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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반포대전'..숨가빴던 한달이 남긴 것

  • 2017.09.27(수) 19:18

이사비 논란 등 이슈놓고 극한 대립
과열경쟁 지양 등 정비시장 정화 필요

초유의 재건축 수주전이었다. 공사비 2조7000억원, 총사업비는 1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는 매머드급 사업이었다. 판세는 뚜껑을 열기까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두 건설사의 강점이 모두 뚜렷했다. 결국 조합원들은 건설업계 '맏형'으로 일컬어지는 현대건설을 택했다. 숨가빴던 한 달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현대건설의 새 프리미엄 브랜드 '디 에이치'보다는 '70년' 역사와 재무 건전성이 더 먹혔다는 평가다. 고령층이 많고 보수적 성향이 지배적인 서울 서초구 고가 재건축 단지의 조합원들이 사업의 안정성을 높이 산 결과로 보인다. 인지도 높은 '자이' 브랜드로 3년여 전부터 이 사업 수주에 공을 들였던 GS건설은 분루를 삼켰다.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누구도 양보할 수 없었던 이유
 
27일 공동사업자가 판가름난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사업은 저층 주공아파트 2090가구를 최고 35층 5388가구 규모 단지로 변모시키는 사업이다. 한강변에 닿은 길이만 1.5km로, 건설사로서는 '랜드마크'로 삼을 수 있는 천혜의 입지에 자신의 브랜드를 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조합은 건설사간 컨소시엄 구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시점부터 이미 피 터지는 경쟁이 예고됐다. 건설사가 단독으로 수주 경쟁에 참여해 조합원들의 이익을 가장 많이 배려한 조건을 제시하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4일 마감한 시공사 입찰에는 현대건설과 GS건설만 참여했다. 현대건설은 '디에이치 클래스트', GS건설은 '자이 프레지던스'라는 이름을 반드시 이 단지에 심겠다는 각오를 비쳤다.
 
과거 이 단지 수주를 노렸던 삼성물산은 수주전에서 빠졌다. 삼성물산은 최근 주택사업에 매우 신중한 태세여서 이 회사 강남지역 재건축 수주팀 일부는 이 사업을 앞두고 GS건설로 적을 옮기기도 했다. 시공비용 2조7000억원은 수위급 대형 건설사의 한 해 정비사업수주 규모다. 게다가 압구정지구 등 향후 강남권 재건축 사업 추가수주를 위해서도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이력을 쌓는 게 절실했다.
 
양사는 모든 것을 걸다시피 했다.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두 건설사의 경쟁 자체가 조합원들에겐 파격조건이었다. 둘 모두 3000억원안팎의 무상 특화 공사비에, 조합원들이 원하면 후분양제 방식을 택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내놨다. 자체 조달한 자금으로 공사를 80%이상 진행한 뒤 분양보증 제한이나, 분양가 상한제 등의 규제를 받지 않고 일반분양해 조합원 이익을 최대로 끌어올려 주겠다는 의미다.
 
▲ 반포주공1단지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이사비 논란, 법률 해석과 표심은 달랐다
 
무상 이사비 논란은 이 재건축 사업에서 최대 이슈였다. 현대건설만 내건 '이사비 세대당 7000만원 무상 지급'은 전례없는 가장 화끈한 조건이었다. 이주비(감정가의 60% 대여)와 별도로 이사 촉진을 위해 공사기간 동안 5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주거나 이에 대한 이자비용인 7000만원을 현찰로 주겠다는 것. 전체를 합치면 2000억원에 가까운 돈이다. 상대인 GS건설은 수주전을 흐리는 법 위반사항이라며 이를 공격했다. 
 
이를 둔 적법성 논란은 GS측 김앤장법률사무소, 현대측 율촌 법무법인 등 대형 로펌의 법 해석 대리전으로도 이어졌다. 논란이 커지자 국토교통부가 나서 '무상 이사비 지급이 금품 제공에 해당할 수 있다'며 이 조건을 시정토록 했다. 법리 다툼에서 GS건설이 이긴 것이다. 하지만 표심을 돌리진 못했던 듯하다. 조합원 사이에선 오히려 '누구 때문에 공짜 이사비가 사라진 것이냐'는 반응이 많았다는 후문이 돌았다.
 
GS건설은 무상 특화제공으로 현대건설이 ▲건축 ▲입면 ▲전기 ▲기계 ▲조경 등 5가지 항목으로 크게 묶어 제시한 것도 공박했다. 자신들은 22개 항목으로 세세하게 적시한 반면 현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두고 한 지적이었다. 임병용 GS건설 사장이 마지막 총회자리에서 "현대 제안서에서 2550억원이 빈다"고까지 표현한 부분이다.
 
열띤 경쟁에 조합원들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과열과 혼탁을 방지하기 위해 홍보공영제를 실시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비방 포스터가 난무하고, 총회가 다가오면서까지 홍보요원들의 대인마크식 설득이 이어지자 '이제 그만 좀 하라'는 고성까지 오갔다.
 
◇ 초유의 경쟁, 무엇을 남겼나
 
 
여론전에 선물 살포까지, 그야말로 '진흙탕' 그 자체였지만 겉은 양쪽 모두 '정정당당'으로 포장했다. 현대건설은 지난 18일 반포주공 1단지 수주전에서 패하더라도 깨끗하게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사비 지급 등 위법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과에 따라 소송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GS건설에게 선수를 쳤다는 해석도 있다.
 
GS건설은 총회 하루 전에야 '도시정비 영업의 질서회복을 위한 GS건설의 선언'이라는 반성문 성격의 자료를 냈다. "최근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건설사의 과잉영업 등의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고 그 후진성을 지적 받고 있는 점에 대해, 업계의 일원으로서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는 이런 과열 수주 행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였다.
 
이번 판을 지켜본 다른 건설사 관계자들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무리한 사업조건이 수주전에 승리한 현대건설의 발목을 잡을 수도, 반대로 GS건설은 출혈 수준의 사업 조건에서 풀려난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비방까지 난무하며 과열된 대형 건설사들의 경쟁이 끝났지만 그만큼 깊은 상처도 생겼다. 갈등 봉합과 도시정비시장 정화가 앞으로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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