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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하는 목적이 이윤이라고 말하면 안되는 3가지 이유

  • 2014.07.02(수) 15:50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1)

집보다 직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원들. 그들의 하루하루도 말과 글로 짜여집니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잘하는 것은 직장인의 필수 경쟁력이고 사장이나 상사의 말과 글을 잘 이해하는 것 역시 능력입니다. 

 

말과 글로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이 되고, 조직의 소통에 기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을 역임했던 강원국 작가가 민간기업 경험을 토대로 '당신이 모르는 직장내 말과 글의 비밀'을 풀어내 드립니다. 
 
필자는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인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로 현재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앞으로 매주 강원국 작가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 칼럼을 연재합니다.[편집자]

 

 

고리타분한 얘기로 시작하려고 한다. 명분에 관한 이야기다. 중국인은 실리를, 일본인은 의리를, 우리는 명분을 중시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분명한 건 있다. 기업 회장이나 사장은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언젠가 회장이 물었다.

“강 상무, 기업을 왜 한다고 생각합니까?”
“돈 벌기 위해서 아닌가요?”
“이 사람 큰일 낼 사람이네. 어떻게 돈이 기업하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까?”

그렇다. 회장에게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된다. 회장의 목에 거꾸로 박힌 비늘을 건드린 것이다.

회사에서 글쓰기는 명분 만들기이다. 회장은 다 가진 사람이고, 더 가지려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존경받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가진 것을 잘 포장해주는 직원을 좋아한다. 더 가지려는 이유를 그럴 듯하게 만들어주는 직원을 총애한다. 나아가 회장 스스로 자기를 멋있고 훌륭한 기업인으로 착각하게 해주는 직원을 대우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명분이다.

명분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리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설명해주는 근거이다. 스스로 납득하고 떳떳할 수 있게 해주는 논리 같은 것이다.

명분은 세 가지 용도로 쓰인다. 첫째, 회장 스스로를 다잡는 역할을 한다. 회장은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권력이다. 회장을 제어할 사람은 회장뿐이다. 바로 그 견제장치가 회장 스스로 표방한 ‘명분’이다. 명분은 사적인 욕심만이 아니라 공적인 ‘눈치’를 보게 함으로써,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든다.

둘째, 임직원을 설득하고 움직이게 만든다. 사람들은 정당하다고 생각할 때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자기가 믿는 것에 대해서 행동하는 힘이 강하다. 전쟁도 명분이 없으면 집단 살인 행위가 되며, 여기에 목숨 바칠 병사는 없다. 97년 말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애국’이란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다. 경영은 위기관리다. 어느 기업할 것 없이 위기는 반드시 닥친다. 그랬을 때 축적해놓은 명분은 그 기업을 도와주고 살려야 할 이유가 된다.

2008년 4월 ‘삼성사태’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이건희 회장이 2010년 3월 경영에 복귀했다. 이 회장이 큰 저항에 맞닥뜨리지 않고 경영에 복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평소 쌓아둔 명분이 힘을 발휘했다.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강력한 리더십과 오너 책임경영 체제가 필요하다’는 명분이 그것이다. 이 회장은 그것을 일깨우는 내용으로 첫마디를 했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명분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정말 그럴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해선 안 된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져야 하는 것이다.

1. 거창하지 않은 게 좋다. 누구나 ‘명분’하면 비장함을 떠올린다. 왠지 결연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 그런 명분은 허울 좋은 수사로 들리기 십상이다. 손에 잡히고 피부에 와 닿는 것이어야 한다. 

2.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선한 뜻을 입증할 수 있는 ‘팩트(fact)’가 있어야 한다. 수치나 사례가 많고 구체적일수록 설득력이 높아진다.

3. 공익에 가까울수록 좋다. 사익에 가까우면 반감을 산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에게만 해당된다면 명분이 약한 것이다.

4.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현실을 도외시해선 곤란하다. 실질과 맥이 닿아야 한다. 그래야 공허하지 않고, 실리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

5. 진심으로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뻔뻔한 회장이라도 얼토당토않은 것을 갖다 붙이면 낯 뜨거운 법이다. 그러므로 밖에 내걸기에 앞서 자기 안에서 설득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겉으로만 내세우는 ‘명목’과는 다르다. 명분을 만들 일이 있거든 회장이나 사장이 평소 강조하는 말, 실제로 행동한 것에서 찾아보자.

사업은 결코 고상한 일이 아니다. 돈 놓고 돈 먹기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실리가 아닌 명분이 필요하다. 사업의 본질을 감추고 포장하고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러한 명분을 잘 만드는 게 말하기, 글쓰기 실력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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