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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 갑자기 '백조'된 사연

  • 2017.09.11(월) 17:23

박정호 SKT 사장 "매각없다. 집중 육성"
SK측 태도 변화로 매각 협상 불발 '반전'
SKT와 시너지 통해 독보적 서비스 모색

SK플래닛의 11번가 매각은 없던 일이 됐다. SK플래닛 최대주주인 SK텔레콤의 박정호 사장이 "매각은 없다"고 돌연 선언했다. 업계에서는 그간 11번가 매각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신세계, 롯데 등 유통 공룡들이 뛰어들었다. 협상 과정에서 치열한 물밑 작업이 이뤄졌다. 하지만  오히려 '육성'으로 결론났다.

SK텔레콤은 향후 11번가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는 것에 발맞춰 AI(인공지능)와의 접목을 통해 핵심 사업으로 키운다는 포부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매각 대상이었다가 갑자기 그룹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반전이 일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 '미운 오리' 11번가

SK플래닛의 11번가는 그동안 SK텔레콤에게 '미운 오리새끼'였다. SK플래닛의 실적 부진 탓에 SK텔레콤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SK플래닛도 처음부터 실적이 부진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5년 처음으로 영업손실을 입은 이후 작년에는 365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작년 손실 중 약 2000억원 가량이 11번가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SK플래닛의 수익성이 악화된 것은 오픈마켓 11번가 서비스를 키우기 위해 출혈 경쟁을 벌이면서 비용이 급격히 늘어난 탓이다. 현재 SK플래닛의 11번가는 국내 오픈마켓 시장에서 이베이코리아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후발업체들의 도전을 막아내고 이베이코리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마케팅 비용이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SK플래닛은 그동안 재무구조 개선과 대규모 외부 자금 수혈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SK플래닛은 작년 BoA메릴린치 주관으로 최대 1조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추진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어 중국민생투자유한공사로부터 1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도 진행했지만 협상이 중단됐다.

여기에 모회사인 SK텔레콤이 추가 증자는 없다고 못을 박은 터라 SK플래닛으로서는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들이는 수밖에는 달리 살아남을 방도가 없었다. 올해 초 SK플래닛이 조심스럽게 매각 혹은 외부 자금 유치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 SK는 왜 매각을 철회했나

SK측은 올해 초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취임한 직후 먼저 신세계에 SK플래닛의 11번가와 관련된 협상 여부를 타진했다. 박정호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SK플래닛의 재무구조 개선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확대를 노리고 있던 신세계는 SK의 제안을 반겼다는 후문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온라인을 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집중 육성을 지시한 상태다. 신세계로서는 11번가를 인수한다면 단번에 오픈마켓 시장 2위로 올라설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변수가 생겼다. 뒤늦게 롯데가 11번가 인수에 참여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롯데도 신세계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확대에 대한 고민이 큰 상황이었다. 그런만큼 11번가를 가져온다면 유통 시장에서의 막강한 파워를 앞세워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SK는 신세계와 롯데 양측을 두고 저울질에 들어갔다.


SK와 신세계·롯데는 각각 치열한 물밑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SK가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신세계나 롯데가 생각했던 11번가 분사 후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합작사의 최대주주에 오르는 방식이 아니었다. SK는 11번가에 대한 지분 투자만을 원했다. 경영권은 SK가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협상때와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 협상에 참여했던 신세계와 롯데측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신세계가 먼저 손을 뗐다. 이어 롯데도 협상 결렬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SK플래닛은 "애초부터 매각은 고려치 않았다"는 입장이다. SK측과 협상에 나섰던 한 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협상 초기부터 SK측에서는 경영권 매각을 염두에 뒀고 그것 때문에 우리도 협상에 나선 것이었다"며 "우리가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경영권을 가져가지 못하는데 돈만 내려고 협상에 참여했겠느냐"고 말했다.

◇ 집중 육성한다…'몸값 올리기' 분석도

업계에서는 SK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이유는 그룹 최고 경영층의 의중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미국의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이 대형마트인 월마트를 앞지른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이겼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1번가라는 든든한 온라인 계열사가 뒤늦게나마 눈에 들어왔다는 분석이다.

SK 입장에서는 비록 손실 투성이지만 이미 업계 2위 자리에 있는 11번가를 매각하는 것보다 집중 육성해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이야기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최근 SK플래닛에 대해 "11번가를 통해 미래의 커머스를 선도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 SK플래닛 판교 사옥.

박 사장은 "앞으로 SK텔레콤의 정보기술과 11번가의 커머스를 융합한 획기적인 서비스를 통해 독보적인 e커머스 플랫폼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SK플래닛은 이례적으로 실적을 공개했다. 상반기 거래액이 전년대비 10% 증가한 4조2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액도 전년대비 20% 성장하고 손실폭도 절반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최근 광고대행 사업을 맡는 M&C부문을 SM C&C에 매각해 몸집을 줄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SK가 아직 매각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박 사장의 발언도, 이례적으로 SK플래닛의 호전된 실적을 발표한 것도 향후 매각을 염두에 두고 몸값을 높이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11번가가 매각되든 아니든 SK로서는 어떤 시나리오든 손해볼 것이 없는 셈"이라면서 "다만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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