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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가상화폐와 P2P금융의 인정투쟁

  • 2017.12.13(수) 17:26

'제도권' 요구하는 업체 vs '부작용' 몸 사리는 당국

"가상화폐 거래소 업체들과 P2P대출 업체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한 금융당국 임원에게 가상화폐 규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런 대답부터 나왔습니다. 둘 다 금융시장에 새로 등장한 플레이어라는 건 알겠는데 전혀 다른 형태의 사업을 하는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걸까요?


◇ '대못' 규제 아닌 제도권이라는 '울타리'

얘기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그에 따르면 두 업체는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그들을 규제해주길 원하고 있다는 겁니다. 보통 규제는 자유롭게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인식되는 데요. 그래서 규제를 '대못'이나 '전봇대', '가시' 등으로 비유해가며 없애야 할 것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본인들의 영역에 '대못'을 박아주길 원하는 걸까요? 이 임원은 이들이 원하는 규제를 '지대'라고 표현했습니다. 지대 추구(rent-seeking)란 특정 경제 주체가 면회 취득 등을 통해 얻은 독과점적 지위로 별다른 노력 없이 소득을 얻는 것을 지칭합니다. 이 용어는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혜를 받고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대기업들을 비판할 때 많이 쓰이곤 합니다.

결국 가상화폐 업체들과 P2P대출 업체들이 원하는 규제라는 것은 '대못'이라기보다는 '울타리'라는 게 그의 시각입니다. 정부가 기업을 규제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해당 기업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인가를 해주거나 면허를 주는 식으로 말이죠.

이 규제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면 이후로는 규제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정부의 규제를 받는다는 신뢰가 생기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하게(?) 영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시장 진입이 어려워져 후발주자와의 경쟁에서도 유리해집니다.

▲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가상통화 거래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실제 P2P대출 업체들의 경우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면서 가이드라인 형태의 규제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정부는 인허가 등의 방식으로 업체들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업체에 투자하는 게 좋다"는 정도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P2P대출 업체들은 협회를 만들어 나름대로 규정을 적용해가며 가입업체를 관리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민간단체의 지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 강경한 정부 "제도권 금융사 거래도 금지"

금융당국은 P2P대출의 경우 기존 제도권 금융사들이 하지 못했던 중금리 대출 등 일부 순기능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상화폐의 경우 우리 경제나 금융시장에 주는 순기능이 전혀 없다는 게 금융당국 관계자들 대부분의 시각입니다. 그래서인지 가상화폐에 대한 금융당국 수장들의 언급은 강경하기만 합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가상화폐를 제도권 거래로 인정할 수 없다. 거래소 인가나 선물거래를 도입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최흥식 금감원장 역시 지난 13일 "암호화폐와 가상화폐는 금융상품도 화폐도 아니다"며 "제도권 금융회사가 직접 거래하거나 거래 여건을 조성하는 행위를 금지하겠다"고 했습니다.

▲ 서울 용산전자상가 상점들이 가상화폐 채굴전용 PC 등을 광고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결국 금융당국은 가상화폐와 관련 업체들을 제도권 금융으로 끌어들일 생각이 없고, 특히 은행이나 증권사 등 제도권 금융사가 가상화폐 관련 영업을 하는 것조차 금지하겠다는 입장인 겁니다.

◇ 투기냐 대안화폐냐…논의 필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는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화폐입니다. 보안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이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안화폐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기관이나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 가상화폐가 오히려 안정적이라는 인식도 있었죠.

최근 투자 과열로 인해 가치가 급등락하는 모습을 보면 안정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해킹 등 보안을 방지하기에는 '안정적'일지 모르겠지만 화폐의 가치는 불안정성 그 자체입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정부의 태도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 섣불리 가상화폐를 '인정'해줬다가는 앞으로 있을지 모를 소비자들의 피해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겠죠.

그러나 지금의 현상이 투기로 왜곡되고 과잉됐다고 해서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를 언제까지나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겁니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가와 민간 영역에서는 가상화폐를 지급수단으로 인정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무작정 금지하고 외면하기보다는 이를 도대체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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