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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반란의 달’

  • 2013.05.09(목) 15:21

봄날의 훈풍이 당연한 5월이다. 5월의 이름은 여러가지다. 눈부신 햇살과 연두빛깔의 신록이 흐드러진 계절의 여왕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인의 날 등이 줄줄이 이어진 가정의 달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항쟁의 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동안 갑(甲)이 횡포를 부려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을(乙)에게 5월은  ‘반란의 달’이다.


5월에 붙는 다양한 별칭 못지 않게 최근 ‘갑을 논란’을 표현하는 별칭이 경이롭다. 사회 구성원들이 특정 현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비유를 동원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라면 상무’, ‘빵 사장’, ‘폭언 우유’는 이 같은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만들어지고 확산되고 있다. 이 만큼 사건의 본질을 적확하게 드러낸 표현도 없는 듯하다.


라면을 제대로 끊이지 못했다며 항공가 여승무원을 폭행한 대기업 임원에게는 ‘라면 상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사건이 잠잠해질 무렵 호텔 주차장에서 차를 빼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호텔 지배인을 폭행한  ‘빵 회장’이 나타나 사회적 공분을 샀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건의 별칭이 사건의 매개체가 된 소재와 갑의 직책을 합성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개인 ‘갑’에 맞춰져 있다. 먹고 살기 위해 간과 쓸개를 내놓고 노동현장의 최전선에 내몰린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울분을 표출했다. 예상대로 사태는 진상 짓을 한 대기업 임원과 제빵회사 회장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선에서 마무리된 듯하다.


반면 대리점주에 대한 본사 영업사원의 폭언으로 ‘폭언 우유’는 주력 제품으로 압축·표현되고 있다. 즉 한 사원의 돌출행동이 아니라 ‘슈퍼갑’ 노릇을 해온 기업의 문제라는 것이다. 갑을 논란을 우리 사회를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는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로 확전(擴戰)시켰다.


실상 갑을 관계는 본사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대리점에 판매 목표를 부과하고 밀어내기를 강요하는 행태뿐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하청기업, 대형 유통업체와 입점업체, 프랜차이즈 본부와 가맹점 등 허다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을의 반란은 결국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우리사회 곳곳에서  ‘갑의 횡포를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울분을 토해내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이로 인해 제2, 제3의 갑의 횡포는 또다시 존재를 드러낼 것이다.


비뚤어진 갑을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할 때다. 이를 위해 국회도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비롯한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여론의 뭇매와 검찰의 압수수색, 공정거래위원회의 밀어내기 조사까지 전방위 공세에 밀려 대국민 사과까지 한 남양유업에게 엘리엇의 4월 못지않게 ‘잔인한 달’이다.


그렇다고 우는 소리만 할 계제가 아니다. 현대백화점처럼 협력사와 계약서를 쓸 때 ‘을’을 ‘협력사’로 명칭만 바꾼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대기업 스스로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는 자정노력이 필요하다. 까딱하다간 존폐 기로에 내몰릴 수 있다는 절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항상 충족되지 않는 욕망으로 굶주려 있는 갑의 횡포가 밉고,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 싫고, 무력한 을이 안쓰러운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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