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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甲)을 위한 행진곡`

  • 2013.05.09(목) 15:45

지난 9일 오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LW컨벤션센터에서 김웅 대표를 비롯한 남양유업 임직원들이 깊숙히 고개를 숙이며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보름쯤 앞선 지난달 하순께엔 포스코에너지는 기내식에 불만을 보이며 대한항공 여승무원을 폭행한 혐의를 받는 W 상무를 보직해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반 기업들로서는 좀처럼 보기힘든 일이죠. 대국민사과는 정치권에서나 `국면 돌파용`으로 단골로 사용했고 여론에 따른 임원 문책도 민간기업으로서는 전례가 별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남양유업은 영업직원의 폭언과 밀어내기 내용이 담긴 음성 파일이 공개되면서 `갑(甲)의 횡포` 논란을 일으켰으며 W 상무는 기내식로 제공된 라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비행기 승무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제 고도화의 덕분인지 아니면 후폭풍인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경제 주체들간에 맺어온 관계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경제민주화`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느 순간 `동반성장`이나 `상생`이라는 개념이 경제의 일상 화두가 된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소위 `갑`과 `을(乙)`이라는 관계가 맺어지고 또 유지가 가능했던 배경은 `금전적` 관계가 최고 가치로 통했기 때문입니다. "돈이면 뭐든지 살수 있다"는 인식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갑-을 관계가 생겨날 뿐 아니라 그러한 관계를 잘 유지 관리하는 것이 곧 `능력`으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갑`의 요구를 간파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치껏` 만족시키는 기술이죠. 
 
또 `고객 만족`을 강조하는 마케팅은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서로를 풍요롭게하는 긍정적인 면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폐해나 나타납니다. `고객 만족`을 넘어서 `고객 감동` 서비스를 베풀고 이러한 과잉 서비스에 익숙해진 상황에서는 `돈을 지불한 댓가`로 당연히 누릴수 있는 권리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금전`을 전제로 하는 관계는 `금전적 상황`이 변하면 달라지는게 당연합니다. 고도 성장기에는 갑-을의 관계를 유지시켜줄 만한 경제적 부가 뒷바침 됐지만 경제가 저성장·안정화 구조로 바뀐다면 그러한 기반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서비스 개념이 미미할 적에는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지만 수준이 높아질수록 금액대비 만족도는 체감할수 밖에 없습니다. 
 
2013년 5월, 한국 사회는 변화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저성장 함정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크지만 동시에 가치있는 삶에 대한 기대와 욕구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체휴일제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고 정년을 연장하는 법안도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갑-을`로 상징되는 기존의 관계에도 새로운 정립이 필요한 때 입니다.
 
새로운 관계라고 해서, 기존에 `갑-을` 관계가 위치만 바뀌는 형태인 `을`의 반란이어서도 곤란합니다. 시스템은 변하지 않고 새로운 갑을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돈의 관계나 상하 위계질서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경하거나 그리워할 수 있는, 보다 인간적인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갑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라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참고로 `님`의 개념은 한용운님의 시에서 차용했습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만해 한용운의 `군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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