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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아무나 하는 줄 알았더니…

  • 2014.07.25(금) 14:23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7)
크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내가 경험한 두 가지 이야기다.

이야기 하나.
대학에 들어가고 첫 번째 여름방학을 맞았다. 고향 전주에 내려왔다. 서울 상경 5개월 만의 귀향이었다. 할 일 없이 뒹굴뒹굴 하다 책꽂이에서 고등학교 때 배운 정치경제 교과서를 빼들었다. 어찌나 활자가 크고 책 두께는 얇아 보이든지. 이런 책을 일 년 동안이나 배웠단 말이야! 왠지 속아 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지 불과 6개월. 그사이 배웠으면 뭘 얼마나 배웠다고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안목이 변한 것이다. 6개월이란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혀 다른 세상에서 새롭게 보는 눈이 생긴 것이다. 

이야기 둘.
대우증권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다 대우 회장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김우중 회장의 연설문 쓰는 일을 하게 됐다. 엄밀히 얘기하면 보조 업무였다. 그럼에도 특권을 누렸다. 회장 주재 회의에 배석하는 영광(?)이었다. 주간 혹은 월간으로 열리는 그룹 사장단 회의나 회장단 회의에 들어갔다. 일개 과장은 나 혼자였다. 아니 회장이나 사장이 아닌 사람은 나뿐이었다. 가까이서 회장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회장 비서실이 문을 닫고 나는 대우증권으로 복귀했다. 왜 그렇게 대우증권이 작아 보이던지. 불과 몇 년 전까지 내 세상의 전부였던 대우증권이 내 손바닥 위에서 훤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대로다. 내가 변한 것이다. 그렇다고 역량이나 실력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위에서 보는 것과 아래에서 본 것의 차이일 뿐이다. 사원의 눈이 아니라 회장의 눈으로 보게 된 것 뿐이다. 대학 때 경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 한자 한자에 파묻혀 달달 외웠다. 매몰돼 산 것이다. 대학에 가서 정치학 개론서를 봤다. 국한문 혼용에다 작은 활자를 보는 게 힘들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안목이 커졌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눈이 생겼다. 내용 하나하나가 아니라 목차를 보게 된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에 매몰되면 안 된다. 글을 장악해야 한다. 글 앞에서 쩔쩔 매면 글이 그것을 안다. 나를 얕잡아 본다. 그런 상태에서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안절부절 시간만 흐를 뿐이다.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글을 다뤄야 한다. 기계 다루듯이 다뤄야 한다. 글 아래 묻히지 말고 위에서 호령해야 한다. 

글 쓰는 자세만이 아니다. 글감을 찾는데 있어서도 위에서 보는 것과 아래에서 보는 것은 천양지차다. 위에서 봐야 보인다. 각론이 아니라 총론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판을 읽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전체를 정의하고 규정할 수 있다. 

회장이 말했다.
"회사가 잘 되는 방법이 뭔 줄 아나? 부서장은 자기 부서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본부장은 자기 본부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사장은 회사, 회장은 그룹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뛰면 잘 되지 않겠나?"

 

그렇다고 했더니 회장이 틀렸다고 한다.

"만약에 회장은 그룹, 사장은 회사, 본부장은 본부, 부장은 부서를 위해 일하면 부서원들은 무엇을 위해 일하지? 결국 자기를 위해 일하지 않겠나? 결과적으로 모든 직원들이 자기만을 위해 일하게 되는 거지. 왜 암이 나쁜 줄 아나? 자기 증식만을 위해 살기 때문이야.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정상적인 신체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네. 유독 암세포만 자기를 위해서 일하지. 그러니까 앞서 얘기한 대로 회사가 돌아가면 직원들이 모두 '암적인 존재'가 되는 거지."

회장의 답은 간단하지만 깨우침이 있었다.

"사원은 부서 발전을 위해 일하고, 부서장은 본부 발전, 본부장은 회사 발전, 사장은 그룹 발전, 회장은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일해야 하지. 그런 회사는 자연히 잘 될 수밖에 없게 되지."

회장은 역시 회장이다.
크게 볼 줄 안다. 크게 볼 줄 아는 게 회장이다.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사람은 지금 당장 회사를 때려치워라. 나가서 회장할 수 있다. 큰 안목이 가장 중요한 회장의 덕목이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그렇게 안목 높은 회장이 왜 글은 못쓸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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