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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억 과세판결' 누가 웃을까..디아지오 vs 관세청

  • 2014.02.04(화) 11:33

관세청 패소: 신뢰성 타격, 세수확보 빨간불
디아지오 패: 국내사업 위기, 외교문제 부각
무승부: 소송·행정비용 소모…본전 못 찾아

국내 1위 위스키 수입업체인 디아지오코리아와 관세청이 벌이고 있는 수천억원대 과세 분쟁이 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달 중으로 과세가 적법했는지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디아지오와 관세청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양측 모두 지난 10년간의 과세 분쟁에서 거액의 소송대리 비용과 행정력을 소모한 만큼, 승소가 절실한 상황이다. 판결의 무게추가 향하는 지점에 따라 어느 한쪽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소송 결과에 대한 '경우의 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관세청이 패소하면 과세당국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유사한 사례로 엮인 기업들의 줄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디아지오가 소송에서 질 경우 막대한 세금 부담으로 국내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한다.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는 양측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세금의 일부를 돌려주는 판결이다. 패자(敗者)의 입장에선 최악의 결과를 면할 수 있지만, 승자(勝者)도 없는 애매한 결말이다. 양측은 판결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상급 법원으로 항소할 방침이어서 소송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 디아지오 승, 관세청 패…세금 5000억 '물거품'

 

법원은 소송 결과에 따른 파장을 감안해 판결을 수 차례 연기하는 등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당초 서울행정법원은 디아지오 관세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 날짜를 7일로 잡았다가 양측의 의견을 좀 더 들어본다는 취지로 결심 공판을 다시 미뤘다.

 

업계에서는 법원의 판결이 미뤄질수록 디아지오의 승소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과세가 적법하게 이뤄졌다는 논리가 확실하다면 굳이 판결을 늦출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만약 디아지오가 소송에서 이기면 관세청은 당장 1차 추징분(2004년2월~2007년6월) 세금 1940억원을 돌려주고, 2차 추징분(2008년2월~2010년10월) 2003억원과 3차 추징분(2010년11월~2012년5월)에 대해서도 세금을 받아내기 어려워진다.

 

관세청 입장에서는 디아지오 과세를 통해 걷을 수 있는 세수 5000억원(3차 추징분 1000억원대 포함)의 기회를 눈앞에서 날려버리는 셈이다. 지난해 관세수입(9조8000억원)에 비해서는 5% 수준으로 최근 세수부족 상황에 찬물을 끼얹게 된다.

 

과세당국의 신뢰성도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지난해 3월 백운찬 관세청장 취임 직후에 발표한 '지하경제 양성화' 대책에는 디아지오의 위스키 저가신고 사례를 첫선에 꼽았지만, 소송에 패소하면 정당성을 잃게 된다. 다른 위스키 수입업체들까지 비슷한 방식의 '저가 신고' 대열에 동참하더라도 마땅히 제지할 수 없는 점은 관세청에게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 관세청 승, 디아지오 패…국내사업 철수할 수도

 

디아지오에 대한 과세가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오면 관세청 담당 직원들은 표창을 받거나 '이달의 관세인'에 선정되겠지만, 디아지오 측은 존폐 위기에 놓일 전망이다.

 

현재 디아지오의 요청에 따라 법원이 제동을 걸어놓은 2차 추징분은 1차 추징분의 과세가 확정되면 자동으로 부과 처분이 내려진다. 서울세관이 관세조사 후 아직 공식 통보를 못하고 있는 3차 추징분도 자연스럽게 과세에 나설 수 있다.

 

지난해(2012년7월~2013년6월) 디아지오코리아의 매출액은 3600억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837억원과 566억원이었다. 세금 5000억원을 내기 위해서는 5년간의 영업이익으로 고스란히 갚아도 부족하고, 회사 자산(5434억원)을 모두 동원해야 겨우 가능한 수준이다.

 

디아지오 본사에서 배당을 포기하고 대규모 자금 지원을 해주지 않는 이상, 국내 사업 자체가 어려워진다. 과세당국과의 불편한 관계와 국내 위스키 소비량 감소 추세 등을 감안하면 사업 철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외교적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2011년 5월 조세심판원에서 디아지오의 1차 추징분에 대해 '재조사' 결정을 내린 것도 영국과의 관계를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법원이 과세당국의 손을 들어주면 디아지오와 같은 다국적기업은 국내 사업이나 투자 의욕이 심각하게 떨어질 수 있다. 현재 과세 불복이 진행 중인 한국필립모리스 등 다국적기업의 후속 소송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 무승부…최악 면해도 '出血' 불가피

 

디아지오와 관세청의 '치킨게임'을 멈추기 위해 법원이 중재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용이나 기각과 같이 극단적으로 기울지 않고 '일부 경정'으로 판결하는 방식이다.

 

판결문의 예를 들면 "과세는 적법했지만, 저가신고 가격 산정에서 다소 무리가 있었다"는 문구를 짐작해볼 수 있다. 과세당국이나 디아지오 모두 패소로 인한 존립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딱히 이익을 보는 쪽도 없다.

 

디아지오는 세금의 일부를 돌려받더라도 경영상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했던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태평양 등에 지출한 수수료도 만만치 않다. 법원 판결이 '전부 승소'가 나와도 본전은 이미 물 건너갔다.

 

관세청도 10년전 세관 직원의 뇌물수수 파동 이후, 디아지오 과세에 쏟아부은 행정력이 아깝다. 심사와 쟁송 분야의 최고 인력들을 총동원했고,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도 출혈이 컸다. 관세청 관계자는 "상상하기 싫지만, 승소가 아니라면 고등법원에 항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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