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를 수 없었던 대세
고(故) 최종건(1926~1973) SK그룹 창업주는 1953년 적산(敵産)기업인 선경직물을 인수해 창업한 이래 20년간 기업을 일구면서 SK그룹의 토대를 닦았다. 그러나 SK가 막 대기업의 위용을 갖춰가던 1973년 4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했고, 이후 동생인 최종현(1929~1998)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최 창업주는 슬하에 3남4녀를 뒀지만, 당시 자녀들이 어려 기업 경영에 나설 처지가 못됐던 탓이다.
1998년 8월 SK가의 2세 ‘5인방’이 한 자리에 모였다. 최종현 회장이 갑작스레 별세하자 사후(死後) 그룹을 이끌어갈 적자(嫡子)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대권의 주인은 최 창업주의 장자 고 최윤원(1950~2000) 전 SK케미칼 회장이 아니었다. 최 회장의 장남 최태원(53) 현 SK 회장이 부친의 뒤를 이었다.
최윤원 회장이 후계구도에서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한 데는 당시 역학구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부친의 별세 이후 20년 넘게 그룹 경영의 무게중심이 숙부 쪽으로 기울어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큰집에서 작은집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대세(大勢)를 거스르기가 힘들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최윤원 회장 또한 경영권에 미련이 없는 듯 비춰졌던 게 사실이다. 그는 미국 엘론대(경영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1978년 선경합섬(SK케미칼 전신)입사한 뒤 줄곧 선경합섬을 벗어나지 않았다. SK그룹이 1980~90년대 석유화학(SK)과 정보통신(SK텔레콤)을 그룹의 양대축으로 완성한 점에 비춰보면 그는 계속해서 변방에 머물렀던 셈이다. 게다가 1992년 12월 SK케미칼 부회장에 오른 뒤로는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떼고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일임했다고 한다. 그는 SK케미칼 회장으로 있던 2000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변변한 지분 없는 장손
SK그룹은‘3세 경영’을 논하기가 아직은 시기상조다. 비자금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총수인 최태원(53) 회장이 1960년생으로 여전히 젊고, 그의 외아들 인근군의 나이 또한 18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SK는 여전히 2대 경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태원 회장 일가와 사촌간인 최신원(61) SKC 회장, 최창원(49) SK케미칼 부회장간의 분가설만 재계의 시선이 모아질 뿐이다.
이렇다 보니 최윤원 회장 일가는 더더욱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특히 최태원 회장의 당질(堂姪) 영근씨는 오랜 세월 세간의 관심권 밖에 있었다. 부친을 일찍 여읜데다 일가 또한 SK그룹 경영에는 선을 긋고 지내왔다는 게 그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올해 나이 26세로 어리고, 변변한 본가(本家)의 지분이 없다는 게 한 몫 했을 것이다.
최윤원 회장과 김채헌씨 슬하의 1남3녀(서희·은진·현진·영근) 중 외아들인 영근씨는 부친 별세 당시 SK케미칼 지분을 전량 상속받았다. 보통주 1.9%, 우선주 0.9%였다. 영근씨는 2005년 1월과 2006년 12월에 걸쳐 보통주 0.6%와 우선주 전량을 처분함으로써 현재 1.2%(26만주)를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시세로 치면 124억원(10월 11일 종가 4만8350원 기준) 정도다.
영근씨를 비롯한 최윤원 회장 일가는 SK네트웍스 지분도 물려받았만 0.3%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가 터지면서 대부분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SK글로벌의 재무개선의 일환으로 2003년 10월 최태원 회장 등 대주주 일가들의 지분을 전량 무상소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SK가 장손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조용한 물밑 행보는 다분히 이목을 끌만하다. 영근씨가 알짜배기 위탁급식업체 후니드의 대주주로 있어서다. 게다가 SK그룹 대부분의 계열사들을 사업기반으로 할 만큼 숙부들의 전폭적인 배려가 엿보인다. 그가 부친의 뒤를 이어 본격적으로 기업가의 길을 걸을지, 나아가 본가에도 발을 들여놓을지 섣부른 호기심을 가져보는 데는 그의 이채로운 행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