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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빚 탕감' 취지는 좋지만

  • 2017.07.28(금) 08:23

최대 100만명 빚 탕감 '도덕적 해이' 논란

"국민행복기금에 있는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장기연체채권이 40만명 조금 넘습니다. 민간 부문에서도 최소한 40만명은 돼야겠죠. 많이 할 수 있도록 목표는 세우고 있는데 두고 보겠습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7월 26일 기자간담회)

금융위원회가 소액 장기 연체자의 빚을 대규모로 탕감해주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을 정리해 43만명을 구제해주고 여기에 더해 금융공기업과 대부업체에서도 탕감을 추진해 지원 대상자는 80만~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6일 정부서울청사 통합 브리핑룸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정부가 소액 장기 연체자의 빚을 탕감해주기로 한 것은 이들의 경제적인 재기를 돕기 위해서다. 10년 이상이면 앞으로도 빚을 갚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고 오랜 기간 채권추심에 시달리느라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연체 채무자 지원은 역대 대통령마다 공약을 내걸었을 만큼 우리 사회에서 꼭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오랜 기간 채권 추심에 시달리느라 정상적인 경제생활이 어려워진 이들이 많아질수록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침체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재기를 돕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의무라고도 볼 수 있다.

취지는 좋지만 이를 추진하는 방식은 거칠어 보인다. 먼저 채무를 탕감해주는 기준과 방식에 객관적인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소액 장기 연체 채권'을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로 제시하고 있는데 왜 이 기준으로 지원 여부를 가르는지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 '보기 좋게 만든' 숫자로만 보인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언급에서도 드러난다. 최 위원장은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소액 장기 연체 채권 대상자가 40만명 이상이라며 대부업체 등 민간에서 지원하는 규모도 40만 이상이 돼야 하지 않겠냐고 언급했다. 국민행복기금 채권이야 기준에 따라 분류하면 나오는 규모이지만 민간에서 왜 이 정도 규모의 채권을 사들이겠다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빚을 아예 없애는 '탕감' 방식을 추진하는 이유도 불분명하다. 빚을 없애주는 게 채무를 조정해주는 것보다 채무자의 경제적인 재기를 더욱 이끌어낸다는 근거는 없다. 쉽게 빚을 깎아주면 향후 빚 상환 의지를 오히려 꺾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전 정권에서는 원금을 일부 깎아주고 이자를 낮춰주는 '채무 재조정'을 했으니 이번에는 더 과감하게 혜택을 주겠다는 것 아니냐는 해석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정책이 정밀하지 못하면 사각지대가 생기거나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해 정책 취지가 오히려 퇴색한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혜성 정책의 강도가 높아지면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번에 10년 이상 1000만원 이하 소액 연체채권을 탕감해줬다면 다음에는 5년 이상 2000만원 이하로 대상을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당장 고생해 돈을 갚을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인식만 심어줄 가능성이 있다.

금융위원회는 연체 채무의 '신속한 정리'를 위해 내달 중에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일률적으로 채무를 전액 감면하는 게 아니라 면밀한 상환 능력 평가를 거쳐 처리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니만큼 잘못된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해야겠다. 마치 정권 초 이벤트를 위해 '신속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보다는 정밀한 정책을 내놓기 위한 신중함이 더 필요해 보인다.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는 정책이라면 납세자들인 국민을 납득할 정도의 정밀함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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