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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혁신키워드]라쿠텐, 사명에 철학을 담다

  • 2017.05.15(월) 14:46

쇼핑은 단순판매가 아닌 놀이…'낙천주의'
커머스로 시작 금융·포털·통신 세력 확장

바야흐로 혁신의 시대다. 기존의 것과 완전히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거나 차별화 하지 못하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전방위 산업이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이란 말의 무게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 앞서가는 글로벌 기업의 혁신 사례를 키워드 중심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낙천적'

 

세상살이를 즐겁고 좋은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좋은 뜻인 만큼 실천하기도 어렵다. 특히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1만여명의 직원을 책임져야 하는 기업가가 언제나 낙천적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회사 이름 자체를 낙천(樂天)으로 붙인 기업이 있다. 일본식 상용한자로는 '楽天', 히라가나로 읽으면 '라쿠텐(らくてん)'이다.

 

▲ 라쿠텐 한국어 서비스 사이트 화면 [사진=라쿠텐 홈페이지 캡처]


라쿠텐이 펼치고 있는 사업은 수십 가지다. 전자상거래, 신용카드, 은행, 포털·미디어, 여행, 증권, 통신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한 가지만 잘하기도 어려운 시대에 이렇게 사업을 확장하고도 일본의 알리바바(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라쿠텐 최고경영자(CEO) 미키타니 히로시(三木谷浩史)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2017년 세계 기술산업부문 부자 순위에서 29위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는 부자 순위 4위에 올랐다.

오늘날 그의 성공은 낙천주의적 면모에서 탄생했다. 대부분은 겁먹고 두려워 자신이 갇힌 벽을 깨부수지 못하지만 그는 기꺼이 기존의 상식을 깼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것들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쇼핑은 단순판매가 아닌 놀이다"

잘 나가던 니혼쿄교 은행(현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의 전신)원이던 미키타니 히로시는 돌연 은행을 그만두고 1997년 인터넷 쇼핑몰을 연다. 바로 라쿠텐이다.

초창기 라쿠텐 사이트는 ‘쇼핑 카트가 붙은 블로그’라는 야유를 받았다. 상품 판매를 위한 마케팅 보다는 구매자들의 상품평과 정보공유 등 소소한 이야기들이 라쿠텐 홈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히로시 대표만의 전략이었다. 히로시 대표는 "개인 판매자, 입점 업체들을 모아 이야기를 소개하고 대화를 즐기는 장소로 라쿠텐 사이트를 기획했다“며 "타사가 제공하는 자판기식 시스템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인터넷 쇼핑은 대부분 상품 이지미와 장바구니 담기, 주문 등 정형화된 틀로 진행된다. 하지만 히로시 대표는 '그저 효율적으로만 관리되는' 사이트에서 사람들이 즐거운 쇼핑을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던진다.

그는 인터넷 쇼핑을 통해 사람들이 뭔가 새롭고 즐거운 것을 찾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매력적인 상품을 발견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인들과 공유하고 싶고, 구매한 물건에 대해 친구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한다고 봤다. 인터넷 쇼핑이 곧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즉 즐거움의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 제품 이미지와 구매자들의 상품평을 함께 올려놨다. [사진=라쿠텐 홈페이지 캡처]


실제 라쿠텐 한국어 서비스 홈페이지에 가보면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즐거운 어린이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0~1세, 2~4세 등 각 연령대 별 아이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추천해주는 페이지가 대표적이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사이트가 아닌 아이를 가진 엄마들의 정보 공유 사이트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평가 제품'이라는 이름으로 라쿠텐에서 구매한 소비자들의 상품평과 제품 평가 점수 등을 합산해 리스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미용, 푸드, 패션, 키즈, 스포츠 등 분야별 제공도 잊지 않는다. 제품 사진 밑에는 가격이 아닌 소비자들의 상품평이 먼저 올라와 있다. 상품에 대한 정보 공유를 우선시한 것이다.

히로시 대표는 "인간 생활의 질을 높이고 싶다는 근원적인 생각에서 라쿠텐 창업을 시작했다"며 "판매자와 소비자들의 정보공유는 가격이 아닌 품질로 승부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라쿠텐의 새로운 시도는 SNS로 이어졌다.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등 다양한 SNS통로를 이용해 고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적극적인 SNS활동으로 판매를 넘어서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 라쿠텐 트위터에는 매일 제품에 대한 소개글이 올라온다. [사진=라쿠텐 트위터 캡처]


◇ 낙천적 도전…세력 넓히기

히로시 대표의 낙천적인 도전은 쇼핑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터넷 쇼핑몰로 시작한 라쿠텐은 2000년 일본 주식시장인 자스닥(JASDAQ)에 상장된다. 2004년에는 쇼핑몰 입점 점포수 1만 개를 넘긴다.

2017년 현재 회원 수 1억명, 출점 점포는 4만개다. 1만2981명의 직원이 라쿠텐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779억엔(한화 약 790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라쿠텐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적극적인 인수·합병이 있었다. 라쿠텐은 2000년 당시 일본 최대의 포털사이트였던 인포시크 재팬(Infoseek Japan)과 라이코스 재팬(Lycos Japan)을 인수한다. 쇼핑몰업체가 거대 포털사이트를 인수해 IT기업으로 변모한 것이다. 

움직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라쿠텐은 2005년 북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미국 온라인 마케팅 회사인 링크쉐어(LinkShare)를 인수한다. 뒤이어 미국 온라인소매업체 바이닷컴(Buy.com), 캐나다 전자책 회사 코보(kobo)까지 인수하면서 북미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다.

이미 아마존, 이베이(eBay) 등 걸출한 기업들이 북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히로시 대표는 라쿠텐 에코 시스템을 통해 점점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바이닷컴에 출점한 소매업자들도 점점 라쿠텐 그룹과 연관된 시장에 들어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히로시 대표의 생각은 정확했다. 라쿠텐의 시장력이 확장되면서 일명 ‘라쿠텐 경제권’이 생성됐다. 라쿠텐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라쿠텐 여행 예약 서비스를 이용하고, 라쿠텐에 입점한 쇼핑몰의 물건을 사고 라쿠텐 증권 서비스의 고객이 되는 일종의 연결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히로시 대표는 "인수한 기업이 크든 작든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 철학의 토대를 쌓고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회사의 직원들도 점점 글로벌화(globalization)됐다. 2016년 기준 라쿠텐 신입사원 중 30%가 일본 이외의 해외출신 인재들이다. 2005년 링크쉐어를 인수하면서 도입한 사내 영어 공영화 제도와 맞물리면서 라쿠텐의 해외 성장전략은 큰 성공을 거뒀다.

현재 라쿠텐은 일본어 외에도 한국어, 영어, 중국어 서비스를 제공해 해외 직구족(族)들에게 언어의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현대저축은행 입찰의 유력 인수후보로 떠올라 한국의 은행까지 넘보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최종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달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해주는 앱(응용프로그램) 서비스 기업 '셸피'를 인수하는 등 여전히 라쿠텐의 확장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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