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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뱅크 빅뱅]⑥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끝>

  • 2014.08.14(목) 09:30

국내 금융•ICT 융합 여전히 제자리걸음…정부가 발목 잡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금산분리 완화 등 규제 장벽 낮춰야

# 2001년 대기업 오너 2•3세와 벤처기업인 모임인 V소사이어티는 브이뱅크(V-bank)라는 인터넷은행 설립에 나섰다. SK텔레콤과 롯데, 다음, 안철수연구소 등 공동출자 기업들의 면모도 화려했다. 하지만 결국 문턱을 넘진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다. 

7년이 지난 2008년. 이번엔 정부가 금융규제 개혁의 하나로 인터넷은행 설립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국회가 발목을 잡았다. 수익 모델이 취약하고, 과당 경쟁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달았다. 다시 6년이 지난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또 인터넷은행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이번에도 결과를 장담하긴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ICT 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큰 흐름에서 고립된 ‘갈라파고스의 늪’에 빠져 있다.

인터넷은행만 보더라도 그렇다. 미국과 일본에선 어엿하게 은행산업의 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15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최근에야 의무화 규정이 폐지된 공인인증서 논란 역시 같은 연장선에 있다.

문제는 사실상 국경이 없이 진행되는 금융•ICT 융합의 특성상 이제 더는 나 홀로 대세를 거스르긴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 금융•ICT 융합을 위한 큰 판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주요국의 인터넷뱅킹 이용률(자료: 산업은행)

◇ 사사건건 발목만 잡던 정부


그동안 정부와 국회는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기보단 틀어막기에 바빴다. 다양성과 개방성을 중요시하는 인터넷 시대에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국가 표준만 요구하면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과거 모바일 컨텐츠 표준인 위피(WIPI: 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02년 국내 휴대폰용 소프트웨어 표준 플랫폼으로 위피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휴대폰 콘텐츠 개발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와는 달리 국제적인 흐름과 괴리되면서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전락했고, 결국 2008년 의무화를 폐지했다.

최근 공인인증서 논란만 마찬가지다. 공인인증서 의무화가 전자결제 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은 숱하게 나왔다. 그런데도 수년간 귀를 닫고 있던 정부는 대통령의 한 마디에 돌변했다. 이번엔 아무런 대책 없이 공인인증서 없애기에 혈안이다.

금융•ICT 융합은 더 복잡하다. 여기에다 금산분리와 금융실명법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이 더해진 탓이다. 그러다 보니 금융권은 물론 ICT 기업들도 혁신보다는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 한순간 무력화되는 규제 방어막

문제는 정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규제 방어막이 한순간에 무력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ICT 기업들의 서비스가 글로벌화되면서 사실상 국경이 무의미해진 탓이다. 카카오톡과 네이버를 막으면 오히려 알리페이와 페이팔이 시장을 잠식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가령 과거 국내 IT 기업들은 여러 차례 위치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를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개인정보가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번번이 가로막았다. 그런데 아이폰이 들어오면서 위치기반 서비스 규제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정부는 최근 공인인증서 의무화를 폐지하면서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공인인증서 의무화가 없어지면 글로벌 전자결제 기업들이 물밀 듯 밀려들 텐데 현실적으로 틀어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 자율에 맡길 수도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터넷은행의 경우 우리나라가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있는 지난 15년 동안 미국과 일본에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올 3월 말 현재 미국 인터넷 전문은행의 총자산은 4582억 달러(약 471조 원), 일본은 8조 5000억 엔(약 85조 원)에 달했다.

◇ 금산분리 등 금융 진입 장벽 낮춰야

그러다 보니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금융 진입 장벽을 낮춰 금융•ICT 융합을 위한 경쟁과 창의를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글로벌 경쟁 환경에선 큰 의미가 없어진 금산분리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본에선 비금융기관의 금융업 진출이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다. 유럽에선 EU 가입국 중 한 군데서만 금융업을 허가를 받으면 가입국 어디에서나 금융업을 수행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인터넷은행인 찰스 스와프나 이트레이드 등은 모두 비은행 금융회사 내지는 GM과 같은 산업자본이 주도했다. 기존 금융권을 대상으로 금융개혁에 시동을 건 중국은 아예 정부 차원에서 ICT 기업의 금융업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최근 “IT와 은행시스템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 방향을 어떻게 맞춰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어 금융•ICT 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어떻게 따라갈지 주목된다.

 


◇ 가장 시급한 선결과제는 보안

금융•ICT 융합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론 보안문제가 꼽힌다. 다만, 보안문제 역시 무조건 금지하는 식으로 꼭꼭 걸어 잠그기 보단 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선진국에선 보안부문 투자가 절대적이다. 미국과 영국 기업들은 IT 예산 가운데 정보보호에 투자하는 금액이 각각 40~50%에 달한다. 특히 ICT 기업들은 금융보안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의 투자 비중은 3%를 간신히 넘는다. 그만큼 보안부문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올초 카드 3사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태로 인식이 바뀌고 있긴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평가가 많다.

나성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융부문에선 사소한 보안상의 문제가 바로 금전적인 피해와 연결된다”면서 “모바일 금융 역시 보안문제를 충분히 검토하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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