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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대한민국 국정감사는…

  • 2013.10.21(월) 10:08

대한민국 국정감사는 드라마다. 재밌다. 1년에 한 번 하는 연례행사다. 기다려진다. 기업과 금융회사, 국민 모두 일심동체로. 회사의 총수를 모시는 분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 근처에서 드라마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쓰일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우리 보스가 TV에 한번 나갈 지도 관심사다.

국회의원은 더 바쁘다. 가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올핸 정치판이 꽁꽁 얼어붙어 ‘얼굴 알리기’가 영 시원치 않았다. 이번에 튀지 못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마침 기업과 공무원을 때리기 좋은 아이템도 널렸다. 이제 제목만 잘 잡으면 된다. 내용은 상관없다.

▲ 신제윤(왼쪽) 금융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2013 국정감사에서 김정훈(오른쪽) 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전달하고 있다.

17, 18일 이틀간 이어진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국정감사의 모습이다. 동양그룹 사태는 예상했던 대로 메인 스토리다. 예고(언론 보도)편도 충분히 봤다. 그런데 이미 본 예고편에서 나아간 것은 별로 없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죄인처럼 끌려 나와 이틀 연속 고문(?)을 당한 것 말고는.

호통은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속설의 전형이다. 갑질이다. 국민의 직접 선거로 오른 자리니 어련하겠나.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라는 민의(民意)는 종종 막무가내가 된다. 마치 국민은 아무것도 모를 것이란 냥. 이를 모를 국회의원이 어디 있겠냐마는 문제는 시청률이다. 위원장은 틈날 때마다 국회방송이 생중계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밑도 끝도 없이 너나 할 것 없이 호통이다. 애초부터 답변을 들을 생각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출연 시간이 너무 짧다는 이유다. 성실한 답변도 거의 없다. 감사장에 나온 고위 공무원들은 의원의 낚시질에 걸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책임 소재를 찾으려 덤비는데 엮이면 안 된다. 골치만 아파진다.

호통이 잘 안 먹이면 협박도 불사한다. 국정감사에서 국민의 대표라는 이유로 좋은 무기가 많다. ‘위증 처벌’이다. 이 무기는 헛똑똑이일 때도 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국회에서의 증인 선서를 두 번이나 거부했다. 법을 아는 사람이. 그래서 알만한 사람이 더 무서운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호통과 위증 협박의 반복은 막장 드라마와 다를 게 거의 없다. 일순간 앞의 국정감사 과정을 잊게 한다. 국민의 대표를 무시하고 우롱하는 나쁜 증인만이 있을 뿐이다. 시청자의 입에선 연신 “나쁜 놈, 어이구! 나쁜 놈”이 터져 나온다. 이쯤 되면 목표한 시청률에는 근접했다. 의원들은 이것만 기억해주길 기대한다.

이런 모습은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이라는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성의 투쟁일 때 의미가 있다. 권모술수가 판치는 정치가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은 역사가 후세에게 준 선물이다.

호통과 막장이 시청률을 올려줄지는 모른다. 오전 국감을 마치며 클로징 멘트를 날려야 하는 상임위원장이 합리적인 정책 결정보다는 지역구 민심 다독이는 멘트에 더 열을 올리는 모습은 진정 국민의 눈높이와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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