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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사 생사 키워드]①'폭풍 전야' 수수료 재산정

  • 2018.01.12(금) 08:53

수수료 적격비용 재산정 작업…정부 입김 '우려'
정책비용 카드사가 안는 셈…"시장논리 기초해야"

카드 업계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내수 시장이 차고 넘쳐 마케팅 비용 지출로 인한 제살 깎아먹기 전쟁이 한창이다. 정부는 카드사의 주 수입원인 수수료 체계를 손보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조달금리도 올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법정최고금리도 내달부터 27.9%에서 24%로 떨어진다. 카드사는 비싸게 돈을 빌려와 싸게 돈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을 타개하고자 카드업계는 해외시장진출과 디지털화를 고민하고 있다. 올해 카드업계를 쥐락펴락할 요소들을 키워드 중심으로 풀어본다. [편집자]

"타격 정도가 아니라 못 견딜 정도다. 올해는 정말 어렵다"

지난 3일 신년인사회에서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우대수수료율 확대 정책에 따른 여파를 묻는 질문에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정 부회장의 대답은 카드업계의 시각을 정확하게 대변한다. 지난해 출범한 새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보완조치의 일환으로 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을 꾸준히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개별 카드사 매출이 더 쪼그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칼자루'는 정부 손아귀에

12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올 12월께 신용카드 수수료 적격비용 재산정 작업을 마무리해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수수료 적격비용은 카드사들이 가맹점 수수료율을 정할 때 '기준' 역할을 한다. 적격비용 재산정 작업은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개정 뒤 3년 주기로 조달금리와 운영·관리 비용이 종합적으로 고려돼 이뤄진다.

재산정 작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단연 카드사다. 카드사 실적에서 가맹점 수수료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업계 1‧2 위를 다투는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의 경우 지난해 3분기까지 수수료수익이 전체 영업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8.8%와 57.9%에 달했다. 수수료가 내려가면 실적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칼자루는 정부가 쥐고 있다. 여전법에 따르면 금융위는 신용카드 우대수수료 수준을 정할 수 있다. 우대수수료는 영세업자들의 편의를 위해 일반수수료보다 낮은 수수료를 특례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적격비용을 공정하게 산출한다 해도 금융위가 우대수수료율 범위를 임의대로 조정해버리면 무용지물이 되는 구조다. 

분위기 자체는 이미 카드사에 불리하도록 기울어졌다. 정부는 지난해 출범하면서 영세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해 수수료를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10일에는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7월에 신용카드 수수료가 (지난해에 이어) 추가 인하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올 6월13일에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는 만큼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조치가 정치 구호로 확대재생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 정부 관계자는 "올해 대통령이 한 차례 더 카드 수수료를 인하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영세사업자 혜택 폭을 넓혀가는 것이 이 정부 기조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전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카드업계

영세사업자 혜택 폭이 넓어질 때마다 카드사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실제 지난해 7월 금융위가 연매출 3억원 이하의 영세가맹점은 기존 1.3%에서 0.8%로, 연매출 3억~5억원 이하 가맹점은 기존 2.0%에서 1.3%로 수수료율을 낮춘 이후 카드사들의 3분기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신한카드와 국민카드의 당기순이익은 전년대비 각각 16.4%, 2% 감소했고 롯데카드는 적자상태로 고꾸라졌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소수자리 단위로 수수료율이 내려도 카드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타격"이라며 "카드수수료율 변경 이슈는 예전부터 계속 있어왔지만 말이 나올 때마다 카드사는 괴로울 뿐"이라고 말했다.

카드사가 정부에 고충을 토로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여신금융업이 정부 인허가에 기초한 사업인데다 이 업계가 ‘관(官)’의 입김이 세게 작용한다는 인식때문이다. 60~70%에 달하는 새정부 지지도를 고려했을 때 섣부르게 업계 입장을 피력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반론은 제기할 수 있어도 반대는 불가능하다.

카드사들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여신금융협회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협회 관계자는 "협회가 우대수수료를 정하는 주체도 아닐뿐더러 올해 적격비용 재산정과 관련해서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돼 있어 나서기 힘든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논리에 기초해야”…걸림돌은 '의무수납제'

 

일각에서는 정부 정책에 드는 비용을 카드사들이 전부 떠안는 상황을 꼬집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서 우대수수료율을 정해버리는 건 어느 한쪽에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장 논리에 기초한 산정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시장 논리에 기초해 수수료를 산정한다는 말은 카드사와 가맹점이 수요와 공급에 맞춰 협상을 통해 수수료를 산정해야 한다는 의미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가맹점이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결제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하도록 한 '신용카드 의무수납제(1998년 도입)'로 가맹점은 정해진 수수료를 그대로 지불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카드사와 가맹점 간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게 돼버렸다.

배재홍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사무국장은 "의무수납제는 카드사와 가맹점 사이를 각각 갑을 관계로 만들어 낸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가맹점 입장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장 논리에 기초해 수수료를 산정하되 영세업자를 도와주는 카드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도 고민해봄직하다"며 "정부가 업계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 정책을 내놓은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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