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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정책 十年大計]①허울뿐인 개혁 구호

  • 2013.06.05(수) 17:55

정권 초기 야심찬 개혁 추진, 여론 밀려 흐지부지
백화점식 짜깁기, 대책마다 숙제 내놓기 여전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래의 재원 마련을 위한 세수 확보, 지하경제 양성화, 조세개혁 등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정부가 끊임없이 외쳤던 구호와 오버랩된다. 노무현 정부는 중장기 조세개혁, 이명박 정부는 근본적 세제개편을 각기 추진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증세와 감세를 넘나드는 조세정책도 지난 10년간 일관성을 잃었다. 정치권이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감면 정책을 내놓으면서 세금의 예외조항만 양산해냈고, 누더기 세제로 인해 납세자들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에 소득공제를 부여하는 아이디어로 자영업자의 세원을 노출시키고, 근로장려금으로 서민과 일자리 문제를 매만지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혼돈의 연속이었던 조세정책을 되돌아보고, 현 위치와 미래의 방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 5년 마다 외치는 조세개혁

 

지난 10년간 국세 수입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2003년 115조원이었던 국세는 2012년 200조원을 넘어섰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수입도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이다.


나라 곳간은 점점 채워져갔지만 정부는 끊임없이 개혁을 원했다. 새로 출범한 정권들은 한결같이 미래의 복지 재원을 중요시하고, 조세제도를 뜯어고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참여정부는 첫 해인 2003년부터 중장기 조세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비과세·감면을 줄여 세입 기반을 확충하면서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체계로 전환하는 것을 뼈대로 삼았다. 부동산 보유과세를 강화하고, 자영업자의 세원 투명성을 높여 조세 형평을 맞춘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증여세 완전 포괄주의를 도입하고, 금융소득 과세제도를 손질하는 계획도 있었다. 2005년에는 정부가 중장기 조세개혁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조세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직속의 조세개혁실무기획단도 만들었다.

 

참여정부의 야심찬 조세개혁은 수포로 돌아갔다. 2006년 초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이 외부에 유출되고, 윤영선 조세개혁실무기획단 부단장과 곽태원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아픔을 겪었다. 결국 조세개혁실무기획단은 해체 수순을 밟았고, 참여정부의 중장기 조세개혁은 수차례 연기되다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에도 기획재정부 수장을 맡은 강만수 장관을 중심으로 '근본적 세제개편'을 외쳤다. 1970년대 부가가치세를 직접 만들었던 강 장관은 30년만에 대대적인 조세개혁을 단행하겠다고 공언했다. 매번 단기적인 개편으로 인해 흐트러진 조세 원리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 등 감세 정책이 대부분이었고, 근본적인 세제개편은 온데 간데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세 정책은 상당부분 후퇴했고, 부동산 세제도 방향성을 잃고 걷잡을 수 없는 시장 위축을 불러왔다.


◇ 외압에 밀려 번번이 후퇴

 

앞선 두 정부가 조세개혁에 실패한 이유는 여론과 정치 논리가 핵심이다. 참여정부의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은 소비세율 인상과 주식 양도차익 과세 등 다양한 증세 방안이 검토됐지만, 여론이 악화되면서 서서히 빛을 잃었다.

 

발표 시기를 선거 이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과물 자체를 내놓지 못했다. 조세 원칙을 바로잡기보다는 대중의 반응에만 신경쓰다가 포퓰리즘(populism)의 덫에 걸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나온 국세청 개혁방안은 전형적인 용두사미(龍頭蛇尾)였다. 당시 정부는 예산 9억원을 들여 미국 국세청(IRS) 컨설팅을 담당했던 부즈앤컴퍼니에 국세청 조직의 전반적 개혁방안에 대해 용역을 줬다.

 

용역보고서에는 지방국세청 폐지와 세무서 광역화, 미국식 외부 감독위원회 설치 등 민감한 내용이 대거 담겨 있어 국세청 내부 반발이 극심했다. 국세청 고위직의 뇌물 스캔들이 터져나오는 시기에 개혁이 절실했지만, 조직 이기주의에 밀려 용역보고서는 폐기 처분됐다.

 

정치인들도 조세개혁을 전혀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선거 전후로 표심을 의식한 나머지 세금 깎아주는 법안들만 쏟아냈고, 조세 제도에 대한 진지한 논의보다는 정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정부가 내놓은 각종 대책에도 세금을 활용한 유인책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나 고유가 대책, 서비스산업 선진화방안 등 정부 정책에는 세제지원 방안이 담겼다.

 

각 부처가 내놓는 백화점식 대책에 세제를 덧입히면서 조세정책은 뒤죽박죽 혼란의 연속이었다. 정치 포퓰리즘과 정부의 무분별한 퍼주기 정책이 누더기 세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 十年大計 Point☞ '진득한 조세개혁'

 

박근혜 정부도 중장기 조세개혁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각계 전문가 30여명으로 조세개혁추진위원회를 구성해 8월까지 중장기 세입확충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세입을 확충하려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방법이 필수적이지만, 특정 분야의 증세나 조세감면 정비도 따라줘야 한다.

 

세금을 더 걷거나 기존 특혜를 중단하는 일은 당사자들의 조세저항이 극심하다. 결국 포퓰리즘과 정치 논리를 이겨내는 것이 관건이다. 과거 정부들이 실패한 조세 개혁을 임기 내에 끝까지 실행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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