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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정기관장? 왜 부총리는 이들을 불렀을까

  • 2013.06.18(화) 20:42

현오석 부총리 "경기회복과 경제민주화는 양립되어야"

"경제민주화가 성실한 투자자들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방망이가 돼선 안된다"(박근혜 대통령, 지난달 29일 국민경제자문회의)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이나 입법 활동이 기업 경영활동이나 투자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왜곡되거나 변질돼서는 안 된다"(박 대통령, 17일 수석비서관 회의)
"경제정책의 목표가 바람직하더라도 추진 과정에서 기업의 위축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경기회복과 경제민주화는 양립되어야 한다"(현오석 경제부총리, 18일 조찬간담회)

 
대통령이 선창을 하자, 경제부총리가 선수들을 불러모아 놓고 화답을 했다. 현오석 부총리는 18일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김덕중 국세청장, 백운찬 관세청장 등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조찬모임을 가졌다.
 
경제부총리가 현안이나 주요 정책과 관련해 경제관계 장관들을 소집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런데 이날 모임 멤버들은 색다르다. 공정위, 국세청, 관세청. 기업 입장에서 '갑(甲)중의 갑'이다. 오죽하면 '기업 검찰'이니 '재계 저승사자'니 하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그래서 언론에서는 이날 모임을 '경제사정기관장' 혹은 '경제권력기관장' 조찬 간담회로 이름붙였다. 현 정부들어 부총리가 이들을 한 자리에 부른 것은 처음이다. 지난주 중반 현 부총리가 회동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기업들이 겁내는 기관의 수장들을 한자리에 모아 재계에 메시지를 던지고,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경제민주화는 대통령 공약사항인 만큼 추진은 하되 일정한 범위내에서, 통제가능한 속도로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야권이 추진중인 '과잉입법'으로 인해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경제가 어려워져서는 안된다는 대목을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과 정책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 청와대와 정부의 공통된 인식이다. 
 

[사진] 현오석 부총리(왼쪽)가 18일 서울 렉싱턴호텔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 및 국세ㆍ관세청장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기획재정부
 
 
현 부총리 발언 내용을 보자.

그동안 정부는 정책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현장중심으로 세심하게 배려하며 정책을 집행하는데 중점을 두어 왔다. 경제정책의 목표가 바람직하더라도 추진과정에서 기업의 위축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오늘 이 자리는 경제민주화·지하경제 양성화가 경제활성화 노력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금은 하반기를 앞두고 기업경영환경 개선과 투자심리 회복을 위하여 법 집행 기관의 협조와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경제민주화와 지하경제 양성화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은 시대적 과제로서 반드시 계획대로 추진해 나가야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 중에는 과도하게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도 있다. 기업과 언론에서 마치 이것이 정부의 정책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으나, 정부는 수용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다.
 
공정위와 세정당국도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의욕을 저상하는 사례가 없도록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경기회복과 경제민주화는 양립되어야 하며, 양립할 수 있다고 본다. 오늘 논의를 토대로 가까운 시일 내에 오늘 참석자를 포함하여 정부관계자와 경제5단체장 등이 함께 만나, 기업의 애로를 듣고 해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다.
  하반기를 앞두고 기업경영환경 개선과 투자심리 회복을 위하여 법 집행 기관의 협조와 노력이 필요한 시기' '국회에 제출된 법안 중에는 과도하게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정부는 수용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적극 대응해 나갈 것' '공정위와 세정당국도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의욕을 저상하는 사례가 없도록 각별히 유념' 등의 대목이 눈에 띈다.   사정기관장들도 한 목소리를 냈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때 시급성이나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국정과제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되, 불필요한 과잉규제가 되지 않도록 관계부처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또 "갑을관계법 및 공정거래법상 집단소송제도나 3배 손해배상제 등 기업제재를 강화하는 입법들은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보다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정위원장의 발언은 부작용이 클 경우 정부가 이를 적극 추진하지 않거나 입법에 부정적 입장을 내겠다는 의미다. 3배 손해배상제 등은 그동안 재계와 보수 언론이 '기업할 의욕을 떨어뜨리는' 대표적 입법으로 꼽아온 것들이다.
 
