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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주년]④-3 국민연금만 제대로 해도

  • 2017.06.20(화) 10:37

사회적책임, 길을 묻다…주목받는 사회적 책임투자
새 정부서 스튜어드십 코드 급물살…'사회책임' 의무화
국민연금 투명성·독립성·전문성 강화 '기업관계 재정립'

"연기금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효성을 높이고 법 제도를 보완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4월 11일 대선 후보 당시 '공적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전면화와 경제민주화' 포럼)

올 봄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당시 각 당 후보들이 한목소리를 낸 정책이 있다. 국민연금공단을 비롯한 공적 연기금 개혁이다. 분위기가 이렇게 된 것은 국민연금 탓이 크다. 국민연금이 옥시와 일본 전범 관련 기업에 투자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여론은 이미 좋지 않았다. 여기에 소위 '최순실 게이트'에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부정적 여론이 극에 달했다.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기금 운용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국민의 돈을 모아 투자하는 것이니만큼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하고, 투자한 뒤에도 기업이 잘못된 행태를 보일 경우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움직이지 않았다. 적극적 의결권을 행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보였고 사회책임투자는 형식에 그쳤다. 국민연금이 지난 1월 기준 적립금 561조원 중 사회책임투자로 쓴 돈은 6조원에 불과하다.


◇ 문재인 대통령 "스튜어드십 코드 전면 도입"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 연기금 개혁에 비교적 강경한 견해를 냈다. 우선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기금자산을 운용할 때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해야 한다는 규정을 명문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전면 도입하고 ESG를 고려한 주주권 행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에도 모두 찬성했다.

국민연금법에는 이미 ESG가 명시돼 있다. 2015년 개정안에 따라 국민연금은 투자할 때 ESG 등의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 국가재정법에서도 기금 운용 시 공공성을 고려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ESG 원칙은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에 가깝고 국가재정법상의 '공공성' 역시 강제성이 거의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19일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표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을 위한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정작 국내에서는 이를 채택한 기관투자가는 없다. 국민연금의 경우 보건복지부 등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하지 않았다.

◇ 분위기 바뀐 국민연금 개혁, 여야 한목소리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대통령이 국민연금 개혁에 찬성하는 입장인 데다 여야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ESG 중 G(지배구조·Governance)에 해당하는 고려가 있었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반 결정에 정치적 요소가 들어갈 여지가 적었을 거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일단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국민연금 역시 정권이 바뀔 즈음 재빠르게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4월 27일 '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연구 용역'을 게시했는데 연휴 직전에 공고를 내느라 입찰기간이 짧았고 '졸속 공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결국 제안서를 낸 기관이 없어 5월 17일에 다시 2차 공고를 냈다.

국민연금 개혁은 보건복지부 장관과 현재 공석인 국민연금 이사장 인선이 이뤄진 뒤 본격화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가장 깨끗하고 개혁적인 인사로 임명하고 주주권행사 모범규준(스튜어드십 코드)도 즉각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개혁이 주목받는 이유는 국민연금이 주식시장의 '큰 손'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공약대로 국민연금이 투자한 회사의 경영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경우 상장 기업에 대한 경영 감시 기능이 강화돼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할 수 있다. 또 다른 기관투자자들에도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역시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을 거론하며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 독립성 확대 논의도…"투자 의사 결정 자율로"

국민연금의 투명성 제고 및 전문성 확대와 함께 거론되는 것은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 확보 등 지배구조 개편이다. 현재 '보건복지부 장관 →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 국민연금 → 기금운용본부'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서 기금운용본부를 별도의 조직으로 떼어내는 방안 등이 제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도 최근 '2017년 기금평가'를 통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국민연금 기금을 평가한 결과 위험관리와 성과평가 등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독립성과 전문성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재부는 "기금운용본부가 국민연금공단 내부의 한 부서로 소속되고 본부장의 연임 결정 권한이 공단 이사장에 있어 기금운용본부장의 예산 인력운영 투자 의사 결정이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다만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도입이나 지배구조 개편 등에 이견이 전혀 없지는 않다. 지난 정권에서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독립 논의가 이뤄졌지만 당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간 의견이 엇갈린 바 있다. 또 재계에선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확대가 자칫 기업 경영에 지나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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