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 주택시장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대선을 치르고 다시 열린 아파트 분양시장에 인파가 몰리고 매매시장에도 집을 사겠다는 수요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새 정부는 시장 안정과 주거복지를 공약의 골간으로 삼았지만 시장에서는 불확실성이 걷힌 이후 경기가 나아지면 집값도 상승세를 탈 거라는 기대감이 번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열기가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다. 달아오른 주택시장 분위기와 그 배경, 앞으로의 전망을 짚어본다.[편집자]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밀려있던 분양 물량들이 쏟아지고 있어 수도권에서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격 부담이 크지만 도시재생에 투자하겠다는 정비 계획이나 최근 부동산 가격 움직임을 보면 여전히 집값도 오를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요." - 김포 소재 견본주택을 찾은 서울 도봉구 거주 '워킹맘' 김 모씨(33세, 여)
"유모차를 끌고 광화문으로 나갔던 젊은 층들이 내 집 마련을 위해 뛰어든 듯합니다. 새 정부에서는 뭔가 살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느껴집니다.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든지, 집 장만에 드는 자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심리적 불안감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서울 영등포구 모델하우스 분양 상담사 이 모씨.
▲ '보라매 SK 뷰' 모델하우스에 단지 모형과 상담석 사이를 관람객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윤도진 기자 spoon504@ |
◇ 견본주택 5곳에만 '16만명 운집'
지난 20일 오후 1시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보라매 SK 뷰' 모델하우스. 장사진을 친 입장 행렬 맨 뒤에 줄을 서려던 한 30대 부부가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묻자 "1시간 안에 입장할 수 있다"는 도우미의 답이 돌아왔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모델하우스 아래 필로티(기둥으로 건물을 띄우는 양식) 밖까지 줄을 선 입장 대기자들은 행렬을 떠날 줄 몰랐다.
대선이라는 이슈에 밀려 봄 성수기를 휴식기로 보낸 보낸 분양시장이 한껏 달아올랐다. 전국 10여곳 아파트 단지 견본주택이 문을 열자 한동안 관심을 접어두고 있던 수요자들이 대거 분양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19일~21일 사흘간 수도권 주요 5개 모델하우스에만 각 건설사 집계 기준 총 16만명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모델하우스를 찾은 이들 가운데서는 유독 '아기띠'를 매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주말 사흘 간 6만5000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된 경기도 김포 '한강메트로자이' 견본주택에는 서울의 높아진 전월세를 피해 내 집을 마련하려는 30∼40대가 주를 이뤘다.
이 견본주택에서는 입장부터 실내공간(유니트) 관람과 상담까지 평균 3~4시간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관람을 마친 한 40대 초반 직장인 내방객은 "서울은 지난 몇 년 간 집값이 너무 올라 집을 살 엄두가 나지 않아 나들이 겸 나왔다가 들렀다"며 "교통과 주변 환경이 좋아지면 출퇴근하기도, 아이를 키우기도 괜찮을 듯해 청약을 신청하려 한다"고 말했다.
▲ 김포 '한강메트로자이' 견본주택에서 관람객들이 단지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김혜실 기자 kimhs211@ |
신길동 보라매 SK 뷰 모델하우스 내부 분위기도 비슷했다. 젊은 부부들은 청약신청 후 부적격 당첨자 물량이나 계약 취소분을 잡기 위해 '내집마련 신청서'를 접수해 두려고 모델하우스 바닥에 늘어 앉은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지하철 7호선 보라매역 인근에 들어서는 이 아파트는 공급면적 기준 3.3㎡당 분양가가 2000만원을 넘나드는 수준임에도 최근 입주한 인근 '래미안 에스티움'이 이보다 높은 가격에 시세가 형성되자 수요자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사흘간 방문한 인원은 4만7000여명으로 집계됐다.
이밖에도 반도건설이 경기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에서 문을 연 '안양 명학역 유보라 더 스마트'에는 1만2000여명, 대우건설이 인천 남동구에 선보인 '인천 논현 푸르지오'에는 2만5000여명, KCC건설의 '영종하늘도시 KCC 스위첸'에는 1만5000여명 등이 모델하우스에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 "덜 오른 곳 없나"..매매시장 문의급증
수도권 매매시장 곳곳에도 대선 시기 관망을 마친 수요자들의 문의 행렬이 늘었다. 정비사업 추진 지역이나 교통이 편리해진 주택 밀집지역이 주축이다. 시장 안정에 주안점을 둔 진보 성향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지역에 따라선 집값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본 실수요자 및 투자자들의 매수 문의가 되살아났다는 게 일선 중개업소의 전언이다.
작년 집값 상승을 주도한 강남권 재건축부터 거래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다. 강동구 둔촌주공 4단지 전용 76㎡는 지난 주 8억45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달 말보다 3000만원 가량 오른 값이다. 개포동 주공 1단지도 매물 시세를 2000만~3000만원가량 올렸다. 현재 전용 42㎡ 시세가 11억1000만원까지 오르며 11억원을 넘겼다.
개포동 M공인 관계자는 "가격이 더 떨어지기를 기대했다가 매수를 미룬 수요자들이 지난 봄 시세에 나온 매물이 있냐고 물어오지만 그 가격대 매물은 이미 팔렸거나 다시 집주인이 값을 올려 내놓은 상황"이라며 "집주인이 올려붙인 호가에도 사겠다는 이는 적지만 매수세가 몰리면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권이나 경기도 성남·광명 수도권 주요 주거밀집지역에도 매수 문의가 차츰 늘고 있다. 작년 강남권 집값이 크게 오르고 서울 종로, 마포 등지에서도 3.3㎡당 매매가격이 2000만원을 넘는 고가 단지가 속출자 비교적 값이 덜 오른 지역,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 중심으로 매수 문의가 많아지는 분위기다.
마포구 아현동 일대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종로구 홍파동·평동·교남동 '경희궁자이' 등 먼저 집값이 오른 신규 단지 주변 아파트들은 매물이 드물어 매도호가가 1000만~2000만원씩 더 올라가고 있다. 성남과 광명 등 재개발 지역 일대에서도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지분에 붙는 웃돈이 커지면서 일반분양 예상가를 넘어서자 상승폭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 5월 셋째주(19일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0.24% 상승했다. 이는 전 주보다 0.09%포인트 높은 상승률이다. 구별로는 강동구가 1.11% 급등했고 송파(0.47%)·성동(0.32%)·양천(0.25%)·강남(0.23%)·마포구(0.23%) 순으로 상승폭이 컸다. 수도권에서는 광명(0.11%)·시흥(0.10%)·안양(0.10%) 순으로 상승률이 높았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정치 이슈와 함께 관망세에 있던 대기 수요자들이 한꺼번에 시장으로 나오면서 일시적으로 분양 시장과 매매시장 모두 들뜬 분위기"라며 "사업을 미뤘던 건설사들이 분양 판촉에 집중하면 그 주변 시장도 자극을 받게 되기 때문에 휴가철이 오기 전까지는 시장 열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