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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말고 혁신한다고 해"

  • 2014.07.29(화) 08:48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8)
단어 하나의 힘

오래 전이다. ‘구조조정’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던 시절이다.

회장이 말하기를 직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줄인다고 한다. 문제는 ‘구조조정’이란 말은 쓰지 말란다. ‘구조조정’을 쓰는 순간, 회장은 ‘저승사자’가 되는 분위기였다.

일개 과장이었던 내가 아이디어를 냈다. ‘혁신’이란 말을 쓰자. 당시 기업에서 ‘혁신’이란 단어는 좀처럼 쓰지 않았다. ‘변화’가 주로 쓰였다. 회장이 무릎을 쳤다. 그래 ‘혁신하자!’ 

사실 나는 지금도 ‘구조조정’과 ‘혁신’의 뜻이 헷갈린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CEO들이 새로 취임했을 때나 새해 계획 등을 밝힐 때 보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혁신을 통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겠다.”

“구조조정을 일상화하여 혁신역량을 강화하겠다.”

두 문장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단어는 ‘혁신’ 과 ‘구조조정’이다. 그런데 순서는 정반대다.

첫 번째 문장은 통상 쓰는 표현이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혁신을 해서 돈 잘 버는 구조로 만들어 가겠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무슨 뜻일까? 추측해 보면 이렇다. 논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들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더 튼튼하게 되는 것처럼, 구조조정을 일상화하면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혹은 돈 안 되는 사업부문 매각 등으로 조직 자체가 정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혁신을 꾀하게 된다는 말인 것 같다. 이처럼 ‘혁신’ 과 ‘구조조정’은 앞뒤로 순서를 바꿔 써도 말이 될 만큼, 섞여 쓰이고 있다.

 

혁신과 구조조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목표라는 측면에서 보면 혁신과 구조조정은 다르지 않다.

경쟁력이나 체질을 강화하자는 것이니까. 방법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실이나 거품, 비효율 제거, 비용 감축,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재무구조 개선 등등이 혁신이나 구조조정에 같이 쓰이는 방법들이니까. 

그러나 두 단어가 어감의 차이는 분명 있다. 혁신이란 말에서는 왠지 긍정적, 적극적인 냄새가 난다면, 구조조정이란 말에는 부정적인 느낌이 많다. 왜 그럴까? 

우선, 위기 발생 이전인가, 이후인가를 갖고 구분해서 쓰는 것 같다. 위기가 현재화되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취하는 조치는 구조조정이고, 위기 이전에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은 혁신이라고 쓴다. 따라서 어디에선가 발생할지 모를 잠재적 부실에 미리 대응하는 게 혁신이라면, 이미 발생한 부실을 도려내는 게 구조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하나 차이는 혁신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반해, 구조조정은 상황에 떠밀려서 타율적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구조조정 과정이 혁신에 비해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혁신과 구조조정 모두, 현상 유지가 아니라 변화를 꾀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이 없을 순 없지만. 

혁신이 운동이나 식이요법에 해당한다면 구조조정은 수술대 위에 올라 메스를 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할까? 그러니 더 아프고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이렇게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

첫째, 혁신과 구조조정은 목적이나 방법론에 있어 큰 차이가 없다.

둘째, 다만, 위기 이전과 위기 이후를 기준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셋째, 혁신이 자발적이라면 구조조정은 강제적이다.

넷째, 평상시에 혁신을 게을리 하면 구조조정을 당할 수 있다.

다섯째, 혁신에 비해 구조조정은 더 고통스럽고 부정적이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회사가 가고자 하는 길에 걸림돌이 될 수도, 디딤돌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반대로, 회사가 아니라 직원 편에 서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글의 힘이다.

‘혁신’이란 단어를 회장이 채택했을 때 무척 뿌듯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줬다. 글 팔아먹고 사는 게 이런 것인가? 못된 짓 참 많이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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