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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국감 키워드]① 기업감사

  • 2013.10.15(화) 17:59

재계 "국정감사 아닌 기업경영 감사"
기업인 증인 신중해야…따질 건 따져야

14일부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피감기관 600여곳, 증인 4000여명…1988년 국감 부활 이후 최대 규모다. 올 국감 기간 20일 중 주말을 제외한 15일 동안 1개 상임위가 하루 3~4개 기관을 감사해야 한다. 부실국감, '수박 겉핥기 국감'이 될 거란 우려가 또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국감은 행정부를 감시하는 국회 기능의 '꽃'이다. 특히나 올해 국감은 경제민주화, 동양그룹 사태, 세제, 부동산 등 우리 살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올해 국감 중 경제 분야 주요 이슈들을 핵심 단어, 키워드로 정리한다. 첫 회에는 "국감이 국정을 감사하기 보다는 기업경영에 대한 감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을 짚어본다.[편집자]

올해 국감에서 주요 기업인이 증인으로 채택된 인원은 200여명. 삼성, 현대차, SK, LG 등 대기업 대표, 임원이 대부분이다. 전체 일반 증인 4명 중 3명 꼴이다. 2년 전 국감 때 80명을 증인으로 선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2.5배 늘어난 수치다. 재계에서는 "요즘 국감은 국정감사가 아니라 기감(기업경영 감사)"이라는 힐난까지 나온다. 이번 국감에서는 정무위, 산업위, 미방위, 국토위, 환노위 등이 기업 총수와 CEO들을 무더기로 증인으로 불러냈다.

◇ 되풀이 되는 '묻지마' 기업인 증인 채택


15일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국정감사를 벌인 국회 정무위는 기업인 증인이 61명으로 가장 많은 상임위다. 대기업 일감몰아주기와 '갑을 불공정거래' 등 경제민주화 사안이 핵심 이슈기 때문이다.

이날 김충호 현대자동차 대표 역시 이런 이유로 증인석에 앉았다. 김 대표 바로 옆자리에는 수입차 시장의 불공정거래와 관련해 증인으로 출석한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이 자리했다. 대리점주 폭언 논란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사장은 진땀을 뻘뻘 흘렸다.

국감장에는 20명의 일반증인과 15명의 참고인이 대부분 출석했다.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는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은 일감몰아주기,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는 소비자 피해 대응, 박기홍 포스코 사장은 공정거래 자료 허위 제출, 박재구 CU 대표는 불공정 가맹거래 등이 이유였다.

국감 사상 처음으로 수입차 업계 CEO들도 국감장에 총출동했다.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브리타 제에거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 정재희 포드코리아 대표와 세르지오 호샤 한국GM사장 등이다. 수입차 업체 간 부품가격 담합, 수입차 수리비 과다 계상 등이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 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인들이 대거 자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 한 곳 감사에 이처럼 기업인들이 대거 불려나온 것이다. 정무위에는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인 증인들이 불려 나올 예정이다. '동양 사태'와 관련해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 이승국 전 동양증권 사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서진원 신한은행장, 김양진 우리은행 수석 부행장 등 금융사 대표, 간부들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정무위에 이어 국토교통위원회가 그 다음으로 많은 52명. 4대강 사업 의혹에 대한 질의에서 기업인들이 무더기로 증인이 채택됐다. 전경련 회장을 겸하고 있는 허창수 GS 회장과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 서종욱 전 대우건설 사장 등이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이순병 동부건설 부회장, 임병용 GS건설 사장,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등 주요 건설사 대표이사들은 계열사 몰아주기 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정해졌다.  이중근 부영 회장은 건설원가 부풀리기 의혹,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해외건설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증인 채택 이유였다.

20명의 기업인 증인을 채택한 환경노동위원회는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불법파견 의혹, 쌍용자동차 사태, 가습기 살균제 문제, 유해화학물질 사고 등이 이슈다.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와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 의혹과 관련해서는 이유일 쌍용차 사장이 나오고,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는 환노위와 정무위 두 곳에서 증인으로 채택됐다.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과 샤시 쉐커라파카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증인석에 앉게 됐다. 전동수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유출 사고로, 최봉철 현대제철 부사장은 현대제철 당진공장 질식사고 등 산재 문제로 채택됐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증인 리스트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올랐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가맹점·대리점에 대한 횡포와 골목상권 침탈 등 대기업 횡포와 관련해 출석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당초 지난해 국회에 불출석해 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증인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15일 오후 늦게 이를 번복했다. 이날 중소기업청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허인철 이마트 대표이사가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해 의원들의 분노를 산 게 원인이었다. 강창일 위원장이 직접 나서 정 부회장 증인 채택의 건을 상정했고, 곧바로 이를 통과시켰다. 결국 정 부회장은 다음 달 1일 열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 종합감사의 증인으로 채택됐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직원 자살 등 여러가지 논란에 휩싸인 이석채 KT 회장과 백남육 삼성전자 부사장, 최주식 LG유플러스 부사장 등이 증인으로 결정됐다.

 

◇ 재계 반발…'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우리 속담에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다'는 말이 있다. 여럿이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옆에 가만히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국감에 증인으로 나온 적지 않은 기업인들이 꼭 이 모양새였다.

지난해 국감에서 정무위는 32명의 기업인을 채택했지만 출석한 증인 26명 중 질문을 받은 증인은 14명에 불과했다. 12명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자리만 지키다 국감장을 떴다. 기업인들이 대거 나왔던 다른 상임위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정무위는 증인 출석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로 늦추고 질의자가 없을 경우 조기 귀가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실제 이런 사례는 아직 없었다.

재계의 불만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6일 '기업인 증인신청에 대한 경영계 입장'이라는 공식성명을 통해 "최근 국정감사는 정책감사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기업감사'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고 일갈했다. 경총은 이어 "국감 증인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국가기관의 기관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기업인 증인 채택은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인들이 국회에 나와 하루를 '공치는' 상황을 비꼬기도 했다. 경총은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 환경 속에서 촌각을 다퉈야 하는 기업 대표들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될 경우 경영에 전념할 수 없어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고도 했다. 기업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무분별한 증인 채택으로 경영을 방해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 "신중하자"..일부 정치권 자성 목소리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업인의 마구잡이 증인 채택을 자제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식의 무분별한 증인 신청이나 증인들을 국회에 불러 망신주고 골탕먹이며 죄인 취급하는 식의 활동은 국회의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이는 국익에도 별로 도움이 안 되고 국민이 보기에도 민망한 일"이라고 말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기업인들을 국회 증인석에 앉히는 것을 국회의 권위라고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인 고정관념으로, 이제는 걷어내야 할 때"라며 "국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기업인들로 대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이재오 의원은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감 증인으로 불러놓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며 "기업인 증인 채택은 더욱 신중하게 선택하고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에 반해 민주당 등 야당 입장은 강경하다. 우원식 민주당 최고위원은 "갑의 횡포를 일삼고 있는 불공정 기업들을 국정감사의 장으로 불러서 그들이 어떤 횡포를 부렸는지 국민의 이름으로 따져 묻겠다"고 전의를 다졌다. 국회 정무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주 의원도 "공정위, 금감원 등 국감에서 기업인 증인이 불출석하면 종합감사에서 다시 부르겠다"고 엄포를 놨다.

국정감사에 기업인들이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증인석에 기업인을 세워 놓고 호통치고 망신만 주는 '기업감사'가 되풀이 돼선 곤란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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