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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빠지는 정부...LTV·DTI 다시 조일까

  • 2017.01.11(수) 17:10

국내외 기관 LTV·DTI 강화 권고 이어 정치권 가세
여야 모두 현 정부와 선 긋기…'일부 조정' 전망도

"주택 대출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은 가계부채 대책 차원에서 큰 틀을 유지할 것" (2014년 2월 27일 정부 가계부채 구조개선 촉진방안 합동브리핑,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LTV·DTI 같은 부동산 규제는 한 여름옷을 한겨울에 입고 있는 격" (2014년 6월 13일,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내정자)

"금융 안정이 많이 됐기 때문에 금융 안정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금융이 실물을 지원할 방안이 있는지 관계 부처와 검토해보겠다." (2014년 6월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관련 부처와 협의해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 (2014년 7월 7일, 국회 정무위원회 기관보고,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지난 2014년, LTV·DTI 규제 수준을 유지하겠다던 정부가 '완화'로 돌아선 것은 순식간이었다.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6월 초까지만 해도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큰 틀을 유지하겠다고 했다가,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이 '완화'를 주장하자 금세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며 백기 투항했다.

정부가 최근 현행 LTV·DTI 규제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재차 강조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규제 강화'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점차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이들이 많은 것은 이런 사례가 수도 없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 국제기구 '규제 강화' 권고에 정치권까지 가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2014년 7월 LTV를 70%로, DTI는 60%(수도권)로 완화했다. 규제 완화는 우리나라 부동산 경기 침체를 어느 정도 방어했지만, 그 부작용으로 가계부채 폭증을 불러왔다. 지난해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며 1300조원을 훌쩍 넘긴 가계부채 규모는, 올해 1500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한 세미나에서 올해 말 가계부채 규모가 약 1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국내외 관련 기관들은 LTV·DTI를 다시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지속해서 해왔다. 지난해 8월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DTI 규제를 점진적으로 30~50% 수준까지 낮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글로벌 투자기관인 노무라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가 LTV와 DTI 한도를 현재의 높은 수준에서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여야는 지난 8일 새해 들어 처음 열린 '여야정 협의체'에서 LTV·DTI를 점검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현재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가계소득이 2.4% 늘어나는 동안 가계부채는 6.4% 늘어났고, 부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 현 정부와 '선 긋기' 정치 셈법 변수

정부는 정치권의 요구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여야정 협의체가 열린 바로 다음 날인 9일 기자간담회에서 LTV와 DTI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여야정 협의체의 'LTV·DTI를 점검 합의'에 대해선 "2014년 DTI 등 규제 합리화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재점검하자는 취지였다"며 "(규제를 강화할지 완화할지) 방향성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2017년 금융위원회 정부 업무보고 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가계부채 주무 부처인 금융위 역시 이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DTI 등을 움직여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앞서 내놓은 새해 업무 계획에서도 LTV·DTI 비율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대신, DTI 산정 방식을 개선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가계 부채를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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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특히 가계부채 급증에 대응해 분할상환 방식을 유도하고 소득 심사를 강화하는 등 대출을 조여왔는데, LTV와 DTI까지 강화하면 부동산 급격하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압박에 정부가 언제까지 이런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규제 강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여야 모두 현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인 LTV·DTI 규제 완화를 정책 실패로 강조하면서 선 긋기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올해에도 가파르게 이어질 경우 정부의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정부는 LTV·DTI 유지 방침을 밝히면서도, 제도 개선의 여지를 남겨두기도 했다. 이찬우 차관보는 LTV와 DTI의 규제 효과 재점검을 언급했고, 임 위원장 역시 "필요한 제도 개선 논의가 있다면 당연히 금융위원장으로서 참여해 고민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정부가 결국 위험군별로 규제를 차별 적용하는 식의 '합리적 조정'을 할 수도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위축이나 실수요자 충격 등 여러 이유를 들어 막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게 부동산 정책"이라며 "또 합리적 조정이라는 명분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겠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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