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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떨어진다, 누군가 한 명은 죽는다

  • 2014.05.21(수) 13:19

KB금융 사태를 보는 6가지 관전 포인트

KB금융그룹의 지휘부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어제(20일)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갈등의 지점만 확인했었다. 그런데 오후에 들어서면서 양측은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넜다. 금융감독원에 스스로 감사 청구를 한 데 이어, 국민은행 이건호 행장은 법원에 이사회 결정 가처분신청을 내기로 했다. 임영록 회장은 “국민은행 이사회의 결정이 옳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양측이 사실상 실력 행사에 들어간 것이다.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따라 한쪽은 가볍지 않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한쪽은 치명상이라는 예상이다. 이번 KB금융 사태의 관전 포인트를 쟁점 별로 다시 정리해 봤다.


1. 수천억 전산(IT) 프로젝트

이번 갈등은 국민은행과 국민카드의 전산시스템 개선 및 일부 교체에서 시작했다. 대형 은행에서 전산시스템에 대한 경영판단은 큰 의사결정이다.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해서다. 대형 은행은 보통 1년 IT 관련 예산만 수천억 원을 넘는다.

국민은행의 이번 주전산기 시스템 변경도 연간 2000억 원짜리다. KB국민은행 측이 소상히 밝히진 않지만, IT업계에선 1년에 끝날 프로젝트가 아닌 것으로 예상한다. 당연히 글로벌 IT 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그만큼 로비도 세다.

이런 문제로 은행 전산 부문에선 과거에도 심심치 않게 사건•사고가 있었다. 주기적으로 또는 효율적인 영업 및 경영 시스템 구축을 위해 업그레이드가 필요할 때마다 로비 문제가 불거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이번엔 주전산기 OS(operating system)를 IBM에서 유닉스로 바꾸는 문제다.

가뜩이나 주전산기 시스템은 글로벌 회사들의 독무대다. 이번에도 지키려는 IBM과 이를 빼앗기 위한 HP 등 유닉스 진영의 전면전 양상이었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전 세계 동향과 비슷하게 IBM 메인프레임의 유닉스 전환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IBM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국민은행을 빼앗기면 IBM 진영은 우리은행만 남는다.

만약 음성적인 로비가 있었다면 IBM이나 유닉스 진영 모두 했을 것이다. 그 대상 또한 지주회사나 은행 어느 한쪽에 국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사회 멤버들도 그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2. ‘임&이’ 모두 지난여름의 일을 알고 있다

이번 갈등은 이건호 행장과 정병기 감사의 선공(先攻)으로 시작했다.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 모두 이 시스템 변경 정책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시스템 교체 논의는 2012년부터 시작했고, 지난해 11월 은행 경영협회의, 올해 4월 은행•카드 이사회 결의를 거쳐 유닉스 시스템으로의 변경을 확정했다.

임 회장은 당시 KB금융 사장, 이 행장은 은행의 리스크관리그룹장(부행장)을 맡고 있었다. 은행의 경영협의회 속성과 리스크관리 담당의 역할을 고려하면 이 일의 진행을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당시 임 사장도 이 과정을 몰랐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최대 계열사인 은행의 전산시스템 변경이고 분리된 카드사와도 연결된 사항이다.

그동안 진행된 과정을 충분히 알만한 이건호 행장이 뒤늦게 문제를 제기했다면 정병기 감사가 ‘아무도 몰랐던 문제를 찾아냈다’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가정이라면,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당시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가 어렵다.

3. 이건호의 경영 현실론?

은행의 수장인 은행장은 실적으로 말한다. 이건호 행장이라고 다를 순 없다. 그래서 주 전산시스템 변경 등 비용이 큰 프로젝트에 부담을 느껴왔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물론 리스크관리그룹장일 때가 아니라 은행장에 오른 뒤의 태도 변화다.

알려진 대로 이번 사건은 IBM 측이 이건호 행장에게 메일을 보냈고, 이를 감사에게 전하며 검토해보라고 한데서 출발한다. 분명하진 않지만, 사실상 입찰에서 탈락한 것으로 지목된 IBM이 마지막 수단으로 행장을 상대로 직접 가격 베팅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고 업계에선 보고 있다.

