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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초대형 IB와 속좁은 은행

  • 2017.11.10(금) 14:07

기울어진 운동장 논쟁에 재차 불이 붙었습니다. 증권사와 은행 간 기싸움은 이제 새로운 일이 아니긴 한데요. 해묵은 이슈들에 더해 최근 또 한 번 제대로 격돌할 태세입니다. 

이번엔 초대형 투자은행(IB) 업무인 발행어음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버전 3.0 혹은 4.0 정도가 될 법한 은행과 증권의 밥그릇 싸움, 그 속을 들여다볼까요.

 

 

아시다시피 지난해 8월 정부가 초대형 IB 육성 방안을 내놓은 후 올해 상반기로 예상됐던 출범 시기가 차일피일 미뤄졌습니다. 초대형 IB 준비에 전력을 다한 증권사들도 손을 잠시 놓고 있었는데요. 다행히 내주쯤 초대형 IB 1호가 출범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13일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초대형 IB 인가안을 최종 의결할 예정인데요. 날이 잡히자 은행연합회가 다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초대형 IB에 허용되는 발행어음 업무가 일반 상업은행 업무에 불과해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인데요. 발행어음은 만기가 1년 이내로 짧아 정부가 의도하는 모험자본으로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고, 과거 단자회사나 종합금융사처럼 단기대출업무에 치중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금융투자협회도 곧바로 발끈했는데요. 금투협은 초대형 IB의 발행어음은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고, 수탁 한도도 존재해 예금자보호가 되는 은행 예금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최근 이를 의식한 듯 증권이 다루는 기업 고객은 은행의 기업 고객과 다르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요. 초대형 IB의 신용공여를 확대해 기업 대출을 늘리려는 건 사자에게 소처럼 여물을 먹으라는 것과 같다는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의 주장에 대한 맞불이었습니다.
 
은행은 기존에 독식하던 업무가 일부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발행어음 금리가 예금 등에 비해 매력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발행어음이 신규 자금을 창출하기에 앞서 단기자금을 운용하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나 환매조건부채권(RP) 수요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반면 초대형 IB가 구색을 갖추기 위해선 기업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발행어음 업무가 필수적입니다. 애초 초대형 IB 육성 방안이 나왔을 때부터 차근차근 발행어음 업무를 준비해 온 증권사로서는 기가 차고 답답할 노릇입니다.

 

 

결국 화살은 다시 금융위원회와 국회로 쏠리고 있는데요. 현재 초대형 IB의 기업 신용공여 한도 증액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초대형 IB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기업 신용공여 한도 확대가 필수적인데 제대로 된 총탄도 없이 초대형 IB가 출범하게 된 겁니다.

 
국회는 초대형 IB의 기업 신용공여 한도를 높이는 대신 중소기업만으로 한정하기로 했지만 법적 불확실성에 따라 보류된 상태입니다. 은행 쪽 주장대로 오로지 창업·혁신기업만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데요. 이 경우 신용공여 확대와 함께 되려 리스크가 커질 것이란 우려까지 제기되며 여러 비판들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졌습니다.
 
결국 초대형 IB가 탄생하더라도 신용공여 한도 확대가 막힌다면 반쪽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이 홀로 초대형 IB에 진출하면서 선점 효과가 부각되고 있지만 홀로 져야 할 부담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발행금리 태핑 과정이나 추후 나타날 수 있는 혹시 모를 부작용 등에 따른 여파를 홀로 견뎌내야 한다는 건데요.
 
한투증권과 함께 초대형 IB 인가를 신청한 나머지 대형 증권사들도 일단 출발선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대주주 적격성 문제 등 자격 요건이 불거진 증권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은데 말이죠.
 
금융위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장 조성보다 순차적 인가를 택한 게 일단 1곳만 우선적으로 출범시켜 놓은 뒤 추이를 보려는 속내도 엿보이는데요. 증권과 은행이 날을 세우고 우유부단한 당국은 눈치만 보는 현 상황이 또 다른 정책 실패의 데자뷔가 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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