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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과 재벌]⑥ 政·經 상생의 지혜를…

  • 2013.10.02(수) 14:15

'기업 길들이기' 증인 채택 그만
출석하면 사과,여론 설득…기회로 여겨야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 초반에는 치고 받고 다투지만 결국에 여야는 서로 증인 채택에서 누구를 빼고, 누구는 넣을 지를 '주고받기' 협상을 통해 최종적으로 부를 증인을 정한다.

 

이 과정에서 행정부 감시라는 국회 본연의 책무와 다소 동떨어진 증인 채택이 이뤄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바로 대기업 회장, CEO들이다. 물론 정부 부처의 업무를 감시·감독하는 업무에 기업 관계자들이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막무가내식 증인 채택으로 재계 길들이기에 나서는 측면이 적지 않다. 반드시 고쳐야 할 국회의 악습 중 하나다.


재계 역시 국회가 부르는 것에 대해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미국 의회 청문회를 상대했던 도요타와 소니의 사례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 기업 길들이기?..'막무가내 증인 채택' 우려

 

올해 국감에서도 기업인들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민주화, 4대강 의혹, 동양그룹 사태 등으로 국감에서 다루는 경제 이슈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는 마구잡이로 대기업 오너나 CEO를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특히 지난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불출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각각 1000만원과 1500만원의 벌금을 받는 등 법원의 처벌이 엄격해져 기업들은 더더욱 긴장하고 있다. 증인으로 채택됐음에도 불출석하면 법원이 징역형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 이런 '국감 공포증'이 커지면서 "국회가 기업의 발목을 잡지 말고, 일에만 전념하게 해달라"는 민원이 분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감에서 기업집단을 비리와 부정의 본산으로 매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회 본연의 업무인 국정감사가 아니라 '민간기업 감사'가 되어선 곤란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전경련은 "대기업 오너들이 대거 법의 심판을 받는 와중에 국감에서 증인으로 채택한다면 대기업을 한 번 더 죽이는 것"이라며 "정치권의 움직임이 재계에 또 다른 악재가 돼서는 안된다"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여야 간 파행이 빚어져 국회 한 상임위장에 정부 관계자들과, 취재진,증인,참고인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지난해 지나치게 많은 증인을 채택해 제대로 질의응답을 하지 못했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자성론도 나오고 있다. '일단 부르고 보자'는 식으로 과도하게 증인을 채택하는 것을 지양하자는 말이다.

 

지난해 국감에서 정무위는 증인 59명, 참고인 16명 등 모두 75명을 불렀다. 올해도 가장 많은 기업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채택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무위 소속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올해 국감에 증인으로 채택되면 대부분 출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핵심 이슈에 해당하는 주요 기업의 책임자만 부르는 게 합당하다"고 밝혔다.

◇ 美 의회 상대…도요타·소니 '정반대'

 

2010년 2월 미국 워싱턴DC 하원의회 청문회장에 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의 도요타 아키오 회장이 불려 나왔다. 도요타 아키오 회장이 누군가. 2008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자 14년 간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접고 등장한 창업자의 4대손, 도요타의 '황태자'다.  도요타 사장은 그러나 취임 첫 해인 2009년 미국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리콜 사태를 맞게 된다.

미 의회는 이례적으로 도요타 회장을 직접 청문회에 소환했다. 당초 도요타 회장은 미국 법인 사장을 '대타'로 내보내려 했지만, 미 의회의 압박과 미국 내 여론 악화로 직접 출석하기로 결심했다. 그 배경에는 '현지현물'(現地現物)이라는 사훈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이나 사무실, 국내외를 가리지 말고 자신이 한 일의 결과를 현장, 현지에서 분명히 확인하라"는 말이다.

8시간 동안 이어진 청문회에서 도요타 회장은 맹공을 펼치는 미국 국회의원들에게 쩔쩔매며 진땀을 흘렸다. 내내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그는 차분하고 신중하게 의원들의 추궁에 답했다. 리콜사태에 대해 유감이라며 진솔하게 사과했고, 재발 방지·신뢰회복 방안도 찬찬히 설명했다. 얼마나 시달렸던지 도요타 회장은 청문회 다음날 미국 현지 도요타 관계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나 도요타 회장의 진정성 담긴 태도와 발언에 미국 여론은 도요타차 품질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같은 일본 기업이지만 소니는 과정과 결과 모두 도요타와 완전히 정반대였다. 2011년 1억명에 달하는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터지자 미 의회는 청문회를 열었다.  미국 하원 에너지ㆍ상업위원회는 당시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회장이 나올 것을 강력히 촉구했지만, 스트링거 회장은 팀 샤프 소니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대신 보냈다. 미 의회의 '괘씸죄'에 걸린 것에 '설상가상', 샤프 대표는 소니 측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청문회 이후 소니에 대한 여론은 돌아서 소비자들로부터 집단 소송을 당했고, 심지어 전 세계 해커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의회가 요청한 증인이 출석을 거부하면 의회모독죄로 최대 1000달러(한화 107만원)의 벌금, 1년 이하 징역을 받는다. 우리 보다 상대적으로 처벌은 작지만 (불)출석 여부에 대한 댓가는 소니와 도요타의 차이에서 보듯 엄청나다.

◇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순 없나


대기업 오너들의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너무한다"는 재계와 "반드시 증언대에 서라"는 국회 모두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재계는 도요타 아키오 회장이 미 의회 청문회에서 보여준 '진정성'이 도요타의 위기를 극복하는 기폭제가 된 것처럼 국회 출석을 무조건 기피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불공정 거래로 '갑을 논란'을 일으켰던 기업의 최고 책임자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책, 상생방안을 내놓으며 정치인을 설득해야 한다. 부당 노동행위 기업, 환경 사고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국감에 출석하는 것을 무조건 혼쭐 나는 날, 피하고 싶은 자리라고 여기지 말고 되려 기업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의 장(場)으로 여기면 어떨까.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집단인 국회에서 담담하게, 차분하게 진정성 담긴 사과와 설명을 한다면 그 기업, 기업인에 대한 여론은 분명 달라질 수 있다. 언젠가 미국 의회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을 부르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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