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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톡톡]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영원한 연인…샤롯데

  • 2014.05.04(일) 09:00

샤롯데처럼 사랑받는 기업 만들고 싶어

 

▲ 독일의 문호 괴테가 1774년 출간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초판.

롯데호텔 객실에는 다른 호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책이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국내 뿐 아니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롯데호텔 전 객실에 이 책이 비치되어 있다. 왜일까.

 

이는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1774)이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문학광이었던 신 회장은 책을 읽고 감명 받아 책 속 여주인공 샤롯데(샤를로테의 일본식 발음 샤르롯또를 한국식으로 읽은 것)의 애칭 ‘롯데’를 따서 기업 이름을 지었다. 객실에 비치한 소설책 서문에는 롯데그룹 사명에 담긴 사연이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신 회장은 1922년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가난뿐이었다. 스무 살 되던 해 그는 정든 고향집에서 몰래 떠났다. 무작정 일본행 밀항선에 몸을 실었다. 호주머니에는 83엔이 들어 있었다. 현재 가치로 200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이다.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단 한 가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일본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밀항자 신분이었던 그는 ‘조센진’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기도 했다. 그는 여기서 무너지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는 우유배달을 시작했다.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곧 일본인들 사이에서 성실한 청년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가 우유를 배달하는 시간이 시계로 잰 듯 정확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해진 시간이 되면 고객들의 집 앞에는 어김없이 우유가 배달됐다. 감탄한 동네 주민들의 주문이 폭주했다.

 

그는 우유 배달로 번 돈을 책에 쏟아 부었다. 지금의 와세다대학교에 진학해 배움을 이어 나갔다. 도쿄 간다 거리의 헌책방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하루 종일 서서 책을 읽었다. 문학에 심취했다. 그는 작가를 꿈꾸었다. 그도 아니면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다.

 

▲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가난한 그가 작가를 꿈꾸는 건 사치였다. ‘성공해야 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떠올렸다. 돈을 많이 벌어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작가의 꿈을 버렸다. 대신 사업가의 길을 택했다.

 

평소 그를 눈여겨보던 전당포 주인 하나미쯔라는 60대 남자가 선뜻 5만 엔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 돈으로 1944년 비누 공장을 차렸지만 연합군의 폭격으로 공장은 잿더미가 됐다. 앞이 캄캄했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늘 빈털터리 신세이지 않았던가. 그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는 비누 만들던 밥솥과 국수 뽑는 기계를 이용해 껌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어 1946년 자본금 100만 엔, 종업원 10명으로 ‘롯데’라는 이름의 회사를 세웠다. 한때 작가를 꿈꾸었던 그다운 작명이었다. 베르테르의 열정적인 사랑을 받는 여인 롯데처럼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 소설 속 여주인공 샤롯데 삽화.(1775년)

신 회장은 “베르테르는 롯데를 향한 정열 때문에 즐거웠고 때로는 슬펐으며 그 정열 속에 자신의 생명을 불사를 수 있었습니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열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지만 정열이 없으면 흥미도 없

어지고 일의 능률도 없어집니다”라고 말한다.

 

지금도 롯데제과 본사 1층 로비에는 롯데의 삽화가 걸려 있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엔 ‘샤롯데 광장’과 ‘베르테르의 거리’가 있다. 롯데호텔 연회장은 ‘샤롯데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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