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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주년]①-3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힘

  • 2017.05.24(수) 10:45

사회적책임, 길을 묻다…100년 기업을 위하여
2003년 국내 도입 후 늘고 있지만 속도 느려
'비재무적 지표 공시' 제도화해야 효력

자본은 비정하다. 이익을 남겨 몸집을 불려야 산다. 기업은 인간적 선의로 스스로를 포장하지만 그 본질은 이익 추구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태도도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 기업이 여유가 있을 때야 잘 챙기지만 생존 위기에 몰리면 후순위로 밀린다.

 

하지만 책임과 의무가 말로 내뱉어지거나 글로 남겨지면 다르다. 특히 사회적책임 이행 성과가 기업의 언어인 숫자로 장부나 외부 공표 보고서에 쌓이면 등한시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온 게 지속가능경영보고서(Sustainability Report)다.

 

기업을 평가하는 잣대는 성장 패러다임이 지배하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종전에는 이윤창출 능력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동반성장·사회공헌 기여도, 투명한 지배구조 등이 중요한 척도다. 지속가능경영을 추구하는 윤리적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게 이제는 지배적인 인식이 됐다. 이는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기업관'으로도 여겨진다.

 

 

◇ 보고서 펴내는 기업 12년새 32배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기업의 경영 과정에서 사업적 손익 및 재무상태뿐만 아니라 사회적·환경적 성과를 이해 관계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기업에 따라서는 사회적책임 보고서(CSR Report), 통합 보고서(Integrated Report)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한국표준협회, 한국생산성본부 등이 구축하고 있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데이터베이스(DB)를 살펴보면 종합적으로 환경·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국내 기업은 2015년 현재 126곳이다. 지난 2003년에 삼성SDI, 현대자동차, 교보생명보험 등 단 3곳에 불과지만 12년 사이 32배로 늘어났다.

 

 

환경에 대한 보고서까지 따지면 이보다 역사가 길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환경보고서'는 이미 1990년대 후반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어 2002년 당시 참여정부 환경부가 '환경보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대기업들 사이에 환경보고서가 점차 확산됐다. 2003년부터 환경과 사회를 함께 다루기 시작해 2000년대 후반 들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로 통합되는 추세를 보였다.

 

이런 흐름에 가장 발빠르게 대응한 기업은 대한항공이었다. 이 항공사는 1995년 국내 최초로 환경보고서를 발간한 후 2005년부터 사회 이슈까지 다룬 환경·사회보고서를 펴냈고 2006년 이후로는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매년 내고 있다.

 

삼성전자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2000년부터 '녹색경영보고서'를 발간한 뒤(2002년, 2003년 미발간) 2006년, 2007년에는 환경·사회보고서를, 2008년 이후로는 지속가능성경영 보고서를 내고 있다.

 

◇ 수식어 덜고 숫자 채워야 '지속가능'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이 점점 늘어난 이유는 사회적으로 잘한 일을 널리 알림과 동시에 시민사회와 소통한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어서다. 하지만 대기업 가운데서도 여전히 지속가능보고서 발간을 거르거나 아예 펴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CSR 평가연구기관인 IGI(Inno Global Institute)이 지난 2월 조사한 결과 시가총액 기준 100대 기업중에는 42곳이 작년에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지 않았다. ▲네이버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SDS ▲고려아연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엔씨소프트 ▲이마트 ▲한국항공우주 ▲한화생명 ▲CJ ▲한샘 ▲삼성카드 등 13곳이 50위내 대기업중 지속가능보고서를 펴내지 않은 기업이다.

 

작년 8월 산업정책연구원 조사에서는 2015년 매출액 상위 200대 기업중 46.5%인 93개 기업만 해당년도 지속가능보고서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홍보성 자료로만 인식하는 일도 다반사다. 사회 및 환경 활동에 대한 수사(修辭)만 채워 해외 법인 영업이나 투자유치를 위한 해외 넌딜로드쇼(NDR), 컨퍼런스 등 대외홍보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 201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나타난 LG전자 비재무적 성과 추이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기업들이 내보이는 지속가능경영과 관련한 지표들을 비교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재무적 성과 공시에 대한 표준을 정형화해 시행토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사회공헌 활동의 경우 대다수 기업이 투입 금액은 밝히지 않고, 주요활동을 나열하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지속적으로 공시하게 하면 성과 측정과 기업간 비교가 명확해 질 수 있다. 

 

인도나 유럽연합(EU) 등은 이미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사회공헌 및 책임경영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이를 보고서에 의무적으로 담도록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모 그룹 사회공헌활동을 총괄했던 전직 임원은 "지속가능보고서는 핵심 이슈에 대해 이해관계자가 의사결정을 하는 데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며 "손익계산서처럼 긍정적 내용 뿐만 아니라 부정적 내용도 균형 있게 기술하고, 비교 가능한 척도를 정확하고 적시에 공시하도록 기준을 제도화해야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효력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2015년 현대건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중 장기지속가능경영 목표 및 성과 측정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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