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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는 SOC]①'인프라=삶의 질'이라더니…

  • 2017.09.19(화) 17:58

나라 안팎서 180도 다른 'SOC 투자 가치관'
"복지 위해 예산 삭감"..건설업계 "어불성설"

새 정부가 내년 사회기반시설(SOC) 예산을 대폭 감축하면서 건설업계가 시름에 빠졌다. 당장 일감이 줄어들 걱정이 커져서다. 정부는 이제 충분히 인프라가 깔린 만큼 예산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설업계를 포함해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경제의 골격이자 혈관인 도로, 철도, 공항 등 SOC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내 SOC 투자의 현황과 이에 따른 영향, 각계의 목소리 등을 짚어본다.[편집자]

 

"인프라 개발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설 개선 그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건설업과 물류‧에너지 등 연관 산업의 일자리를 만들어 냅니다. 정보통신기술과 결합한 인프라 구축은 미래 성장 동력이 돼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지난 4일 서울 강남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2017 글로벌 인프라 협력 콘퍼런스(Global Infrastructure Cooperation Conference, GICC)'는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해외 인프라 세일즈의 장(場)이었다. 김 장관은 주요 발주국의 장ㆍ차관 등 핵심인사들에게 SOC 투자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우리 기업의 사업참여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자리 객석에 서있던 국내 건설업계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서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남의 나라에는 이렇게 인프라 투자를 강조하면서 정작 국내에서는 SOC 예산을 후려쳐내는 게 말이 되냐"는 불만 가득한 말과 함께였다.

 

▲ 그래픽/유상연기자 prtsy201@

 

◇ 20% 삭감된 SOC 예산..2022년엔 15조뿐

 

이 행사 사흘 전인 1일, 정부는 국회에 2018년 예산안을 제출했다. 전체 재정 규모는 올해(본예산 기준)보다 7.1% 많은 429조원이었다. 하지만 SOC 예산은 올해보다 20% 삭감된 17조7000억원으로 편성됐다. 2004년 이후 14년만에 가장 적은 것이고, 한 해 삭감 폭(4조4000억원)으로는 역대 최대치였다. 국토교통부 소관 SOC 예산은 올해 19조576억원에서 내년 14조6977억원으로 22.9% 줄었다.

 

건설업계 입장에서는 당장 공공부문 사업 매출이 5분의 1 이상 날라간 것이나 마찬가지인 날벼락이었다. 5년간 178조원이 소요되는 새 정부 정책과제 재원조달을 위해 전 부처를 대상으로 구조조정이 추진된 결과였다. 기재부는 재고가 상당히 축적됐다고 평가한 SOC 분야에서 가장 과감하게 예산을 삭감했다.

 

국토부 설명은 이렇다.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사업 등 대형 사업이 완료되면서 예산 자연 감소가 이뤄졌고, 내년으로 이월될 예산이 2조5000억원가량 인 것을 감안하면 예년 수준의 SOC 사업 추진에 차질이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또 신공항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등의 주요 인프라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2020년 이후에는 SOC 예산도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돈줄을 쥔 재정당국은 방침은 한참 다르다. 향후 5년 동안 SOC 예산을 연평균 7.5%씩 감축하겠다는 게 기재부 계획이다. 이 삭감비율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올해를 기점으로 줄어드는 정부 전체 SOC 예산은 2022년에 15조원을 하회하게 된다. 이는 추가경정예산 포함 26조1000억원이 집행된 2015년과 비교하면 57%에 불과한 수준이다.

 

 
◇ SOC 복지수준 OECD '최하위권'

 

GICC에서 김현미 장관은 해외 인사들에게 "인프라 개발은 본질적으로 물, 교통, 전력, 주택과 같은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요소들을 연결하고 공급해 우리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며 "나아가 사회통합을 실현하는 '포용적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용적 성장은 금융위기 이후 대두된 사회적 계층적 균형성장 개념이다.

 

김 장관이 대외적으로 한 이 말은 인프라 확보가 곧 삶의 질 제고, 복지 확충으로 직결된다는 의미다. 건설업계는 이 점을 가장 답답해 하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토목사업 관련 임원은 "국내 사회기반시설이 우리가 다리와 도로를 수주해 짓는 해외 수주현장국보다 나은 수준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삶의 질 확보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 여지는 국내에서도 아직 많다는 얘기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SOC의 본질은 미래 성장잠재력의 확충이다'라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국토계수당 도로보급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0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국토면적과 인구 등을 감안할 때 도로가 한참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 통근시간은 OECD 주요국 평균(29분)의 2배인 58분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를 인용해 우리나라 기초인프라 경쟁력지수가 2011년 19위에서 2014년 26위로 하락했고, 2010년대 초 19∼20위였던 교통 경쟁력지수 순위도 2015년 21위로 낮아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교통 등 SOC 여건이 오히려 후퇴화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철한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달 낸 보고서를 통해 "현재 SOC 예산으로는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권 인구밀집 지역의 교통 혼잡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며 "지방 역시 인구유입과 경제 발전을 위해 지역개발 관련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홀대론·소외론' 난무..국감서도 질타 예상

 

최근 들어서는 경제 고도 성장기에 집중 건설된 인프라의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해, 집중적인 유지관리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후 인프라가 증가하면서 잠재적 안전사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시설안전공단에 따르면 준공 30년 이상 지난 국내 SOC는 2016년 기준 전체 중 10.3%에서 2021년 15.5%, 2026년 25.8%, 2031년 43.6%, 2036년 61.5%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한건설협회는 지난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또 기재부, 국토부 등 주요 부처를 방문해 'SOC 인프라 예산확대 건의서'를 전달했다. 이어 12일에는 대한전문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등 관련 단체들과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어 SOC 예산 확충을 요청했다.

 

유주현 대한건설협회장은 "정부의 SOC 예산 삭감은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며 "복지와 성장은 반대 개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적정 수준의 SOC 투자가 국민 복지를 향상시킨다"고 주장했다.

 

SOC 예산 삭감에 대한 반발은 지역을 두고 정치권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최근 국민의당은 호남고속철 예산 삭감을 두고 '호남 홀대론'을,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 지역 SOC 예산 미반영을 두고 'TK 소외론'을 내세우고 있다. 내달 앞둔 국정감사에서도 이에 대한 집중적인 지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내건 140여개 지역 공약도 '공약(空約)'이 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지역 공약 대부분이 SOC 관련 사업인데 이런 예산 삭감 추세를 감안하면 정상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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