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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배 vs 차석용]上 한우물과 다각화 대결…'패자가 없다'

  • 2017.03.22(수) 17:22

서경배 아모레 회장, 화장품 한우물 파기 10배 성장
차석용 LG생건 부회장, M&A로 화장품-생활용품-음료 3대축 완성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과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국내 화장품업계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CEO들이다. 서 회장은 올해로 20년째, 차 부회장은 12년째 각각 회사를 이끌고 있다. 두 CEO는 모두 정체됐던 회사를 혁신하고 고성장을 이끌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전략은 달랐다. 서 회장과 차 부회장의 경영스토리와 향후 과제에 대해 짚어본다.[편집자]


올해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취임 20년이 되는 해다. 그는 아모레퍼시픽을 국내 1위의 화장품기업으로 이끌었다. 아울러 해외에 국내 화장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 회장이 이처럼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한눈팔지 않고 가업(家業)에만 집중한 결과다.

반면 아모레퍼시픽 맞수 LG생활건강은 다른 전략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12년째 LG생활건강을 이끌고 있는 차석용 부회장의 경영방식 덕분이다. 그는 사업 다각화를 통한 성장을 주도했다. 그 결과 LG생활건강은 화장품은 물론 생활용품, 음료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 고집스럽게 한우물을 팠다

서경배 회장의 성공 비결은 '외고집'이다.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오직 화장품사업에만 몰두한 것이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만들었다. 다른 오너가(家) 2세들과는 달랐다. 서 회장의 이런 외고집은 할머니인 윤독정씨로부터 시작됐다. 1930년대 개성에서 '동백기름'을 만들어 판매했던 할머니 윤독정씨의 외고집은 창업주인 선친 고(故) 서성환 회장을 거쳐 현재의 서 회장에게까지 이어졌다.

할머니로부터 내려온 제품에 대한 장인정신은 현재 아모레퍼시픽 제품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윤독정씨는 아들 고 서성환 회장에게 늘 "기술은 훔쳐도 정신은 훔칠 수 없다"며 "얕은 물도 깊게 건너라"고 가르쳤다. 이는 고 서성환 회장이 1947년 서울 남창동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던 '태평양화학공업사'가 국내 굴지의 화장품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

서 회장은 할머니로부터 내려온 품질에 대한 고집을 그대로 계승했다. 서 회장은 1997년 경영 전면에 나섰다. 선친이 이뤄놓은 '태평양' 브랜드는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아모레 방문판매 아줌마'의 위력은 업계의 신화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당시는 화장품시장 수입개방이 이뤄진 시기였다. 태평양으로서는 위기였다.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그 시기 태평양그룹은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태였다. 태평양증권, 태평양전자, 태평양돌핀스, 태평양패션 등 그동안 벌여놓았던 사업들을 정리하는 단계였다. 태평양의 수장에 오른 서 회장은 고민이 많았다. 선택을 해야했다. 그때 그에게 답을 준 것이 바로 가풍(家風)으로 내려오던 '외고집'이다. 서 회장은 화장품사업에 집중키로 하고 그룹의 비전을 '미(美)와 건강 분야의 브랜드 컴퍼니'로 정했다.

서 회장은 태평양 브랜드중 경쟁력있는 브랜드를 선별했다. 이를 경로별로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짜 시장공략에 나섰다. 더불어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대대로 내려오는 품질에 대한 고집스러움이 본격적으로 발동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기능성 화장품 시장을 연 '레티놀 2500'과 한방화장품의 시작인 '설화수'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서 회장은 영역을 넓혔다. 사명도 '아모레퍼시픽'으로 바꿨다. 중화권을 시작으로 아세안시장에 이어 최근에는 미주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미국의 패션·뷰티 매체인 WWD 선정 세계 100대 뷰티 기업에서 12위에 올랐을 만큼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 

◇ M&A로 3대 축을 만들었다

서경배 회장과 달리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전문경영인이다. 그래서일까. 차 부회장이 만들어 낸 LG생활건강의 성장스토리는 아모레퍼시픽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모레퍼시픽이 하나에 집중해 성공한 케이스라면 차 부회장의 LG생활건강은 '다각화'를 통해 성장을 이뤄냈다.

차 부회장은 LG그룹 출신이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마쳤다. 1985년 미국 P&G에 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99년 한국P&G 사장을 맡으면서 국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LG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말. LG는 차 부회장의 능력을 눈여겨 봤다. 당시 해태제과 사장으로 근무중이던 차 부회장은 LG로부터 영입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LG로 가겠다"고 했다. 인재를 중시하는 LG의 기업문화를 신뢰했다는 것이 차 부회장의 전언이다. 갑작스런 전화 한통에 차 부회장은 LG 사람이 됐다. 그리고 LG생활건강을 12년째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2005년 1월 LG생활건강 수장으로 취임한 차 부회장은 곧바로 마케팅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그는 "마케팅은 차별화되고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아울러 마케팅의 핵심가치로 '창의력'을 내세웠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정시퇴근제와 유연근무제 등이 모두 임직원들의 창의력 극대화를 위해 만들어진 조치들이다.

차 부회장의 이런 생각들은 정체돼있던 LG생활건강에 큰 자극이 됐다. 그는 LG생활건강을 단순히 생활용품 전문기업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지난 2007년 코카콜라음료를 필두로 적극적인 M&A에 나선 것은 그의 이런 생각을 잘 대변한다. 차 부회장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12개 업체를 인수·합병했다. 여기에 투입된 자금만 1조4236억원에 달한다.

생활용품 전문기업이던 LG생활건강은 이제 화장품, 생활용품, 음료사업의 3대 축을 바탕으로 사업간 시너지를 내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사업간의 교차 지점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차 부회장의 지론이 실제로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 수치로 증명했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매출은 6조6976억원을 기록했다. 서 회장 취임전 6462억원이었던 것이 20년만에 10배로 불어났다. 영업이익도 1996년 552억원에서 작년 1조828억원으로 늘었다.

▲ 단위:억원.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매출과 이익은 크게 늘었지만, 계열사 수는 11개로 1996년보다 줄었다. 화장품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연관성이 없는 계열사를 구조조정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비는 같은기간동안 172억원에서 1308억으로 증가했다. 세계적인 패션뷰티 전문매체인 WWD 평가 순위도 2000년 32위에서 매년 상승을 거듭해 작년에는 12위까지 올라섰다. 서 회장의 외고집이 낸 성과다.

LG생활건강은 차석용 부회장 취임 전인 2004년 매출 9526억원, 영업이익 544억원이었다. 지난해 매출은 6조941억원, 영업이익 8809억원을 기록했다. 12년만에 매출은 539.7%, 영업이익은 1519.3% 늘었다. 작년 LG생활건강은 사상최대 실적을 냈다.  사업부문별 실적도 양호하다. 화장품사업부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42.9% 증가했다. 생활용품은 9.1%, 음료는 7.1% 늘어났다. 차 부회장의 사업다각화가 전반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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