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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지주 전환…'필살카드' 없이 치고받은 공방

  • 2017.06.09(금) 17:46

[삼성 이재용 재판]⑤
최순실 게이트 발생전 이미 무산된 사안
"대주주 지분 확대용" vs "청탁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의 핵심은 삼성이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을 진행하려고 최고권력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측에 뇌물을 줬는지 여부다. 정유라에게 말을 사주고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것도 결국은 이 부회장의 승계를 신속히 진행하려고 삼성이 제공한 대가였다는 게 특검의 논리다. 특히 특검은 승계작업의 마무리 단계를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설립이라고 봤다.

이번주부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이 부회장 재판(부장판사 김진동)에 줄줄이 증인으로 불려나온 것도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추진 과정에서 청와대의 압력이나 삼성의 로비 등이 있었는지를 알아보려는 목적이 컸다.

 

하지만 똑부러지는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은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전 이미 무산된데다 특검과 변호인단 모두 상대방을 압도하는 증거나 논리를 대지 못했기 때문이다.

 

 

◇ 금융지주사, 삼성 승계의 마지막 단추

 

삼성은 지난해 1월 승인권자인 금융위에 철저한 보안을 당부하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계획에 대한 사전검토를 요청했다. 삼성생명을 투자부문(지주회사)과 사업부문(생명)으로 나누고 지주회사가 보험·카드·증권 등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다.

특검은 이건희 회장 등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의 일환으로 삼성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회장 등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1%를 지주회사에 현물출자하면 지분율을 46%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게 특검의 주장이다. 이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임기 내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마치려고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일종의 '딜'이 있었다는 게 특검의 요지다.

그 근거로 댄 게 지난해 2월15일 이뤄진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박 전 대통령은 이 문제를 잘 챙겨보라고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지시했다고 특검은 밝혔다.

 

◇ 특검 "이재용 독대 후 대통령이 지시"

 

눈길을 끄는 것은 금융위의 태도다. 금융위는 담당 사무관부터 위원장까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에 '승인해줄 수 없다'며 끝까지 반대입장을 고수했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 다음날인 2월16일에도 금융위는 삼성에 승인이 어렵다는 내용의 검토결과를 전달했다. 한달 뒤에는 금융위 부위원장과 위원장이 청와대로 찾아가 안 전 수석에게 삼성측 계획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금융지주회사가 되면 생명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등 비금융 계열사 지분(약 5조9000억원)을 처분해야 하는데 삼성측이 그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았고, 삼성생명에 있던 현금(3조원)을 금융지주회사로 이전하는 것은 보험계약자들의 권익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여러 복잡한 이유를 댔지만 금융위는 한마디로 삼성 특혜시비를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 9일 증인으로 출석한 손병두 당시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와 야당으로부터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어 금융위로서는 보수적이고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일 증인으로 나온 김정주 금융위 사무관도 "우리가 법률상 요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때 (삼성이) 그런 부분을 미리 해소하겠다거나 이런 대응을 원했는데 없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나중에 불어닥칠지 모를 폭풍우를 생각하면 우산 역할을 해줄 명분이나 근거가 필요한데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 변호인 "청탁했다면 금융위가 반대했겠나?"

 

결과적으로 금융위의 소신은 삼성의 승계문제가 금융위로 불똥이 튀는 것을 막았다. 금융위의 반대입장에도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던 삼성은 4·13 총선을 이틀 앞둔 시점에 돌연 금융지주회사 전환 포기를 금융위에 알렸다.

특검의 논리를 따른다면 박 대통령의 지시를 금융위가 거부하고 삼성도 금융위에 두손 든 셈인데 변호인단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청탁이 있었다면 금융위가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할 순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를 댔다.

삼성 측 변호인은 "청와대 독대 다음날 곧바로 금융위가 삼성생명에 승인 불가 방침을 통보한 것은 독대 과정에서 청탁이나 대가관계 합의가 없었다는 증거"라며 "독대에서 합의가 있었고 박 전 대통령과 안 전 수석이 금융위에 관련 지시를 내렸다면 금융위가 승인 불가 방침을 통보할 수 있었겠느냐"고 지적했다.

 

◇ 자진포기한 삼성, 특검 '승계 프레임'도 흔들

 

그렇다고 특검의 공격이 무위로 끝난 건 아니다. 출석한 증인들로부터 "금융지주회사 전환은 삼성 최고위층의 결정이라고 들었다"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의 핵심 경영진의 관심사인 건 분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검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승계작업의 일환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면서 삼성이 갑자기 금융지주회사를 포기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했다.

특검측 주장대로면 최고권력자인 대통령과 국내 최대그룹의 총수가 밀어붙이는데도 승계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단지 금융위가 반대한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재판부도 이 점을 주목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손 전 국장은 "(지난해 4월11일) 삼성생명 소유의 삼성전자 지분(금액으로 5조9000억원)을 단기간 매각할 방법이 마땅치않아 보류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보류된 것이냐고 묻자 손 전 국장은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더 궁금해하거나 캐묻지 않았다. 보류했다는 통보에 기뻤다. 힘든 일을 안겪어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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