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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마음을 담은 바게트

  • 2018.01.12(금) 10:50

[페북 사람들]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한겨울 동장군의 위세가 대단하다.
서울 구로구 천왕동 한 사거리는
찬바람과 함께 적막함만 가득하다.


일부러 들를만한 어떤 이유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 사거리 근처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빵집이 있다.

 


아파트 상가 한쪽에 자리한 작은 빵집
'아빠의 바게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빵집은 엄마들의 입소문을 타고
가평에서도 찾아올 만큼 유명해졌다.


빵집 이름이 잘 말해주듯
바게트 전문 빵집이다.

 


빵집 안은 손님들로 넘쳐났고
전화벨은 쉴새 없이 울렸다.

바게트가 나오는 시간을 묻거나
바게트 예약 전화가 대부분이다.


프랑스의 주식으로 잘 알려졌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친숙하지 않은
바게트를 사려고 먼 곳에서 이 빵집을
찾는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바게트를 사려고 기다리던
한 손님이 묻지도 않은 정답을 외쳤다.
"먹어봐야 이 맛을 알지. 한 번 먹어봐."

 


빵집 주인인 성민규, 이두리 부부
지금은 여유와 미소가 가득하지만
10년간 말 그대로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사케집 점장이던 남편 민규 씨는
10년 전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실직했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지만
민규 씨는 인터넷 게임에 빠져
어린 아들을 안고 PC방을 전전했다고 한다.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내 두리 씨가 웃는다.


"어디까지 가나 기다려봤어요.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제가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마냥 기다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공고를 보고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거예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지만
놀고 있느니 그거라도 하라고 했죠.


그런데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 거예요.
자기와 딱 맞는 직업을 찾았다면서
남들보다 몇 시간 일찍 출근하는 등
정말 열심히 일했죠.


당시 남편 나이가 28살이었는데
한참 어린 동생들 틈에 끼여서
많이 힘들었을 법한데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10년을 열심히 배워서
2년 전 모아둔 돈과 대출을 합쳐
이곳에 바게트 전문 빵집을 열었어요.


주변에선 다들 말렸어요.
바게트 빵집은 다 망한다고 했죠. 


그래도 저는 남편을 믿어주고 싶었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잖아요."

 


민규 씨는 그때가 떠올랐는지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아내를 쳐다본다.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웠죠.
늘 저를 든든하게 믿어줬으니까요.


가게를 연 후 1년은 쉽지 않았어요.
주변 사람들 말처럼 정말 망해가더라고요.


빵집을 열면서 세운 원칙이 있는데
가장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쓴다는 거였죠.


그날 만든 바게트는 다음날 절대 팔지 않았어요.
팔다 남은 빵과 바게트는 매일 기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매일 몇십만원씩 손해가 쌓였죠."

 


"6개월 정도 계속 손해를 보다 보니
과연 원칙을 계속 지켜야 하나라는
생각이 슬금슬금 찾아왔죠.


돌아보면 그런 유혹들을 이겨낸 덕분에
지금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단골이 조금씩 생기긴 했지만
경영은 늘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는데


단골 중 한 분이 구로구 엄마들이 모인
블로그에 바게트 맛이 좋다는 글을 올렸고


덕분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방송까지 출연하면서 더 많이 알려졌죠.
지금은 월 매출이 2000만원 정도 됩니다."

 


민규 씨는 내 아이에게 먹인다는
아빠의 마음으로 바게트를 만든다.


어려웠던 시절 아내와 두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아픔이 컸던 탓이다.


제대로 된 옷도 장난감도 사줄 수 없는
안타까운 아빠의 마음을 담아


스스로 세운 원칙을 끝까지 지키면서
바게트 개발에 더욱 집중했다고 한다.

덕분에 그 시기에만 바게트 13종을 개발했다.  


민규 씨는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자리를 잘 잡았으니
지금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다른 아빠들도 모두 힘내라고 응원한다.

 


송성숙 씨는 익숙한 듯
바게트를 종류대로 고르고 있었다.


"아빠의 바게트 중독자예요.
자녀들이 30대인데 모두 중독입니다.


며칠 안 먹으면 생각나서
이 추위에도 빵집을 찾게 돼요.


일단 소화가 잘되고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해요.


'아빠의 바게트' 빵은 정말 솔직해요.
그 매력이 중독의 비결인 듯해요."

 


미술 선생님인 박민선 씨도 단골이다.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야 하는데
아빠가 이곳 바게트를 너무 좋아해요
얼른 사드리고 출근하려고 아빠와 들렀어요.


일부러 빵을 사러 온다는 게 쉽진 않잖아요.
그런데 '아빠의 바게트'는 달라요.


우선 바게트 맛이 너무 좋고
아버지가 자주 드실 만큼 건강식이죠.


사장님 부부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분들처럼 너무 좋으세요.
항상 웃으시잖아요.


'아빠의 바게트'는 무척 따뜻합니다."

 


민규 씨 부부는 꿈이 있단다.
빵집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기면


재능기부를 통해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한다.


"지금은 너무 좋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사줄 수 있는
아빠가 되었기 때문이죠.


1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뭘 사달라고 하면
모르는 척 그냥 지나쳐야 했어요.
마음속으로 참 많이 울었죠.


지금은 달라졌어요.
'가자 아빠가 사줄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더 나누고 싶어요.


'아빠의 바게트'는
아빠의 마음을 담은 빵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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