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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초 단골 '빚 탕감'…이번엔 백만명 구제?

  • 2017.05.16(화) 14:26

'정책 진화'…이자 탕감 → 채무 조정 → 채권 소각
'탕감서 재기로' 시스템 미흡…도덕적 해이 논란도

"260만명 신용불량자 대사면"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 조성해 322만명 빚 탕감"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 203만명의 빚 22조원 탕감" (2017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어려운 이들의 채무 부담을 덜어주는 공약은 대통령 선거 기간에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다. 선거 기간에는 호기롭게 대규모 빚 탕감을 약속했다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과정도 매 정권 반복되는 현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런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주목할 만한 특징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채무 탕감 정책의 강도는 점차 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빚을 탕감받은 뒤에는 소득 증대 등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뒤따라야 '재기'가 가능한데 이런 선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또 부동산 활성화 정책 등으로 도리어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면서 서민들의 빚 부담은 무거워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빚 탕감 정책이 매번 비판받는 이유다.


◇ '100만명 채권 소각' 이번에는 지켜질까

문재인 정부는 대선 기간 공약했던 서민·취약계층 채무자의 부채상환 부담을 완화해주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를 재조정받고 있는 10년 이상 장기 연체자 100만명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방식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11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경제부총리와 금융위원장 등 관련 부처 내각이 갖춰지면 본격적으로 추진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유세 초반에는 203만명의 빚 22조원 가량을 탕감해주겠다고 했다가 100만명으로 범위를 좁혔다. 이는 다시 '현실적'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채무 탕감 정책에 대해서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많은 데다가 재정 부담 가능성도 있어서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44만명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채권 규모와 대상자는 총 1조 9000억원, 44만명가량이다.


앞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애초 공약보다는 축소한 정책을 시행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기간에는 260만명 신용불량자 대사면을 약속했다가 정권을 잡은 뒤에 내놓은 정책 대상자는 29만명으로 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애초 거론됐던 322만명에서 장기연체자 66만명 정도로 축소했다.

다만 문재인 정부에서 내놓을 채무탕감 정책의 경우 국민행복기금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장기·소액 연체 채권을 소각하는 것이어서 실현 가능성은 역대 정부보다 높을 수 있다.

◇ 모럴해저드 논란…소득 증가 정책이 관건

금융권 안팎에서는 매번 반복되는 채무 탕감 정책이 모럴해저드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권 초 부채 탕감 정책을 기대한 채무자들의 상환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실히 빚을 갚는 사람과의 역차별 문제도 있다.

논란을 초래하는 데 비해 실제 효과는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 추진했던 국민연금을 활용한 신용불량자 신용회복대책의 경우 방식부터 큰 논란을 불렀고 실제 신청한 이들도 29만명 중 7000명가량으로 미미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의 경우 2013년 출범한 뒤 4년 만에 58만명의 채무조정을 지원했다. 그러나 빚 탕감을 받은 사람 중 20%가량은 다시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년간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조정을 받은 이들은 총 58만1000명가량인데 이 중 10만6000명(18.2%)은 다시 3개월 이상 연체해 채무불이행자가 됐다. (자료=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정권 초마다 빚을 탕감해줬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새로 내놓는 정책은 점차 강도가 세질 수밖에 없다. 지난 정권에서는 대출금 중 일부를 깎아주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는 등의 정책을 진행해왔는데 이번에는 원리금을 전부 소각하는 방안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제윤경 의원 등을 중심으로 회수 불가능한 채무에 대해 아예 소각하는 방안을 공언해왔다.

결국 채무 탕감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속해 강조하는 일자리 정책의 성패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빚 부담이 줄더라도 소득이 증가해야 '재기'가 가능한데 그동안에는 이런 후속 대책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했다.

부동산 정책과 가계부채 정책의 '외줄 타기'도 어려운 과제다. 채무불이행자가 늘어나는 것은 소득은 늘지 않는데 가계부채만 증가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그런데 지난 정권에서는 부동산 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끌어올리느라 가계부채 급증을 방치해온 면이 있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이제 막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가계대출을 강하게 조이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가 지속해 침체할 경우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채무 탕감 정책이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일자리 정책이나 가계부채 대책 등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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