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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꿈과 감동이 있는 '착한 목소리 오디션'

  • 2017.02.23(목) 10:40

SC제일은행 '착한 목소리 페스티벌' 동행 취재기
목소리 재능 기부로 시각장애인 '오디오북' 제작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인 'K팝스타' 못지않은 열띤 경연장을 연상하게 했다. 곳곳에서 '빅데이터 전문가'라고 쓰인 종이를 보며 낭독 연습에 한창인 참가자들. 일명 '착한 목소리'를 뽑기 위해 SC제일은행이 마련한 오디션 현장이다.

 

SC제일은행은 매년 일반인의 목소리 재능기부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을 만들어 기부한다. '착한 도서관 프로젝트'다. 그 일환으로 '착한 목소리 페스티벌'을 열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거쳐 목소리 기부자를 선정한다.

지난 10일 오디션이 열리는 SC제일은행 본점 강당을 찾았다. 유독 추운 날씨였다. 하필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떨어지는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데다 평일 낮시간이어서 한산하겠구나 생각하며 들어선 오디션 현장. 예상보다 많은 신청자가 북적였고, 대기석에서도 오디션 연습에 한창이다. 주말까지 3일간 이어진 이번 행사에 일반인 1만3000명이 참석했다고 하니 성황리에 끝났음을 짐작게 한다.

 


올해 시즌6을 맞이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SC제일은행이 만들기로 한 오디오북은 '꿈 백과사전'이다. 말하자면 직업백과다. 100개의 흥미로운 직업과 시각장애 청소년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대학교 전공과목 5개를 동화 형식으로 구성한 콘텐츠이다. '꿈'이란 단어는 누구에게나 가슴 떨리고, 설레는 단어다. 하지만 이 착한 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즌1부터 맡아온 김미란 SC제일은행 지속가능경영팀장에게서 시각장애인 대부분이 안마사 일을 하고 계신다는 얘길 듣는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 팀장은 "맹학교에서 진로교육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특정 직업군에 쏠려 있다"며 "그동안 아예 생각조차 못했던 부문을 접할 수 있는 것만으로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지 않겠느냐는 뜻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오디오 콘텐츠 중에서 진로와 관련한 콘텐츠는 1%에 불과하다고도 덧붙였다. 그만큼 시각장애인의 진로 선택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꿈을 꿀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는 더욱 남달라 보인다.

1, 2차 심사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번 오디션에서 1차 심사는 10명의 시각장애인 심사위원들이 맡았다. 김현아 심사위원(시각장애인 최초 미국 변호사 자격증 취득)은 "직업과 관련한 이런 콘텐츠가 내 학창시절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도움이 됐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며 "시즌6까지 이어져 오면서 문화, 경제 등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정보접근성이 취약한 시각장애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낭독 연습에 빠진 참여자들 사이를 서성이다 유독 귀에 쏙 들어오는 낭랑한 목소리가 있었다. 워낙 집중해서 연습 중이라 말 거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1차에 합격하고 2차 오디오 녹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성우지망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성민지(27세) 씨는 "하고 싶은 일과 관련이 있기도 하고 시각장애인을 도울 수 있어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어떤 마음으로, 또 어떤 목소리로 해야 할지 잘 몰랐는데, 직접 시각장애인 심사위원 앞에서 읽다 보니 어떤 느낌과 감정을 갖고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면서 "개인적으로도 너무너무 도움이 됐다"고 기뻐했다.

이날 만나본 재능기부 참여자들은 하나같이 목소리만으로 누군가를 쉽게 도울 수 있어서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엄마와 함께 참여한 초등학생 5학년생인 신채윤 학생은 올해가 두 번째 도전이다. 지난해 시즌5에선 최종 합격해 실제 녹음까지 했다. "시각장애인은 책을 못 보니까 목소리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서 왔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직장인들은 반차를 쓰고 오기도 했고, 어떤 학부형은 추운 날씨에도 어린아이를 아기 띠에 매고 또 한 손엔 다른 자녀의 손을 잡고 등장하기도 했다. 주말엔 KTX를 이용해 먼 길을 찾아온 이들도 있다. 실제론 그들의 말마따나 참여 자체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일부러 시간을 내고, 먼 길을 와야 해서다.



그들은 기부를 통해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 참여했지만 실제론 그들 역시 큰 도움을 받고 돌아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왔다가 되레 꿈과 희망을 얻어간다고 해야 할까. 일반 시민을 비롯해 직원, 그리고 혜택을 받는 시각장애인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형태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실제 김 팀장은 지난해 시즌6 진행 당시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오디션에서 합격하고 정말 펑펑 울었던 분이 계셨어요. 알고 보니 취업준비생인데 매번 불합격 소식만 듣다가 오디션 자리에서 합격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울컥했다는 거예요. 직원들도 그 얘길 듣고 뭉클해 하더라고요."

김현아 심사위원은 "목소리 기부하는 분을 잘 할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어서 좋다"고 얘기하고, 이상재 심사위원은(나사렛대학교 음악대 교수)은 "40년 이상 시각장애 장애인으로 불편을 겪는 입장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런 뜻 있는 일에 참여하게 돼서 기쁘다"고 언급했다.


▲ 박종복 은행장(사진)도 오디션에 참가, 심사위원 앞에서 낭독하고 있다.


참여자 모두가 감동을 받고, 또 꿈을 얻어가는 것. 그것이 착한 도서관 프로젝트가 시즌6까지 이어져 온 비결이 아닐까 생각된다. 작은 시도일지 모르지만 시각장애인이든 비시각장애인이든 누군가에겐 큰 변화와 의미를 가져다주는 일인 셈이다. 이날 오후 행사장에 한참을 머물다 돌아간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봉사하는 사람이나 혜택을 받는 사람이나 만족도가 높다"며 "많은 돈을 들이고, 큰 규모도 좋기는 하지만 실질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0년이 되는 해 지난 10년을 집대성하고 돌아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도 좋을 것 같다"며 즉석에서 숙제를 주기도 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 10년은 또 어떻게 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뜻에서다. 기업들이 할 수 있는 참여형 사회공헌의 바람직한 길을 보여주고 있다.

2차 오디션까지 최종합격해 목소리 재능기부자로 뽑힌 120명은 이달 24일부터 내달 8일까지 목소리 녹음을 진행한다. 제작되는 한국직업사전과 꿈백과사전의 오디오 디지털 콘텐츠는 오는 4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를 통해 전국 모든 맹학교와 점자도서관,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 및 기관에 기부한다. 시각장애 청소년들이 다양한 꿈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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