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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적자 낸 산업은행, 앞으로는…

  • 2014.03.26(수) 09:57

대출채권 두 배 늘면서 충당금 비중은 낮아져
부실의 현재화 늦추기로 골만 깊어지는 우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기업금융을 담당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13년 만에 적자를 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후 대규모 적자를 냈던 산업은행이 다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을 맞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IMF 위기 땐 비교적 단기인 2~3년에 걸쳐 부실을 털어냈다. 이번 글로벌 위기에 따른 부실의 현재화는 길게 늘어질 가능성이 커 매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 예상된다.

산업은행은 이미 거액 적자를 예고해 왔다. 기업 구조조정이 가장 큰 원인이다. 기업금융 대표 은행답게 충격도 크다. 지난해 결산 결과 당기 순손실은 1조 4000억 원 규모. 산업은행은 오는 28일 주주총회를 열어 이 같은 결산 내용을 확정한다.

IMF 외환위기에 따른 기업들의 연쇄 부도로 1998년도 결산에서 4조 889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었던 산업은행이다. 이듬해인 1999년엔 흑자로 돌려놨지만, 2000년에 다시 1조 3984억 원의 적자를 냈다. IMF 위기에 따른 충격으로 대략 3년에 걸쳐 6조 원 정도를 털어냈다.


지난해의 경우 재계 서열 13위였던 STX그룹 계열사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대규모 지원에 나서면서 대손충당금 규모가 눈덩이로 불었다. 과거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수한 대우건설과 KDB생명으로 인한 손실도 컸다. 지난해 산업은행의 대손충당금은 1조 7371억 원으로 전년도 7825억 원보다 9906억 원이나 늘었다. 지난해 대손 비용만 약 2조 2000억 원이나 된다.

산업은행의 지난해 말 대출채권은 98조 1198억 원으로 2012년 말 91조 7707억 원에서 6조 3491억 원 늘었다. 2000년 말부터 2012년 말까지 13년 동안 대출채권 규모는 무려 182% 증가했다. 50조 원에서 91조 원이 됐다. 지난해 증가분까지 포함하면 대출채권은 무려 2배 가까이 늘었다. 기업금융 전문 국책은행의 이런 대출채권 증가는 기업들에 그만큼 많은 여신을 제공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기간 산업은행의 대손충당금은 3조 2774억 원에서 8249억 원으로 줄었다. 대손충당금은 부실채권을 상각하면 줄어들 수도 있다. 이익을 줄이면서 부실을 털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은행은 IMF 위기 후 거액의 손실을 내면서 자본금을 까먹어 세금으로 증자해 메웠다. 부실채권을 적극적으로 상각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산업은행 대손충당금 규모는 다소 의아하다.


이런 양상은 기업의 수출금융을 주관하는 수출입은행에서도 비슷하다. 수출입은행도 전년 대비 40% 수준인 600억 원이 되지 않는 당기 순익을 이달 말 주총에서 확정한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해외 건설 플랜트와 신에너지 분야의 자금지원이 많았다. 양 은행의 이익 규모 자체의 차이를 무시하고 보면, 순익의 흐름은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빼다 박은 모습이다.

2007년부터 시작해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들은 더 어려워졌고, IMF 때와는 달리 서서히 말라 죽는 행태를 보이며 터진 것이 STX그룹이다. 현재 많은 건설사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대손충당금은 줄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산업은행의 대출채권 대비 대손충당금 비중은 일시적으로 커졌다. 기업들의 부실 가능성이 있는 대출채권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더 쌓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2011년에는 이 비중이 다시 크게 낮아진다.


부실 가능성이 높은 채권에 적정한 충당금을 쌓아 대응했다기보다는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부실의 현재화를 늦추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산업은행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 금융산업 전반의 어려움으로 완화된 정책적 배려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려운 기업이 회생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언젠가는 터질 테고 그때야 산업은행의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부실의 현재화 작업이 이뤄지게 된다. IMF 때와는 달리 부실의 현재화가 길게 늘어지면서 금융산업과 나라 경제에 고통을 주는 방식인 셈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최근 설문조사를 보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가 상당히 오래가면서 세계 경제를 짓누르리라는 예상에 우리 중소기업 경영자의 90%가 공감했다.

STX그룹의 경우도 위기의 징후가 3~4년 이상 지속하다가 터졌고, 상당수 건설회사와 조선•해운 회사들은 그 이상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이들 정책금융기관의 골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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