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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건설사 웃음에 '한숨짓는' 유화업계

  • 2017.01.17(화) 15:45

국제유가 점진적 회복…중동 공사발주 증가
동남아·중동 유화설비 증설 '공급과잉' 우려

중동 시장을 주름잡는 국내 A 건설사의 한 사무실 "그 프로젝트, 우리가 따냈습니다!"
같은 시간 국내 B 정유사의 한 회의실 "하아, 또 수주 했대? 왜 이렇게 자꾸 수주 하는거야?"

 

올 들어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하는데요, 한 때 '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 도우며 국내 경제를 이끌었던 건설과 유화업계의 희비가 엇갈린다고 합니다. 어떤 사연일까요?

 

건설업계에선 산유국의 산업 다각화 전략과 인프라 투자 재개로 다양한 공종에서 수주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제유가의 점진적 상승으로 주춤했던 중동 지역 발주가 이전보다 늘어날 전망이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발주도 꾸준하기 때문인데요.

 

이에 반해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사 입장에서 건설사들의 해외 정유 석유화학 플랜트 수주는 경계해야 할 요소입니다. 2015년부터 시작된 저유가 호황기가 당분간은 이어지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아시아 지역 내 유화 설비 급증은 제품 공급과잉을 불러올 수 있어서죠.

 

 

◇ 국내 건설사, 정유·화학 플랜트 ‘강자’

 

해외 프로젝트 수주 경험이 많은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정유 및 화학 플랜트 EPC(설계·조달·시공)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1970년대부터 정유와 석유화학 산업을 육성하면서 해당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국내 건설사들이 도맡아 시공·보수한 경험이 풍부해서죠. 이는 해외 시장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는데 밑거름이 됐습니다.

 

국내 건설사들은 정유와 화학설비 발주가 많은 중동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적극 공략했는데요. 실제 2010년 이후 산업시설 해외 수주액 가운데 정유 및 화학설비는 677억3335만달러로 전체의 25% 가량을 차지했습니다.

 

최근에는 이 부문 해외 수주가 부진했는데요. 2000년대 후반 국내 주택사업 침체로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렸던 건설사들이 무리하게 저가수주 전략을 펼쳤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2013년 이후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해외 사업 부실로 재무건전성 악화는 물론 수익성이 크게 악화돼 해외 사업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저유가 장기화로 중동에서 계획됐던 프로젝트가 무산되거나 보류되는 경우가 많았고, 국내 주택 경기도 살아나면서 건설사들이 국내 사업에 주력한 영향도 컸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국제유가가 다시 오르면서 건설업계에선 중동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발주량이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주택시장도 정부 규제 여파로 냉각된 상태라 건설사 입장에선 다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죠.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상반기까지 중동 지역에서 약 665억달러에 이르는 건설 프로젝트 발주가 이뤄질 것”이라며 “대형 건설사들의 해외 프로젝트 잔여 매출이 줄어들고 있어 해외 수주에 대한 의지가 다시 생기면 향후 해외 수주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건설업계에선 올 초 해외 화학 플랜트 프로젝트 수주 낭보가 들려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림산업은 3800억원 규모의 필리핀 석유화학 단지 증설에 사전 입찰, 수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연산 7만톤 규모의 부타디엔과 라피네이트 8만9000톤, 벤젠 12만6000톤, 톨루엔 7만6000톤과 혼합자일렌 4만6000톤 등의 생산설비가 신규로 건립됩니다. 이와 함께 에틸렌 16만톤과 프로필렌 5만1000톤, 열분해가솔린 7만900톤 등의 설비가 늘어나는데요. 필리핀은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석유화학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건설사들은 예전과 달리 저가 수주가 아닌 수익성 위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국내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유·화학 플랜트는 국내 건설사들이 기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분야”라며 “최근 중동에서 관련 프로젝트 발주가 증가할 움직임이 보여 해외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수익성 위주의 수주를 통해 수익성도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고도 말했습니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kym5380@

 

◇ 유화업계 “시장 계속 지켜봐야”

 

유화업계 시각에서 보면, 국내 건설사 수주 프로젝트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 내 정유 및 석유화학제품 생산설비 증가는 시장을 흔드는 가장 큰 변수인데요. 정유·석유화학사 수익성을 결정짓는 제품 스프레드(판매가-원료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정유사들에게는 늘어나는 중동 지역 정제설비 규모가 부담입니다. 중동 국가들은 유가 하락으로 원유 판매 수익성이 악화되자 상대적으로 고부가 제품인 석유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자체 정제설비를 늘리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0년대 초반 대규모 정유공장 프로젝트 발주량이 많았고, 이 중 일부는 국내 건설사들이 수주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2011년 GS건설과 SK건설은 일본 JGC와 공동으로 쿠웨이트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수주, 올해 11월 공사를 마칠 예정입니다. 총 5조1700억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고품질의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정유설비를 짓는 것이죠.

 

또 범용 석유화학 제품 시장도 호황기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표 제품인 에틸렌은 지난 2년간 석유화학사들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는데요. 아시아 지역 내 설비 증설 규모가 제품 수요 증가량을 따라가지 못해 스프레드가 견조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죠.

 

하지만 이 시장 역시 늘어나는 생산설비에 안심할 순 없는 상황입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업체들도 생산설비 증설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제품 호황기가 지속되자 국내 업체는 물론 중동과 동남아 지역 업체들도 생산설비를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신흥국 경제성장률이 높아 석유화학제품 수요도 늘겠지만 중국처럼 성장률이 정체기에 접어들면 이들 지역에서도 공급과잉이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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