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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家]<19>래딕스①새한家 외동딸의 홀로서기

  • 2013.10.08(화) 14:00

재계 25위…삼성 방계가 중 유일한 몰락
혜진씨, 래딕스 계열 기반 경영자로 변신

삼성의 분가(分家)그룹 중 새한은 ‘비운(悲運)의 일가(一家)’로 불려진다. 한 때 재계 20위권 반열에 오르기도 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라는 ‘국난(國難)’ 앞에 속절없이 스러졌다. 가족사 또한 기구(崎嶇)했다. 고(故) 이병철(1910~1987)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남으로 새한그룹의 초석을 세운 이창희(1933~1991) 새한미디어 회장은 자신의 야심을 꽃피우기도 전인 58세에 유명을 달리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둘째아들 재찬(1964~2010)씨가 2010년 8월 46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作故)함으로써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던 일가들의 굴곡 많은 삶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외환위기로 공중분해

이창희 회장이 1973년 세운 새한미디어(옛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는 그의 재기를 위한 씨앗이었다. 그는 부친의 후계구도에서 형 이맹희(82) 전 제일비료 회장, 동생 이건희(71) 현 삼성전자 회장에 못지 않은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1966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삼성그룹의 ‘한비(韓肥)사건(사카린 밀수사건)’을 계기로 그룹에서 한발 비켜나 있었다. 따라서 당시 그의 홀로서기는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행보였는지 모른다.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시장의 호황을 맞아 그의 재기는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하지만 새한그룹이 화려하게 재계의 무대 위로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991년 7월 미국에서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 회장 별세 이후 당시 새한미디어 감사로 있던 미망인 이영자(76)씨가 자연스레 새한미디어 회장을 승계했다. 또한 장남 재관(50)씨가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경영 전반을 지휘했다. 그룹의 골격이 갖춰진 것은 1996년 삼성으로부터 새한(옛 제일합섬)을 넘겨받으면서 부터다. 이 회장 일가는 마침내 1997년 4월 새한미디어, 새한을 주력으로 8개 계열사를 아우른 재계 35위의 새한그룹을 출범시켰다.

새한은 그룹 출범 전부터 유지해왔던 확장기조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대대적인 사업확장은 결과적으로 몰락의 전주곡(前奏曲)이었다. 재계 25위(14개 계열사)에 올랐던 1999년 당시 새한그룹은 이미 곪아있었다. 외환위기가 찾아온 상황에서 과도한 설비투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금융비용으로 돌아왔고, 주력이던 섬유·필름사업은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2000년 9월 주력사 새한, 새한미디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은 이른 듯 하지만, 그러나 당연한 귀결이었다. 계열사들은 새 주인들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새한그룹은 그렇게 삼성의 방계그룹 중 유일하게 공중분해됐다.

◇새한 일가 두문불출

새한그룹이 재계의 무대 뒤로 사라진 뒤 일가 또한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있다. 특히 새한그룹 부회장까지 올랐던 재관씨, 새한정보시스템 사장을 지낸 재원(47) 등 이영자씨의 두 아들은 대외활동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범삼성가의 큰 집안 행사 때나 가끔 모습을 보일 뿐이다. 재기의 움직임도 찾아보기 힘들다. 

재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가 집안의 사위가 된 터라 처갓집에서 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듯 하지만 여기서도 의미있는 움직임은 없는 듯 하다. 재관씨는 물류·섬유를 주력으로 하는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의 맏사위다. 동방 지분 0.4%(8만500주)를 가지고 있을 뿐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중견 주정업체인 서영주정 김일우 회장의 둘째 사위 재원씨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마디로 ‘정중정(靜中靜)’이다.

 

특히 지난해 2월 이맹희 전 회장이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유산소송이 불거질 당시에도 새한 일가들은 ‘쿨(cool)’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로 재찬씨의 미망인인 최선희씨를 비롯한 유족들이 소송에 참여했지만, 이영자씨와 자녀들은 “상속은 과거에 끝난 일로 집안 전체의 뜻이 아니다”라며 뚜렷하게 선을 그었다.

새한가의 외동딸 혜진씨는 사뭇 다르다. 오빠들과 달리 ‘정중동(靜中動)’이다. 그를 가리고 있는 베일을 한 꺼풀 걷어보면 상대적으로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한 때 신흥 재벌이었던 라이프그룹으로 시집을 간 뒤 집안에서 안주인 역할을 묵묵히 하는 듯 하지만 어느덧 기업가로서 의미있는 궤적을 그려놓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밀어주는 사촌오빠

현재 혜진(46)씨가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기업은 확인된 것만 최소 5개사에 이른다. 이른바 ‘래딕스(RADIX)’ 계열사들이 그것이다. 기업들의 연혁을 따라가다 보면 혜진씨는 2003년 11월 HR(인적자원)아웃소싱 사업을 시작으로 경영자로 변신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어 2005년 4월에는 해외 가공식품 및 생활용품 수입유통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그는 이를 통해 2008년 4월 자신이 관할하는 5개 계열사를 묶어 미니그룹을 만들었다. 현재 대다수 계열사들에 붙어있는 ‘래딕스’라는 이름은 당시 기업통합이미지(CI) 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혜진씨는 현재 래딕스글로비즈와 래딕스플러스(각자대표)의 대표이사로서 직접 경영을 챙기고 있다. 이외 에스앤제이파트너스, 래딕스파트너스, 래딕스아이앤씨 등 다른 계열사들에도 사내이사 혹은 감사로 빠짐없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들 3곳은 전문경영인 심양래(52)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아울러 혜진씨가 최근까지 옛 새한그룹 계열사의 경영을 총괄했던 것도 볼 수 있다. 1980년 4월 설립된 신영인더스트리가 그곳으로 카세트테이프 부품 사업을 하다가  새한, 새한미디어 등을 대상으로 조경사업을 하던 계열사다. 2008년 11월 신영에서 래딕스플래닝으로 간판을 바꾼 뒤부터 2011년 12월까지 혜진씨가 대표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혜진씨가 래딕스 계열의 실권자(實權者)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계열들이 모두 중소기업들이어서 확인할 수 있는 정황들은 많지 않지만, 가장 덩치가 큰 래딕스플러스를 보면 경영컨설팅업체인 에스앤제이파트너스가 최대주주로서 지분 50%를 소유하고 있고, 이외 지분을 이혜진씨와 남편 조명희씨가 각각 25%씩 보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조명희씨가 2011년 11월 이전까지 대다수 계열사들의 이사진으로 있기도 했다.

모친 이영자씨의 존재는 이를 보다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지난해 1월 딸이 대표로 있는 계열사에 일제히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경영자의 길을 걷는데 있어 모친이 가까이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 있는 모습이다. 아울러 혜진씨에게는 기댈 수 있는 또다른 언덕이 있다. ‘한 핏줄’ 이재현(53) CJ그룹 회장과 정용진(45)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사촌들은 그에게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깔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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