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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하이트는 맥주 도수를 왜 높였을까

  • 2017.06.09(금) 15:50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 4.3에서 4.5로 조정
"밍밍한 맛 없애고 깔끔한 맛 높여라"‥고육지책

하이트진로가 주력 상품인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의 알콜 도수를 높이기로 했습니다. 수년 전부터 국내 주류시장에는 '저도주(低度酒)'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소주는 과거 25도가 당연시됐지만 이제는 16도대 소주가 대세입니다. 위스키도 마찬가지입니다. 40도가 넘는 위스키는 인기가 없습니다.

소비자들이 독한 술보다는 순한 술을 찾기 때문입니다. 폭음 하기보다는 술 자체를 즐기려는 트렌드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현상입니다. 주류업체에게 소비트렌드는 무척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입니다. 이 때문에 주류업체들은 저도주 생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이트진로는 이런 트렌드에 역행하는 전략을 가져가겠다고 합니다. 현재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의 도수는 4.3도 입니다. 이를 4.5도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나선겁니다. 하이트진로가 소비트렌드를 외면하기로 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니다'입니다. 오히려 소비자들때문에 바꿨다는게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약 2개월 전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를 출시했습니다. '아이스 포인트 공법'을 적용한 맥주라는 점을 앞세웠습니다. 


아이스 포인트 공법은 저장에서 여과까지 공정 온도를 영하에서 진행하는 공법입니다. 맥주를 마실때 청량함과 잔맛을 더 깔끔하게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하이트진로는 아이스 포인트 공법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리고 알콜 도수 4.3도가 최적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의 알콜 도수가 4.3도인 이유입니다.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는 4.3도 페일 라거(Pale Lager) 맥주입니다. 경쟁사들의 제품보다 0.2도가 낮습니다. 현재 국내 맥주 점유율 1위인 오비맥주의 '카스'도 4.5도입니다. 하이트진로는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의 알콜 도수를 낮추고 상쾌한 느낌을 강조해 경쟁사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려 했습니다.

다니엘 헤니를 앞세워 대대적인 광고에도 나섰습니다. 보기만해도 시원한 얼음 열차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출시 두달이 지났지만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의 판매가 지지부진했던 겁니다. 애쓴 보람도 없이 초기 반응이 좋지않자 하이트진로는 속이 탔습니다.

때마침 롯데주류가 신제품을 내놨습니다. '피츠'입니다. '피츠'의 알콜 도수도 4.5도입니다. '피츠'도 깔끔한 맛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하다'는 콘셉트를 내세웠습니다. 실제로 사전에 시음해본 사람들의 평가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피츠'의 등장으로 하이트진로는 더욱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판매가 신통치 않은데다 자칫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만의 차별성도 희석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소비자들은 새 제품에 눈이 더 가기 마련이니까요.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하이트진로가 '피츠'를 의식해 도수를 올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시기상 묘하게 맞아 떨어져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하이트진로는 억측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미 수개월전부터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의 알콜 도수 조정에 대한 내부 논의를 해왔다는 겁니다. 출시 이후 현장에서 들려오는 반응의 대부분이 '맛이 밍밍하다'였기 때문입니다. 고민끝에 하이트진로는 수차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4.3도에서 4.5도로 올린 것은 이 테스트들의 결과 때문입니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가 내세우는 아이스 포인트 공법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리기 위한 알콜 도수 찾기가 관건이었다고 합니다. 테스트를 통해 도수를 더욱 낮춰보기도, 더욱 높여보기도 했는데요. 테스트 참가자의 대부분이 4.5도에서 "맛있다"는 반응이 나왔다는 겁니다.

이런 결과를 받아든 하이트진로는 곧바로 리뉴얼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출시 두달여 밖에 되지 않은 신제품을 또 다시 리뉴얼한다는 것은 모험이자 부담입니다. 하지만 맥주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만큼 과감하게 리뉴얼을 결정했습니다. 과거의 선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이트진로는 과거 '드라이 피니시 d'라는 맥주를 선보였습니다. 당시 하이트진로의 주력상품은 '맥스'였습니다. '맥스'의 판매량은 꾸준했습니다. 국내 첫 몰트 비어였던 만큼 시장반응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하이트진로는 'd'를 내놓으면서 마케팅력을 'd'에 집중합니다. 'd'의 알콜도수는 경쟁제품들 보다 높은 '5도'였습니다.

'd'는 맥주 자체의 맛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덴마크의 브루마스터들도 'd'에 대해 호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d'는 실패했습니다. 국내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간과한 탓입니다. 국내 맥주 소비의 상당부분은 소위 '폭탄주'에서 이뤄집니다. 'd'는 상대적으로 높은 도수를 가지고 있어 폭탄주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d'가 시장에서 밀려난 이유입니다.

하이트진로는 뒤늦게 'd'의 도수를 낮췄습니다. 하지만 배는 이미 떠난 후였습니다. 'd'가 고전하는 사이 '카스'가 절대 강자로 자리잡았고 하이트진로는 지금도 그 간격을 메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의 도수 조정을 빠르게 결정한 데에는 하이트진로의 이런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는 하이트진로가 심혈을 기울인 제품입니다. 그만큼 기대도 큽니다. 'd'의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서라도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의 성공이 절실합니다. 하이트진로는 앞으로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에 모든 힘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마침 맥주가 가장 잘 팔린다는 여름이 왔습니다. 하이트진로의 결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궁금합니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맥주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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