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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KB의 '해외' 트라우마

  • 2017.08.30(수) 13:58

이스트웨스트은행 손 떼…시장 선점 놓쳐
BCC '트라우마' 발목 잡히기보다 미래 봐야

KB국민은행은 최근 필리핀 현지은행인 이스트웨스트은행 지분 인수전에 참여하려다 포기했습니다. 입찰에 함께 뛰어든 신한은행과 경쟁하면서 인수가격 부담이 커졌기 때문인데요. 명색이 '리딩뱅크'를 넘보는 은행인데도 해외은행 인수합병엔 유달리 소극적입니다.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갖춘 필리핀 시장에서 손을 뗀 것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10여년 전 해외은행 인수합병에 실패한 '트라우마'에 아직도 갇혀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연임을 준비하는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에게 미래를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조언입니다.

◇ 필리핀 시장 선점 기회였는데 

국민은행이 입찰을 포기한 것에 대해 아쉽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필리핀은 2014년 수년간 막아둔 외국계은행의 시장 진출을 허용했습니다. 시장을 개방하기 전 필리핀에 나간 해외은행은 10곳에 불과합니다. 경쟁은행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만큼 개방 초반에 자리를 잡으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는데다 전체 가구의 5분의 1만 은행 계좌를 보유해 금융산업 발전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습니다. 그만큼 필리핀 진출 기회를 엿보는 은행들이 많은데요. 국민은행이 몸을 사리다 유망 시장을 장악할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입니다.

물론 인수가격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동남아시아 은행의 높은 수익성을 보면 도전할 만했다는 의견이 제기됩니다. 동남아시아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1.4~1.6%대인 국내은행보다 못해도 두 배 높습니다. 똑같이 돈을 굴려도 동남아시아에서 벌이가 더 좋다는 뜻입니다. 국내은행들이 NIM을 0.1%포인트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을 고려하면 현지은행 인수합병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분석입니다.


◇ BCC '트라우마' 못 벗어나


국민은행을 몸을 사리는 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국민은행은 2008년 카자흐스탄 현지은행인 BCC의 지분 41.9%를 9541억원에 샀습니다. 거금을 들였으나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대규모 부실을 내면서 투자액을 다 날렸습니다. 당시 강정원 전 행장이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았을 정도로 국민은행엔 아픈 기억입니다.

10년 가까이 지났으나 국민은행은 여전히 해외은행 인수합병에 소극적입니다. 반면 일찌감치 인수합병에 뛰어든 은행들은 해외 진출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신한은행은 신한베트남은행을 안착시키면서 은행 글로벌사업 담당자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우리은행도 올해 인도네시아 현지은행인 우리소다라은행에 1000억원대 증자를 하는 등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 윤종규 회장 미래 바라봐야


인수합병은 결국 CEO의 의지와 결단이 중요합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지난 3년간 별다른 해외 인수합병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리딩뱅크'를 앞다투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호주뉴질랜드(ANZ)은행의 베트남 리테일 부문을 인수한 것과 대조되는 행보입니다.

KB금융은 올해 신한금융을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당기순이익 1조8923억원을 올려 신한금융(1조9092억원)과의 차이는 불과 169억입니다. 10년만의 1위 탈환도 점치지만 BCC 매각이익 환입 등 일회성 요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국민은행의 주요 수입원인 주택담보대출은 막히는 판입니다.

고지에 오르려면 해외사업 등 새로운 수익 발굴이 필수입니다. 해외은행 인수합병을 통한 외연 확장도 적극 검토해야 합니다. 언제까지고 BCC라는 아픈 기억에 갇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오는 11월 연임을 준비하는 윤종규 회장에게 과거에 발목 잡혀 있기보다 미래를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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