐는 질문에 "지분이 많아진다고 지배력이 커지는 게 아니다. 제가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저희 임직원과 고객사에게 인정을 받아야 (지배력이 강화)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또한 진심이든 아니든 가야할 방향이다.

 

삼성과 같은 재벌기업의 불투명한 경영, 뒷거래를 통한 정경유착에 대한 우려가 크다면, 오히려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좀 더 개선하도록 하는 역발상이 필요할 때다. 글로벌시장에서 국가간, 기업간 경쟁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한데 '재벌=악의 축'이란 눈으로 우리 기업을 보는 건 너무 한가하다.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엘리엇과 같은 기업사냥꾼들은 반기업정서에 묶여있는 우리 대기업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해 이익을 취하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을 독려하고 지원하자. 그것이 지금의 재벌기업 구조보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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