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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한 사장의 무모한 도전

  • 2014.08.05(화) 10:50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11)
성공과 앵김의 상관관계

모 그룹 계열사에 다니던 시절이다. 하늘 같이 알던 사장을 수행해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일정이어서, 공항에서 단 둘이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뻘쭘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사장님, 회장님과는 경기고 동기시잖아요. 두 분만 계실 때는 말을 놓으시나요?”
“그럼 당연하지. 친군데 뭘. 초창기에는 차가 한 대 밖에 없어서 같이 타고 다니면서 영업하고 그랬어.”

철석같이 믿었다.
 
수년이 흘러 그룹 회장비서실에서 근무하게 됐다. 처음으로 사장단회의에 배석한 날. 회장이 나의 과거 사장에게 물었다.

“김 사장, 거기는 이번 분기 실적이 어때?”
사장이 나를 힐끗 봤다.


“똔똔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똔똔 : 균형 잡힌 수지라는 뜻의 일본어)
“뭐? 똔똔?”
“네, 약간 아까지 난 수준입니다.”   (*아까지 : ‘적자’ 란 뜻의 일본어)

“아까지? 어이... 거 좀 똑바로 얘기해봐.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죄송합니다. 전년 대비 매출이 3% 감소했습니다.”
 
결국 투항하고 말았지만, 과거 우리 사장님은 최대한 반말에 가까운 대답으로 최선을 다했다. 왕년에 회장과 한 차 타고 다닐 때는 일본어를 많이 쓰셨던 것 같다.


내가 예상했던 ‘우정의 무대’는 없었다. 나를 의식해서 분전(?)한 사장님은 그날 회장에게 평소보다 더 혼났다.
 
경영 현장은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다르다. 포용과 배려? 섬김의 리더십? 그런 것 없다. 경영은 당위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활동 영역이다. 권위에 도전해서 성공하는 경우는 조폭 세계뿐이다. 회장을 향한 도전은 결코 용서 받지 못한다.
 
회장은 대부분 마키아벨리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 아니 신봉자다.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인색하다는 평판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
“잔인하다는 비판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답은 나와 있다. 마키아벨리가 설파했듯이, 포르투나(fortuna, 운)에 의지하려고 해선 안 된다. 비르투(virtu, 역량)를 키워야 한다.
 
첫째, 표정 관리다.

회의시간에 회장 얘기할 때 눈 맞추지 않는 사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것처럼 입(회장 표현으로 ‘주둥아리’) 삐죽이 내밀고 있는 사람. 정리 1순위다. 실제로 그래서 ‘짤린’ 사람도 봤다.
회장과 만날 때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 좋다. ‘당신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 ‘당신을 배우고 싶다’고 눈으로 말해라. 받아 적기와 고개 끄덕이기, 추임새 넣기는 기본이다.
 
둘째, 말해야 한다.
회장은 질문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느낀다. 넌 모르지만 난 다 안다는 표정으로 우쭐한다. 다만, 회장이 진짜 모르는 것은 물으면 안 된다. 또한 회장이 역으로 질문할 경우에도 대비하고 물어야 한다.


회장은 그다지 바쁘지도 않다. 휴일에 전화 오는 것 되게 좋아한다. 부인 있을 때 전화 오면 특히 반긴다. 평일에 바쁜 척 했는데 휴일에 전화 한 통 안 오면 머쓱하기 때문이다.


말은 할수록 오해는 줄어들고 공감대는 넓어진다. 말을 해서 무지가 드러나고, 괜한 문제가 생기는 위험보다 얻는 게 훨씬 많다. 세 개 잃고 일곱 개 얻겠다는 생각으로 회장에게 말을 걸고 들이 대라.
 
셋째, 글로 표현하라.
휴대전화 문자나 짧은 이메일 같은 스몰토크를 잘해야 한다. 정식보고 아홉 번 잘하는 것보다 한 번의 스몰토크가 더 기억에 남는다. 회장 건강검진 받는 날 아침에 문자 한줄 잘 보내서 승승장구한 임원도 봤다.

 

그러나 억지로는 하지 마라. 글은 마음의 표정 같은 것이다. 진심으로 회장을 좋아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 게 좋다.
 
그때 그 사장님은 지금 안 계신다. 얼마 전 돌아가셨다. 하지만 잊지 못할 것이다. 아래 직원에게 ‘회장 그까이 거’라고 호기 있게 하신 말씀과 회장의 불호령 사이에서 갈등하던 사장님의 눈빛 말이다. 사장님! 당신은 ‘아까지’ 안 내고 아름답게 잘 사셨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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