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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산업의 경쟁력과 기관장

  • 2013.10.20(일) 08:19

한국의 경제 사정이 그다지 좋지 못하지만 증시는 승승장구입니다. 코스피지수는 2050포인트를 넘어 연중 최고치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증시가 좋다고 하지만 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증권 산업에서는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력을 줄이고 지점을 통합·폐쇄하는 구조조정이 한창이고 M&A시장에는 매물로 나온 증권사들이 수두룩 합니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국내 주식을 연일 사들이고 있습니다. 지난주말까지 외국인들은 두달 가까이, 영업일수로는 36일연속 순매수를 기록했습니다. 증시가 개방된 이후 최장 기간이라고 합니다. 이 기록은 무려 15년만에 깨졌습니다.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을 좋게 보고 `바이 코리아(Buy Korea)`를 외치고 있지만 국내 증권사들은 반대로 해외 상품을 가져다가 파는데 더 열중입니다.

설상가상 최근에 발생한 동양 사태는 증권산업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워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고객들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데 있어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불완전 판매`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증권사를 단순히 자금조달 창구로 악용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증권산업의 위상이 형편없이 쪼드라들었습니다.  

증권산업이 사면초가 입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그런 성질의 상황이 아닙니다. 이쯤되면 `사양 산업`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아시다시피 증권산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분명 아닙니다. 경제가 활력을 찾고, 효율적으로 자원이 배분되기 위해서는 증권산업이 제 역할을 해야합니다.

증권시장과 증권산업, 제조업과 자본, 펀더멘털(경제체력)과 센티먼트(투자심리) 사이에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문제의 해법을 찾기위해 각 주체들은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뭔가가 심하게 꼬여있기 때문입니다. 증권산업이 위치해 있는 시장(업계) 자체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얘기입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증권업계가 당면한 이러한 문제들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주변을 둘러싼 객관적인 사정들이 불리하기도 하지만 종합적인 차원에서, 긴 안목을 갖고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고심의 흔적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총대`를 매고 나서는 구심점이 없습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증권 유관기관들의 수장 선정과정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증권업계에서 본다면 증권 유관기관장들은 증권산업의 인프라 역할을 해야합니다. 개별 기업들이 감당하기 힘든 사업을 선도적으로 진행하고 정책적 지원이나 제도 변화가 필요하면 이들이 나서서 정책담당자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정과 관심, 그리고 전문성이 필수적입니다.

새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증권 유관기관장들은 임기와 상관없이 줄줄이 사표를 냈습니다. 한국거래소 이사장,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코스콤 사장 등이 분위기에 못이겨 물러나고, 이제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는 과정입니다. 한국거래소 이사장에는 최경수 전 현대증권 사장이 취임했습니다. 한국예탁결제원과 코스콤 수장 자리도 곧 채워질 예정입니다.

유관 기관장에 임명됐거나 거론되는 인사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관료 출신, 그것도 모피아(기획재정부와 그 전신 재정경제부 출신) 라인입니다. 최경수 신임 거래소 이사장은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을 지냈습니다.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내정설이 돌고 있는 유재훈 금융위원회 상임위원도 기획재정부 국고국장 출신입니다. 거래소 산하 코스콤 사장에도 기획재정부 출신 고위공무원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가장 문제는 소통 비용이 크고 결과는 업계의 비용으로 다가온다는 겁니다. 한국거래소 노조는 최 이사장 선임에 반대하며 즉각 재공모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예탁결제원과 코스콤도 새 경영진이 선임될때마다 직원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어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노조와 경영진이 공감대가 형성된다 싶으면 임기와 상관없이 `정치적 일정`과 맞물려 옷을 벗게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자본시장의 IT를 담당하는 코스콤의 경우, 전공과 상관없는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며 조직은 물론 업계에도 부작용이 적지 않습니다. 금융산업에서 전산 기능은 갈수록 중요한 경쟁력입니다. 꾸준한 기술개발과 혁신을 통해 증권업계에 질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글로벌시장에서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식견이나 전문성이 있어야 제대로 방향 정립하고 추진할 수 있습니다.

관료출신에게 기대하는 업계의 희망섞인 기대는 `전문성이 부족해도 관료 출신이라는 무기를 최대한 활용해 증권산업 발전을 위해 힘써달라`는 것입니다. 과거 선임자중 `마지막 공직`을 최대한 이용해 `은퇴 준비`를 하겠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존경이나 신뢰는 커녕 관료출신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은 것은 그런 경험에서도 비롯됐습니다.

공기업 수장을 임명하는 측에서는 `전문성을 감안해서 정하겠다``는 얘기를 수없이 해왔습니다. 어느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들을 때마다 `과연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고민했지만 답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최근에 도달한 결론은 이런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공기업 수장의 전문성이란 `다음 정권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 임명권자의 깊은 고민과 임무를 부여받은 분들의 분발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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