만약 가격이 현저히 낮아진다면 이 행장으로선 굳이 유닉스 시스템으로 변경하면서 생기는 부담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은행 경영 환경은 공격보단 수비인 시대다. 당연히 비용절감이 더 효과를 내는 시대다. 틀 수 있다면 트는 것이 이 행장에게 유리하다고 계산할 수 있다.

IT업계에선 IBM 측이 단순히 가격 문제뿐 아니라 그동안의 문제점에 대한 정보를 넘겼을 것으로 추정한다. 감사실에서 상당히 빠른 시간에 문제를 확인한 것을 보면, 사실을 알고 들어갔다는 얘기다. 결국, 이 행장이 비용 절감 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틀 수 있는 명분을 IBM 측이 제공했다는 추론이다. 실제로 문제가 있었는지, IBM에 놀아났는지는 특별검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

4. 직원도 두 패로 가르는 폭발성

이번 갈등의 파급력은 상당히 크다. 지주회사 회장과 은행장이라면, 더욱이 은행 부문 포지션이 절대적인 KB금융그룹의 상황을 고려하면, 두 별의 전면전이다. 게다가 전산(IT) 부문 속성상 직원들도 두 패로 갈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갈등의 요인은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 시스템으로의 변경이다. 대체로 전산 전문 직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언어와 기종 등에 민감하다. 과거 주전산기 OS 변경 때마다 많은 금융회사의 전산 직원들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자의든 타의든 새 시스템에 불만을 품고 새 직장을 찾는 일도 다반사다.

국민은행이라고 다르진 않다. 그동안 표면으로 드러나진 않았더라도 지금과 같이 최고 수장들이 갈등을 빚는 상황이라면 내부의 불만이 다시 발호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결국, 전산 직원들도 IBM과 유닉스 진영으로 나뉘어 갑론을박하는 상황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5.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병기 감사

금융업계에서 정병기 감사는 대체로 ‘물불 가리지 않는 돈키호테 스타일’로 꼽힌다. 재무 공무원 시절부터 그랬다. 이번 이사회에서 내부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자 정 감사 특유의 밀어붙이기가 일을 키운 것으로 본다. 이 행장도 어제 기자들과 만나 “감사실에서 하겠다는데…”라는 말을 했다.

정 감사는 그동안 은행장의 결재권을 양분하는 행보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같은 재무관료 출신인 임 회장과 연관지어 이 행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엔 정 감사의 창이 임 회장을 향했다.

이런 상황은 보통 지배구조가 불안정할 때 나타난다. 어쨌든 금감원의 특검 방향이 어디로 흐르는지에 따라 정 감사도 부담이 생길 것은 자명하다.

6. {임영록•이사회 vs 감독 당국•이건호}?

이번 갈등의 진영은 비교적 선명하다. 임영록 회장은 이사회, 이건호 행장과 정병기 감사는 감독 당국과 한 배를 탄 형국이다. 감독 당국은 불편부당(不偏不黨)하게 사태를 파악하겠다는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이건호 행장의 선임과정에서 불거진 금융위원회 고위인사와의 연관성을 아주 무시하기도 힘들다.

IT 영역이 상당히 전문적인 영역인 데다 호불호가 분명한 OS 선택의 문제에서 금감원이 얼마나 제대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이미 칼을 뽑은 금융당국이 대충 사태를 무마하기도 어려워졌다. 썩은 무라도 잘라야 하는 형국이다. 당연히 책임론을 둘러싸고 공방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KB금융에선 이미 경영진과 이사회와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이 있다. 일명 주총안건분석기관(ISS) 사건이다. 당시 경영진이었던 임 회장은 이사회의 손을 들면서 어윤대 회장과 반대편에 섰었다. 그리고 이 갈등은 그룹 내부가 아닌 외부에 구조요청을 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번엔 이건호 행장이 외부인 금감원에 SOS를 친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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