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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의 그늘]②중국서 불어온 칼바람에 한숨만

  • 2017.01.25(수) 16:00

[르포] 명동·동대문 상인들 "매출급감" 울상
中관광객 감소에 점포 내놓고 직원도 줄여

▲ 한파가 몰아친 지난 23일 오후 명동거리에는 행인들도 뜸했다.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23일. 하루 종일 영하권에 머문 쌀쌀한 날씨 탓인지 한낮인데도 서울 명동거리는 평소와 달리 인적이 뜸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머리에 털모자를 눌러 쓴 호객꾼이 행인들을 불러보지만 매장 안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일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명동거리에서 15년째 장사를 했는데 반죽(계란빵) 값도 못 건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인이 줄면서 매출이 반토막 났다."

명동상권의 핵심지인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건너편에서 계란빵 노점을 하는 이혜정 씨는 하소연을 늘어놨다.  20여분을 지켜본 결과 계란빵을 산 손님은 2명에 불과했다.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명소임에도 여느 전통시장에 자리잡은 노점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 명동거리에서 15년째 계란빵 장사를 하고 있는 이혜정 씨는 "이번처럼 어려운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씨에게 '날씨가 추운 탓 아니겠냐'고 말을 건넸지만 그는 반죽을 플라스틱통에 붓기만 할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는 "사드배치를 정부가 사전에 잘 합의했어야 했다. 초반에 대처가 너무 잘못되다보니 중국인들이 줄어든 것 아니겠냐"고 토로했다.

다른 상인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명동 골목에서 잡화 소매점을 운영하는 강 모씨는 "중국인들이 오면 주로 가방이나 캐리어를 사가는데 요즘에는 정말 장사가 안된다. 아무래도 사드 영향인 것 같다"고 푸념했다.

중국은 '한한령(限韓令)'이라 불리는 조치를 통해 우리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불만수위를 높이고 있다. 저가여행 단속을 명분으로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한국 방문을 까다롭게 했고, 한국인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것에도 제재를 가하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소프라노 조수미 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2년전부터 준비한 중국 투어가 취소됐다는 사실을 알렸다. 조 씨는 "국가 간의 갈등이 순수문화예술 분야까지 개입되는 상황이라 안타까움이 크다"며 착잡한 심정을 밝혔다.

중국 정부는 한한령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에게 한한령은 엄연한 현실이다. 피부를 할퀴고 지나가는 칼바람처럼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옷깃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온몸을 얼어붙게 만든 게 한한령이다.

명동에 이어 외국인이 두번째로 많이 찾는 동대문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동대문을 찾는 외국인의 대부분은 중국인으로 이들의 방문 자체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 상인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가게를 털고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근처에 있는 쇼핑몰 헬로APM에서 10여년간 여성복을 판매해왔다는 60대 한 상인은 매장 내 빈자리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나도) 가게를 빼고 싶은데 나가려면 임대와 보증기간을 맞춰야해 꾸역꾸역 있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쇼핑몰 안에는 '점포정리', '임대인 구함'과 같은 종이들이 눈에 띄었다. 손님들이 기웃거리는데도 매장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곳도 많았다.

 

▲ 동대문 한 쇼핑몰에서 점포정리를 알리는 문구를 걸어놓은 매장. 상인들은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 장사가 안된다고 하소연했다.
 
4층에서 남성복을 판매하는 김금숙 씨도 "동대문에서 30년 동안 일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답답해했다.

면세점이 입점해있는 두타몰도 중국인 관광객 감소에 발을 굴렀다.

두타몰에서 여성복을 판매하는 중국인 박초매 씨는 "작년까지 하루에 10장 팔았다면 지금은 1장 팔까말까 하는 정도"라며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박 씨가 일하는 매장은 지난해까지 3명이었던 직원을 올해부터 1명으로 줄였다.

두타면세점 관계자는 "(동대문 상권의) 매출 중 80% 이상은 여행객들로부터 나온다"며 "여행객 자체가 줄어든 것이 동대문 불황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20일부터 한달여간의 일정으로 코리아그랜드세일에 돌입했다. 이달 27일에는 중국의 춘절이 시작돼 모처럼의 대목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세일 결과를 낙관하기는 일러 보인다.

두타면세점 잡화매장 판매사원으로 근무하는 이 모 씨는 "중국에서 관광객을 보내는 전세기 자체가 안 뜬다고 하지 않느냐. 지난 20일부터는 정말 손님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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