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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감방에 가라고 해!"

  • 2014.09.01(월) 08:31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21)
회장 없어도 잘 돌아가는 회사 만들기

그날 하마터면 ‘짤릴 뻔’했다.
회장을 좀 쉬게 해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조직과 회장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 그래야 한다는 일념에서였다.

“회장님, 건강도 살피실 겸 회사에 계시는 시간을 좀 줄이시죠.”

“자네 지금 나보고 물러나란 소린가?”

“그런 말씀이 아니고... 회장님 건강을 생각해서...”

“아니 그 소리가 그 소리 아닌가. 차라리 깜빵에 가라고 하지. 거기 가면 건강 잘 챙겨줘. 제때에 밥 먹지, 휴식 충분히 하지, 운동까지 시켜줘. 나 깜빵갈까?” 


그때 알았다.

회장은 우리와 다른 ‘인간’이다. ‘그 정도 돈 있으면 편히 살겠다.’는 우리와 다르다. 일하는 게 즐거운 인간이다. 끝없이 욕망하는 인간이다.

달리 얘기해야 했다.
사적으로 슬쩍 건의한 방식도 잘못됐다. 며칠간 회장은 말이 없었다. 나는 투명인간이 됐다. 만회가 필요했다. 충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정식으로 보고 시간을 잡았다.

서두를 꺼냈다.


《어떤 사람들은 요즘 시대야말로 CEO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CEO가 더 관여하고 진두지휘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위임’ 이 최고의 경영기법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요. 사실 CEO의 개입 강도가 어느 정도여야 좋은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CEO가 회사 일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는 것, CEO가 나서지 않으면 회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고,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해법이 ‘신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뢰가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CEO가 덜 피곤합니다. 그러나 신뢰가 있는 조직을 만드는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다만, 오늘은 신뢰가 있으면 왜 CEO가 덜 피곤한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CEO가 갈등의 해결자로 나서는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CEO의 역할 중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만드는 것이 바로 부문 간 갈등을 봉합하는 일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전에 갈등을 예견하고 방지해야 하기도 하고요. 특히 지금과 같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할 때에는 조직 내 갈등이 더 커지게 됩니다.

내가 잘못을 인정하면 나만 바보 되고 끝나는 것 아니야? 내가 이것을 양보하면 나만 손해보고 마는 거 아냐? 나만 열심히 하면 뭐 해,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 부서가 저 부서를 위해 이런 노력을 한들 그들이 과연 알아줄까? 상호간의 신뢰를 통해 이런 보이지 않는 갈등을 풀 수 있다면 CEO는 한결 여유를 가질 수 있겠지요.

CEO가 방향 제시자로 나서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신뢰가 있는 조직은 대개 비전을 공유합니다. 정보의 흐름이 원활합니다. 회사 사정을 투명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서로 잘 압니다. 정해진 룰에만 의존하려 하거나 윗사람 의 지시 뒤에 숨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합니다. 그리고 주변 동료들에게 같이 잘해보자고 격려합니다. 바로 신뢰의 힘입니다.

어느 유명한 경영학자가 실증적으로 연구한 결과라는데요.
조직원들은 스스로 선택한 일에 대해 다섯 배의 애착과 실행의지를 갖는다고 합니다. 회장님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조직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입니다. 그게 회장님이 원하시는 것 아닙니까?

마무리로 들어갔다.
그런데 회장님, 이런 위임도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기술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무엇을 위임하고, 누구에게 위임할 것인지를 찾아내는 분별력, 그리고 과감하게 넘겨줄 수 있는 결단력 말이죠.》

회장이 한 마디 한다.
“이 사람아, 내가 그 정도도 안 되는 줄 아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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