국세청장과 관세청장도 거들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조세정의 차원에서 과거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잡는 것으로 정상적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지 않을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각종 제도개선 사항도 집행시에 국민의 입장에서 세심히 살펴보겠다고도 했다. 정부는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내놨다. 기업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정부 관계자들과 경제 5단체장이 조속한 시일 내에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이며,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화살은 국회를 향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제재와 각종 불공정 행위 근절, 갑의 횡포 방지 등의 입법이 기업의 투자심리와 영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을 그대로 방관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야당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려는 관련 입법들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동안 청와대도 국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경제민주화 입법 논의가 과잉입법으로 흐르게 될 경우 기업은 물론 국가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속내를 내비쳐왔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공약범위를 벗어나는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해서는 선을 긋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4월 국회에서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과잉입법 논란이 제기되자 박 대통령은 "공약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는데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재계와 만나 애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만큼 경제민주화와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경제민주화와 경기회복이 양립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부 정책의 무게 중심이 경제민주화보다는 경제살리기로 이동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이 시점에서 정부가 경제살리기 의지를 다시 강조하게 된 배경은 뭘까.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했지만 집권후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겠다는 의지는 애초부터 보이지 않았다.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이유도 있었지만 재계의 저항도 만만찮았다. 정부는 대신 집권 초기부터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한국은행에 금리인하를 압박하는 등 경기회복에 방점을 찍었다.
 
대선 과정에서 내걸었던 각종 복지공약을 실천하려면 증세로 세수를 끌어올리든지, 경제가 살아나 재정이 뒤를 받쳐줘야 하는데 대내외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세수상황을 보면 정부가 조바심을 내는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18일 국회에 출석해 올해 세수에 대해 "현재 목표 세수를 확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백운찬 관세청장도 올해 징수 목표인 66조5천억원을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세수 실적은 70조5000억원으로 1년전 같은 기간(79조2000억원)보다 8조7000억원이 줄었다. 이는 지난 5년간 평균 동기 징수율 41.1%에 비해 5.7%p 낮은 수치다. 정부가 올해 추경예산에서 정해놓은 국세청의 세수 목표가 199조원인데, 목표 대비로는 35.4%에 그친다.
 
세무당국이 비관적 전망을 내놓은 이유는 우선 기업 실적이 악화되면서 법인세 세액 감소가 예상되고, 소비위축으로 인해 간접세 징수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기업이 투자와 영업을 통해 실적개선을 이루도록 분위기를 이끌고, 경기를 활성화시켜 소비가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숨은 세수를 찾아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민주화의 고삐를 느슨하게 하고, 규제의 칼끝을 무디게 만들어 기업을 안심시켜야 하는 이유가 추가된 것이다.
 
재계도 이같은 분위기에 맞춰 목소리를 높이는 분위기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과도한 경제민주화 법안은 결국 대기업의 해외진출을 가속화시켜 국내 투자와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정부가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줘야 기업 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입법과 관련해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어떻게 결정날지 몰라 재벌들마다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를 꺼리고 있다"면서 "향후 지배구조까지 흔들리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는데 어느 재벌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겠느냐"고 했다.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일단 정부 스탠스에 대한 야권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가 지난해 재선 과정에서 표를 의식해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었지만 결국 집권후에는 재계의 반발에 굴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말이 좋아 신중론이고 기업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사실상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으로 포장한 '경제민주화 입법저지 대책회의'였다"고 비판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도 "새누리당이 기다렸다는 듯이 속도조절을 외치며 경제민주화 입법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는 별개로 새누리당 황우여,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18일 대표회담을 갖고 6월 임시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포함한 83개 민생법안을 최대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과잉입법은 안된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정부가 재계에 유화 제스처를 보낸 점을 감안하면 '최대한 처리'는 정치적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더 크다. 민주당이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를 국정원 국정조사와 연계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개별 법안중에서는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 특별법', 공정위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개정안, 대기업 계열회사의 신규편입을 금지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법' 개정안 등이 빛을 못보고 묻힐 공산이 큰 법안으로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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