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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1번지 '회장님, 우리 회장님'도 아니고…

  • 2014.08.02(토) 08:31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10)
'토론의 기술'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가 끝났다. 오늘도 임원들이 집단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말이 없고 우울해지는 것이 그 대표적 증상. 방금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눈빛,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난 후의 표정이라고나 할까? 하기야 회장이야말로 임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존재가 아닌가.

언젠가 1박2일 임원 워크숍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저녁 회식이 끝나고 모두가 불콰한 상태에서 사회자 없는 즉석 토론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누군가 스트레스에 관한 말을 꺼냈고, 늘 등장하는 ‘자폭’이 그날도 나왔다.

임원0 : 기사를 보니까 우리나라 스트레스 수준이 세계 1위랍니다. 그에 반해 행복지수는 최하위권이고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임원1 : 1936년에 스트레스란 말이 처음 나왔는데, 긴장을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더군요.

임원2 : 이 자리에 회장님이 계시니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저희 임원들 제명에 못 죽겠습니다. 회장님과 회의한 날은 밥도 안 들어갑니다. 나 자신이 너무 왜소해지고 자식들 보기도 부끄럽고... 이렇게 살아서 뭣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 말씀입니다. 

포문이 열리자 많은 얘기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임원3 : 회장님 앞에서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스트레스가 없으면 조직이 아니죠. 스트레스가 세계 최고라는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해온 걸 보면 남에게 지기 싫은 경쟁심, 그런 스트레스가 배경이 되었다고 봅니다.

임원4 :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그럼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좋다는 얘깁니까? 저도 스트레스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직생활을 하는 한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는 기대할 수 없지요. 회사에서 받는 보수 중에는 스트레스 대가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문젭니다. 이것은 경영성과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임원5 : 맞습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불필요하게 예민해집니다. 이러다 보면 조직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변합니다. 뿐만 아니라 반목과 대립이 일상화되죠. 결국 협업이 잘 안 되고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임원6 : 제가 우스갯소리 하나 하겠습니다. 스트레스에는 총량 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 스트레스가 풀렸으면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옮겨간 것이지요. 예를 들어 회장님 스트레스가 풀리셨다면 그것은 임원들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임원7 : 전가는 잘 모르겠고 전염효과는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사람 옆에 있으면 저도 스트레스를 받으니까요.

임원8 : 제가 스트레스 해소법 하나 알려드릴까요? 만약 회장님께 스트레스 받는 분이 계시면 저 같이 해보십시오. 회장님께 혼날 때는 무조건 배운다고 생각하세요. 또 회장님을 좋아하고 존경해 보세요. 절대 스트레스 안 받습니다.

임원9 : 전 이런 토론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이쯤에서 회장이 개입한다. 마무리 말씀인 것이다.

일과 인간관계로 나눠서 봐야 한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불가피하다. 적절한 긴장은 즐거운 구속이고 성장의 동력이다. 회사가 놀이터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 조직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조직을 떠나는 게 맞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이에크 말을 해주고 싶다.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때문에 정확하게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한다.”

그러나 인간관계로 받는 스트레스는 다르다.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 에 비해 스트레스가 많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만큼 과업 중심이 아니란 얘기다.

훌륭한 회장 총평이다.

일과 인간관계로 나눈 것도 그렇고, 하이에크 말도 설득력을 높인다.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인정하면서도, 과업 중심 조직이 아닌 데서 원인을 찾음으로써 책임을 직원에게 돌린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의 불가피성을 얘기하는 대목도 반박하기 쉽지 않다. 짧지만 논리적으로 잘 짜여 있기 때문이다. 회장의 내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토론은 말하기, 글쓰기, 읽기의 종합 무대다.

토론은 또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토론에 끼어들게 될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낭패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내 생각보다 우리 생각이 더 낫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그것이 기본자세다. 토론은 바람직한 결론을 내는 게 목표다. 내 생각을 뽐내는 기회가 아니다. 남과 싸우고 남을 이기기 위한 자리도 아니다. 

둘째, 공격보다는 방어가 효과적이다. 우선, 상대의 말을 듣고 인정해주는 것으로 말문을 여는 게 좋다. 세종대왕은 어떤 의견에도 이렇게 시작했다고 한다. ‘그 뜻이 옳다. 그러나 ...’. 딱히 할 말이 없으면 들어주는 역할에 충실한 것으로도 중간은 간다. 공격은 아무리 잘해도 상처뿐인 영광이다.  

셋째, 흥분은 백해무익이다. 냉정이 토론의 최대 덕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상태나 분위기에 휩쓸려선 안 된다. 맥락을 놓치지 말고 듣되 한 발 떨어져 들어야 한다. 

넷째, 평소의 준비가 필요하다. 뉴스를 들을 때나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사안에 관한 나의 입장과 견해,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아울러 토론에 써먹을 수 있는 통계나 사례, 남의 말을 기억해두는 게 좋다. 그런 것이 자기 말의 설득력을 높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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