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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용시장의 구조적 문제

  • 2013.12.10(화) 08:56

지난주 미국에서 발표된 두 가지 핵심 경제지표, 즉 3분기 국내총생산(GDP)과 11월 고용보고서는 이 나라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어느 나라나 가정이든 세밀히 파고 들자면 문제가 없는 곳이 없겠고,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사정이겠지만 미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 중 하나이다 보니 이 나라의 상세한 경제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난주 발표를 통해 익히 알게 됐듯이 미국의 고용시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미국 고용시장의 절대적인 회복상태나 구조적인 변화는 여러 가지 걱정스러운 모습들을 함께 안고 있다.


먼저 취업자 수를 보자. 지난달 미국의 취업자 수는 총 1억4439만명으로 집계됐다. 금융위기로 인한 실업난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2009년 12월에 비해 무려 636만명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위기 직전의 가장 좋았던 시기(2007년 11월)에 비해서는 22만명이나 모자라고 있다. 지난 6년간 인구는 계속 증가했는데, 돈을 버는 미국인의 수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이런 실정은 고용률이라는 지표를 통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고용률이란 노동이 가능한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취업한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가장 실질적인 고용지표라 할 수 있다. 지난 11월 현재 미국의 고용률은 58.6%였다. 전달에 비해서는 0.3%포인트 뛰었지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고 있는 58%대 중반의 좁은 범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의 고용증가는 늘어나는 인구를 겨우 흡수하는데 그쳤을 뿐이다.

지금 미국의 고용률은 지난 1983년 이후 30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00년에만 해도 미국 성인의 65%가량이 돈을 벌고 있었고, 금융위기 직전인 2006년에는 그 비율이 63%에 달했으나, 지금은 다 옛날 얘기가 돼 버렸다.


이러다 보니 소비가 힘있게 살아나지 못한다. 지난 3분기중 미국의 개인소비지출은 1.4% 증가한 데 그쳤고, 3.6%를 기록한 경제성장률 가운데 소비에서 나온 것은 1.0%포인트에 불과했다. 소비의 성장률과 전체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 모두 고용상황이 최악이던 지난 2009년 4분기 이후 가장 부진했던 셈이다. 돈 버는 사람이 예전만 못하니 소비가 크게 나아지기 어렵고 경제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소비가 이러니 경제가 크게 나아지기 어렵다.


미국의 고용 성장세가 부진한 것을 두고 '베이비부머 은퇴'와 같은 인구구조 탓이 아니겠는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55세 이상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달 40.0%에 달했다. 지난 2000년에만 해도 32% 수준으로 낮았으나 금융위기와 무관하게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노령 노동자의 은퇴가 훨씬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참 일할 나이인 25~54세 연령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달 80.9%에 그쳐 84%를 넘었던 지난 2000년에 비해 대폭 낮아졌다. 청장년층의 노동시장 이탈은 금융위기 이전에도 있었던 추세였으나 위기를 계기로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혈기 왕성한 나이의 미국인 상당수가 아예 구직활동도 하지 않은 채 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청장년 노동인구들이 놀고 있는 데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위 그래프에서 보듯이 지난 13년간 미국의 고용시장은 업종별로 큰 편차를 보이며 변화해 왔다. 일부 업종은 상당한 고용창출을 이뤄냈지만 일부 업종들은 13년 전에도 훨씬 못 미치는 고용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미약한 고용성장세가 단지 경기부진 탓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건설이나 정보, 제조업 부문은 경제가 더 강하게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늘릴 수 있는 고용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한 제조, 건설업 등에서 숙련된 인력이 하루 아침에 교육/보건이나 레저/숙박처럼 고용이 빠르게 증가하는 업종으로 전환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러다 보니 고실업 사태 와중에도 일부 산업에서는 구인난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손이 달리는 업종의 기업들은 임금을 올려줄 수 밖에 없고 이는 해당 물가의 상승과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반면 일손이 넘치는 업종의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감수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소비부진과 해당 물가 하락의 원인이 된다. 이는 연준이 아무리 돈을 많이 풀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지난주 미국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3분기중 미국에서 발생한 국내총소득(GDI) 가운데 25.6%가 기업이익으로 돌아갔다. 지난 1966년 이후 50년 가까운 동안 기업이 이렇게 많은 소득을 차지한 적은 없었다. 반면, 노동소득으로 분배된 것은 52.4%에 불과했다. 노동자 임금 등으로 이렇게 적게 배분된 적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고용이 부진한 원인이자 결과이다.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다 보니 나눠 받을 사람이 적은 것이고, 그러다 보니 경기회복세가 더디고 고용도 부진한 것이다.

이 현상은 아울러 경기와 고용의 회복속도가 부진한 데도 불구하고 기업주가는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는 원인이자 결과이다. 기업이익이 급증하다 보니 당연히 주가가 뛰어 오르고, 주식시장이 고도로 발달하다 보니 '단기적 이익'을 압박하는 주주들의 요구도 구조적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제로섬'의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지속될 수는 없다. 노동소득 분배가 줄어 소비가 부진해지면 기업들이 이익을 늘릴 수 있는 여지도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기업이익이 급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투자와 고용이 곧 살아날 징조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대폭 저하된 노동생산성 때문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분기중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연율로 1.7% 증가하는데 그쳤다. 지난 2~3년에 비해서는 나아진 편이지만, 2~4%의 급증세를 보이던 1990년대말~2000년대 중반에 비해서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위 그래프에서 빨간 실선은 5년 이동평균선으로 중기 추세를 보여준다.)

노동생산성이 이렇게 낮아진 상태에서는 고용을 늘려봐야 돈을 더 많이 벌기가 어렵다.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꺼리는 이유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노동생산성과 소득 분배율을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과거에는 노동생산성이 낮을 때 기업이익보다는 노동소득으로의 분배율이 높았다. 경기가 나쁘고 생산성이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고용과 임금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생산성이 대폭 하락한 가운데 노동소득 분배율도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있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임금을 더 쥐어짜야 할 텐데 그렇게 한다면 노동소득 분배율은 더욱 하락하게 될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잔뜩 벌어진 미국의 소비경기와 주식시장의 괴리를 더욱 확대시킬 것이다.

이는 지속 불가능하고 악순환을 낳을 수 밖에 없다. 미국의 노동생산성 저하는 산업별 기상도가 판이하게 급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은 경직돼 있는 구조적 요인 탓이 클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현재 미국의 기업들은 노동생산성을 더 이상 높이기 어려운 한계에 도달해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경직성은 산업간, 지역간 노동 이동성이 떨어지고 있는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부실한 직업교육의 문제는 미국 내에서도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가 보유율'을 높이는 주택정책도 노동시장을 경직되게 만드는 큰 이유라고 주장한다. '내 집'을 가진 사람은 집 부근에서만 일자리를 찾으려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큰 탓도 있다. 예를 들어 엄청난 노동인력들이 장기간 동안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과정에서 보유기술이 퇴화, 노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또한 상당부분은 금융위기 이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구조적 현상에 기인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경기회복에 한계가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부양만을 지속하는 경우 미국 경제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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